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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n 08. 2020

어른이 되는 것, 인간이 되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인간이 된다는 것…. 당신의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당신 말대로, 우리는 인간의 껍데기를 가지고 태어날 뿐이다. 그 안을 채워 진짜 인간이 되는 것은 각자의 일.


자기 안에 집어넣는 내용물에 따라, 우리는 각기 다른 진짜 인간이 된다.


아무튼 안이 차올라 있어야 진짜 인간이겠다. 그리고 자기 안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겠고. 나는 당신의 그 관념에 동의하였다.


문득 궁금했다. 나는 얼마나의 진짜 인간인가. 나는 진짜 인간이 되어 가는 일에 얼마나 열심인가. 내가 그동안 내 안에 채워 넣은 것들은 다 뭔가. 거기 쓸 만한 게 좀 있는가.



나는 어떤 종류의
진짜 인간인가.
진짜 인간이긴 한가.





지나가는 초등학생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내가 좋은 인간인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상대가 가진 것이나 상대가 처해 있는 상황과 상관없이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건, 인간 됨의 일부일 뿐이니까. 전부가 아니라.


인간이 된다는 것이 새삼 엄청난 일로 느껴졌다. 그러니 본인을 완성된 존재로 보는 일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착각이겠는지….


아까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진짜 인간이냐고. 주관을 가지고 자기 안을 채우는 인간이라고 해서, 다 좋은 인간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념에는 종류가 있다. 사람을 위하는 신념이 있고, 사람을 해치는 신념이 있다. 온갖 종류의 권총들로 자기 내면을 채우는 사람이 있고, 온갖 종류의 상비약들로 자기 내면을 채우는 사람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자발적으로 테러범이 되고, 후자는 자발적으로 치유자가 된다. 둘 다 진짜 인간이긴 하다. 둘 다 본인의 선택을 따라 사는 거니까.



그들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끝내 어떤 무엇이 되었다.





가장 멀리서 볼 때, 운명은 두 가지 방향을 가진다. 사랑하는 쪽, 사랑하지 않는 쪽.


나는 어느 쪽으로 걷는 인간인가. 내가 넘어질 때 눌릴 수 있는 방아쇠가 내 안에 있지는 않나. 내가 내 안에 마련해 놓은 상비약들로 나는 어느 정도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가. 나는 그 상비약들을 타인에게 얼마나 나누어 줄 수 있는가.


나는 내 세계와 타인의 세계를 얼마나 오래 끌어안고 있을 수 있는가. 나는 용서하고 연민하는 일에 얼마나의 흥미를, 보람을 느끼고 있나.


가끔 길을 잃긴 하겠지만, 결국 내가 도착하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내가 궁극적으로 선택한 운명의 얼굴은 어디를 향해 생글거리고 있는가.




이 글은 《같이 플라타너스를 보러 갈까요》에 수록되어 있는 산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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