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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 생각] Good Friday

웅이가 여니에게

by 박 스테파노
“Eloi, Eloi, lama sabachthani.”
‎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히브리어)
ελωι ελωι λαμα σαβαχθανι (희랍어)


음독으로 ‘엘리(엘로이) 엘리(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로 읽히는 말은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절규입니다. 번역하자면 ‘하느님(아버지) 나의 하느님(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로 흔히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 일컫는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가지 마지막 발언 중 가장 격한 표현입니다.


이 복음을 읽는 날은 교회력으로 성주 간 중에 ‘성금요일’입니다. 이날을 영어권에서는 'Good Friday'라고 일컫습니다. 역설적인 명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 예수의 부활이전 고난의 극한으로 치닫는 3일간을 ‘상삼일’이라 하며 가톨릭 등 그리스도교에서는 엄중한 전례를 지냅니다. 목요일에는 최후의 만찬으로 유래되는 성찬을 기념하며 ‘세족례’를 합니다. 금요일은 일 년 중 유일하게 ‘미사’가 없는 날입니다. 바로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날이기에 가톨릭 교회에서는 모든 전례를 중지합니다. 그뿐 아니라 오르겐이나 성가등의 음악도 금지되고 작고 큰 모든 타종도 중지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이전의 예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도 독배를 거두어 달라며 번민하던 인간 예수의 모습이 십자가 위에서도 드러나는 장면인 듯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며 예수는 인간의 모습으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이를 기념하여 일제히 타종과 오르간을 격하게 소리 내며 마지막 전례를 하게 됩니다. 이제 부활의 까지 교회 안에선 음악도 타종도 없는 적막한 죽음의 ‘고독’만이 있을 뿐입니다.


흔히 힘들 때 ‘죽고 싶다.’라고 푸념하곤 합니다. 진심이 담긴 말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막상 죽음 앞에 서게 되면 두려움 앞에서 신에게 살려 달라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영원한 고독’ 안에 갇힐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클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현재의 나날들이 힘들고 힘들어도 죽음의 고통보단 나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도록 (막상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힘든 인내와 시련의 시간들은 어찌 보면 신이 주는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는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역설적으로 ‘죽을 것 같이 힘든 날들’은 우리가 살아 있음을 인지하는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힘든 날들을 잘 살아 내야 합니다. 영원할 것 같던 고통도 인내와 성찰의 결실로 다시 태어날 부활의 날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예수가 죽음을 맞이한 이 날을 영어권에서는 “Good Fridy”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슬픈 날이 가장 완전한 금요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절규 안에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믿음에 대한 다짐이 들어 있습니다. 스스로를 믿을 때 하늘도 섭리도 신의 은총도 우리 곁에 있을 것입니다.


부활 2주간에 다시 성 금요일의 수난을 되새깁니다.

그 되새김으로

완전한 부활을 기대하고 기도해 봅니다.


사진: 영화 <Passion of Christ>

-곰탱이 남편의 사랑하는 여니와 나누는 아침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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