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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Sep 14. 2022

늘 오늘만 같지 않기를

한가위에 놀부 심보

가장 고단했던 시간을 꼽아 보라 하면, 20대의 날들이라 말하곤 했습니다. 몇 백원이 모자라 수색, 모래내에서 일산 장항동까지 걸어갔던 날들, 탈탈 털어 마시던 콩나물무침 안주의 찬 소주잔들, 그리고 헌 옷 수거함에서 알뜰히 챙겨 입고 다녔던 내 청춘의 시간들이었지요. 다 견딜만했는데, 기본 학비를 충당하는 일이 참 고역이었습니다.


성적으로 준다는 '통합 장학금'의 마지막 관문은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증명하는 일이었습니다. 가계의 형편에 따라 장학금 지급액이 차등되니 어쩔 수 없는 절차이지만, 지금과 같이 가계의 소득 정보가 한눈에 조회되지 않기에 각종 서류와 증빙을 발품을 팔아 수집하고, 마지막엔 800자 이내로 '신청사유'를 적어 내어야만 했습니다. 내 부모가 왜 경제적 도움이 안 되는지, 그 회복이 왜 어려운지, 그래서 얼마나 내가 가난한지를 적어 내었지요.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요. 1학년 여름 방학 이후 나머지 여섯 번은 아주 자동 반사적인 일상의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주변에도 내 어려움을 태연히 설명하고,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도움으로 그럴듯한 '구제?' 옷들을 챙겨 입으며 아무런 마음의 불편이 없었답니다.


요즘 그 20대의 날들만큼 고단한 날들을 지내고 있습니다. 절대적 비교가 어렵지만, 당찬 젊음이 없으니 거의 비슷한 절박함으로 다가옵니다. 그 시절 적었던 '내 곤궁의  하소연'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 다시 유효합니다. 참 고단한 날들입니다.

엉켜 버린 삶, 그래도...

추석, 한가위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오늘만 같아라'는 제법 '한가한' 수사가 넘치는 나름 '풍요'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우리들 삶의 한 편에는 '제발 오늘만 같지 않기'를 바라는 버거운 일상들이 존재합니다. 저 또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찬찬히 앉아 생각을 거듭해 봅니다. 바람은 이미 선하게 불아 걷기에 좋은 날이 되었습니다. 두 손 가득한 귀성길은 아니지만, 유일한 내 소중한 존재인 예쁜 아내의 손을 잡고 거니는 한산한 골목길도 나쁘지 않습니다. 연휴가 주는 쉼표는 먹고 자는 생존의 걱정을 멈추게 해 주지는 않지만, 독촉과 재촉의 압박 가득한 근심은 잠시 잦아들게 해 줍니다. 내일도 오늘 같다면 일단 살아는 남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한가위는 오늘 같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봅니다.


힘든 사람들이 쉬어가는 마음속의 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지요.

'그래도'

응원과 힘이 되어 주신 분들이 있기에 이겨내 보려 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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