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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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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ug 15. 2016

초짜 선생님

   “선생님.”

   백석. 유명한 시인과 이름이 같은 백석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이라 하지 않고 ‘저기요.’라 불렀어도 나는 녀석을 돌아봤을 것이다. 이 길엔 우리 둘뿐이다. 우리 둘만 남은 지 30분이 넘었다.

   또래 무리에 섞여 다니는 법 없는 녀석과 나는 늘 함께 다닌다. 현장체험학습이나 소풍 또는 수학여행 때마다 그런다. 주로 내가 녀석을 쫓아다닌다. 그게 내 몫의 역할이다. 누가 부여한 몫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담임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선생님.”

   뭔가 결심한 눈빛으로 녀석이 나를 다시 불렀다. 녀석 등 뒤에 있는 소나무 가지가 느리게 한들거렸다. 녀석의 교복 가슴팍이 땀에 젖어 있다. 내 차림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옷 닿아 있는 모든 살갗이 축축하거나 약간 따갑다.

   우리는 산 속에 있다. 지금은 오르막길을 걷고 있다. 앞장선 내가 조금 위쪽에 있고 녀석은 나보다 조금 아래쪽에 있다. 하지만 녀석이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커 녀석을 올려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왜.”

   대답과 동시에 나는 다시 뒤돌아 산길을 올랐다. 산꼭대기 절까지 가려면 좀 더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버스가 산 너머에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도중에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 아무 소리 안 해요?”

   녀석이 나를 뒤따라 걸으며 물어 왔다. 나는 가쁜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뭘?”

   “저 다음 주에 징계 받잖아요.”

   “그래, 근데?”

   “왜 아무 소리 안 해요?”

   녀석이 다시 물었다.

   “아무 소리 안 했었나, 내가? 너 불러다 놓고 뭐라 많이 말한 거 같은데.”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왜 안 혼내냐고…….”

   녀석의 목소리가 문득 작아졌다.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다리를 더 빨리 움직여 걸었다. 녀석도 내 속도를 따라오려는지 뒤쪽에서 바스락대는 소리가 한층 잦아졌다.

   “혼나고 싶어?”

   화살표 모양으로 깎인 낡은 표지판에서 오른쪽 길로 꺾어 들어가며 내가 물었다.

   “아니요……. 혼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럼?”

   “이상하잖아요.”

   “뭐가?”

   “혼을 안 내니까…….”

   녀석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교내 봉사 징계를 받게 돼 있다. 교내 봉사 한 달. 녀석의 책상은 지금 1층 교무실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수업 받는 대신 똑같은 내용의 반성문을 수십 장 쓰고 온갖 선생님들께 불려가 잡일을 해치워야 할 것이다. 아마 다음 주 월요일에 녀석은 기술가정 선생님께 불려갈 것이다. 가사실 청소하러. 1학년 요리 경연대회가 2주 앞으로 닥쳐 온 참에 잘 됐다며 기술가정 선생님은 두 손을 맞잡았다. 나는 그 앞에서 입술 안쪽을 깨물다 “그렇군요.” 하고 말했다.

   경찰서에서 학교로 직접 연락 온 터라 쉬쉬할 수 없었기에 내려진 강경 처분이었다. 경찰서에서 그런 연락 없었어도 똑같은 처분이 내려졌을 거라 생각한다. 징계위원회 열리던 날 굵은 침방울 튀겨 가며 녀석을 몰아세우던 몇몇 선생님들은 경찰이 아니라 학부모를 의식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부모 소문을…….

   이미 학부모들 사이에 녀석의 사건이 자자하게 퍼져 있었으므로 학교에선 뭔가를 보여 줘야 했다. 영어 선생님께 전해 듣기로 어떤 학부모가 학생주임 선생님께 전화도 했단다. 학교에서 애들을 어떻게 가르치길래 그런 깡패 같은 애가 멀쩡히 활보하고 다니느냐고. 그 학교에 우리 애 어떻게 믿고 맡기겠느냐고. 교실마다 CCTV 달아서 부모가 실시간으로 애들 상태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녀석은 일주일 전 동네 아파트 놀이터 미끄럼틀을 부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거기까지다. 경찰 쪽에서 알고 있는 것도 거기까지다. 주민 신고 받고 경찰서에 연행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녀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왜 자기 동네도 아닌 그 아파트로 갔는지. 다 큰 애가 놀이터는 왜 간 건지. 미끄럼틀을 박살낸 까닭이 뭔지.

