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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Sep 22. 2020

완벽해지면 행복할까 : 완벽의 실체

완벽이라는 것. 이 땅 위에서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일생 동안 이것을 가지려 애썼습니다. 완벽(完璧)은 흠 하나 없이 완전한 구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완전무결(完全無缺)이 있습니다. 완전히 온전하여 결함이 하나도 없는 걸 이르는 말.


완벽은 때때로 찬사입니다. 뭇사람들은 자신에게 아주 흡족한 것을 보며 “완벽해!”라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완벽은 때때로 기준입니다. 뭇사람들은 완벽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평생 동안 공을 들입니다.


거기에 단순히 공을 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 온 인생을 다 바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완벽을 간절한 꿈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생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 버린 완벽.






세상에는 ‘뭔가가 완벽해야만 거기에 가치가 있다.’는 관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념을 접한 사람들 중 일부는 그 관념을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아무것도 따져 보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그 관념을 골똘히 곱씹으며 “정말이야. 왜 아니겠어.” 합니다. 흠집 하나 없이 광채를 내는 무언가를 상상하며, 그들은 미소 짓습니다. 그들의 발끝이 완벽 쪽으로 틀어집니다. 그들은 인간 존재도 완벽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그래야 좋은 거라고 믿습니다.


완벽만을 추구하는 일은 언뜻 보기에 생산적인 일 같습니다. 성장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 같습니다. 그런데 완벽‘만’을 추구하는 일은 오히려 사람의 생산성과 성장을 방해합니다.


생산과 성장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데, 과정이라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과정의 시작은 어떤가요. 터무니없이 어설픈 게 태반입니다. 완벽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과정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완벽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뭔가를 시작할 때마다 스스로와 다툽니다. 스스로를 끝도 없이 구박합니다. 스스로의 불완전함이 꼴사납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불완전이라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고, 옳지도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뭔가를 더듬더듬 엉성하게 해 나갈 때마다, 그는 온 얼굴을 짓이기듯 찌푸립니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일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자꾸 엉뚱한 데 퍼붓습니다. 스스로를 타박하는 데에.


그러다 어떤 일을 결국 끝내 놓아도, 그는 스스로와 계속 갈등합니다. 일의 결과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과 일을 같이하는 사람들과도 불화할 수 있습니다. 자신과 동업하는 그들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과 실수만큼, 타인의 부족과 실수도 좀처럼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완전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협업에도 집중하지 못하니, 그의 생산성은 계속 떨어집니다. 그의 생산성이 계속 떨어지니, 그의 불만족도 계속 커져만 갑니다. 악순환입니다.


그래도 그는 단념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게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는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더 채찍질합니다. 스스로가 이루어낸 것들의 가치를 무자비하게 후려치며, 스스로에게 “더 열심히 하란 말이야!”라고 고함칩니다.


그는 오늘을 살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오지 않은 미래를 살지도 못합니다. 그는 시간이 없는 관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관념 속에서.


일의 99%가 이루어져도 이루어지지 못한 1% 때문에 조금도 기뻐하지 못하고 내내 분노하는 사람. 불완전으로 인한 불안 때문에 매일 스스로를 푹 재우지 못하는 사람. 그의 자존감 상태는 어떨까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 근처에 간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완벽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완벽 근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는 스스로를 독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채찍 하나가 끊어지면 쇠몽둥이를 가져올 사람입니다.


이 모든 게, 완벽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인간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인간이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판매대에 전시되어 있는 상품이 아닙니다.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의 완벽 여부와 상관없습니다. 흠집이 좀 생긴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가치는 변하지 않아요.


완벽하지 않은 사람도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가치는 모양이 달라도 저마다 가득인 가치입니다. 덜 가치 있고 더 가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동등하게 귀중합니다. 인간은 기능적인 면에서 완벽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가치 면에서는 완벽합니다. 모두가요.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단순한 값어치가 아닙니다.


가치(價値)라는 것은 ‘값’이라는 뜻도 가졌지만 ‘대상의 의의나 중요성’이라는 뜻도 가졌습니다. 스스로를 숫자로만 판단하며 만점을 쫓는 습관을 버릴 때, 우리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근사한 의의와 중요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 고유의 의의와 중요성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모든 사람의 가치는 동등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완벽합니다. 이런 게 완벽 아닐까요. 굳이 꼽자면요.






완벽에 대한 환상은 완벽에 대한 사실이 아닙니다. 완벽에 대한 환상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에고입니다.


때로는 타인의 에고가 우리 에고를 꼬드겨, 그게 사실이라고 믿게 만듭니다. 완벽에 관해 에고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현실이야. 둘러봐. 이게 현실이라고. 넌들 뭐 별 수 있어?”


발바닥에 진물이 나도록 완벽을 쫓고,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으로 인해 수없는 밤 절망하고, 완벽에 대한 목마름으로 가슴을 쥐어뜯어 기어이 피를 본 모든 순간, 나는 믿었습니다.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 거라고.


꿈에서 깨기 전까지는 꿈속에 등장하는 모두가 실존 인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에고의 악몽에서 내가 깨어날 때, 에고가 잠듭니다. 에고와 자각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자기 계발서 《나 자신을 고스란히 소중하게 : 보통 사람의 자존감 공부》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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