   경찰서에서 학교로 연락 온 날은 녀석과 대화 나눌 기회가 없었다. 녀석은 주로 학생주임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을 상대해야 했다. 상담실에서 상담 선생님을 만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어디론지 불려 다니는 녀석의 모습을 멀리서 발견할 수 있었다.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다니는 늙은 수학 선생님은 녀석을 마주칠 때마다 녀석의 엉덩이를 구둣발로 차댔다. 녀석은 그저 고갤 푹 숙이고 학교 안을 유령처럼 돌아다녔다. 고개 숙인 것만 빼면 평소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녀석이 남의 동네 미끄럼틀을 깨부쉈다. 왜?

   그 다음 날 5교시 쉬는 시간이 되고 나서야 나는 녀석을 1:1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빈 음악실에 녀석과 마주 앉았다. 

   “선생님한테 할 말 없어?”

   내가 물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해야 할지 몰라 발언권을 녀석에게 넘겼다. 교사 생활 3년 만에 맞이하는 가장 큰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녀석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죄송해 할 건 없고……. 부모님이 아파트 단지에 손해 배상하셨다고 들었다.”

   “네…….”

   “거기서 너희 집까지 얼마나 걸리지? 시간으로.”

   “한 15분이요.”

   “거기까지 간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되나?”

   “…….”

   “백석. 선생님이 이런 거 처음이거든.”

   내가 눈을 크게 떴다 감으며 말했다. 녀석이 고갤 들고 내 눈을 쳐다보았다. 나는 뒷말을 이었다.

   “선생님이 말이야. 대학 다닐 때까지 공부만 했다. 졸업하고 2년 동안 또 공부만 했다. 임용고시 붙어야 되니까. 임용고시 붙고 여기저기 면접 보러 다니다가 선생님이 됐네? 칠판 앞에 서서 내 아는 것들 가르치면 그걸로 끝일 줄 알았는데……. 너도 잘 알다시피 그게 아니잖아. 그게 아니란 걸 나도 알았는데 그냥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선생님은 초짜야. 학생들 대하고 학생들 인솔하고 학생들 보살피고 이런 거 무지하게 서툴거든. 징계고 뭐고 하는 건 아예 처음이고……. 널 좀 돕고 싶은데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건드려 나가야 할지 깜깜하다. 그러니까 니가 좀 도와줄래? 그 날 상황을 알아야 선생님이 뭔가를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제법 간곡한 어조로 말했지만 녀석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녀석을 교무실로 이만 돌려보내며 약간의 좌절감을 느꼈다.     


   오르막길이 끝나자 나무다리가 나왔다. 나무다리 가운데쯤에서 고갤 들었을 때 목적지인 사찰 처마가 보였다. 사방에서 매미들이 맴맴 울어댔다. 나는 걸음을 늦추고 녀석을 돌아보았다. 

   “백석.”

   내 부름과 동시에 녀석이 땀범벅인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네.”

   “선생님이 생각을 해봤는데……. 니가 내 도움을 원치 않는다면 도움 주는 대신 그냥 지켜봐 주는 편이 나을 거 같았다. 아직 미성년잔데 학생한테 자기 저지른 일 다 책임지라 하는 것도 옳지 않은 거 같고……. 학생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 몽땅 져 주려고 하는 것도 옳지 않은 거 같고……. 징계로 책임 묻는 일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니가 한 일 니 스스로 책임질 자유 정도는 내가 줄 수 있다. 그래서 너 더 귀찮게 안 하고 그냥 두는 거야. 근데 선생님이 분명 말했어. 너 돕고 싶다고. 그러니까 선생님 도움 필요하면 말해. 다 도와줄 순 없어도 내 힘닿는 데까진 도와줄 테니까. 너 때문에, 아니, 니 덕분에 선생님이 참교육을 고민하게 된다, 이 녀석아.”

   말을 맺으며 나는 나무다리를 마저 걸어 나갔다. 녀석은 다시 나를 뒤쫓아 왔다. 음악실에 우리 단둘이 머물렀던 날 흘렀던 침묵보단 한결 가벼운 침묵이 우리 사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왼쪽 바지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학생주임 선생님 전화였다. 정상에서 인원체크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예, 선생님. 다 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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