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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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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Sep 01. 2016

같이 와 보고 싶었어

   “지수야. 머리. 머리 조심. 바로 위에 거미줄 있다.”

   내가 다급히 외쳤다. 나는 하얀 손전등 불빛을 당신 뒤통수 쪽으로 얼른 비춰 줬다. 유연한 동작으로 몸을 굽힌 당신은 잽싸게 거미줄을 피했다. 당신 몸짓 따라 출렁거리는 숱 많은 머리카락들이 손전등 불빛을 고스란히 반사시켰다. 어디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 왔다. 개구리 소린가.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야밤이라 보이는 게 많진 않았다. 손전등 불빛을 비춰야 사물을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여태 본 것들 중 절반이 거미줄이었다. 건물 안도 아닌데 사방이 안개 같은 거미줄로 자욱하다. 거미줄 없는 곳은 잡초들로 가득했다. 내 키보다 큰 잡초를 태어나 처음 본다.  

   “진짜 들어갈 거야?”

   소리치듯 내가 물었다. 당신과 나 사이 거리가 먼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어둠 때문에 당신이 멀게 느껴져서 그런가 보았다. 당신은 뒤돌아보는 법도 없이 “응.” 하는 짧은 대답만 남겼다. 당신은 막 아파트 단지 입구를 지나고 있었다. 철거되다 말았는지 아파트 단지 입구는 반쯤만 부서져 있었다.  

   당신과 내가 지금 걸어 들어가고 있는 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아파트다. 아파트 이름이나 아파트 단지 풍경을 보아하니 방치된 지 최소 10년은 넘어 보인다.     


   3시간 전까지만 해도 당신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아침에 전화 걸었을 때 당신은 오늘 회사 휴무라 시집 간 친구 집 놀러갔다 오겠다고 했다. 점심 때 돈가스와 우동을 먹었다는 당신 문자 메시지엔 친구 딸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우리 조카보다 예쁘네. 조카한테 미안하지만…….」 하고 답장 보냈더니 당신은 깔깔 웃으며 전화를 걸어 왔다. 당신 옆에서 통화 소릴 엿듣던 당신 친구는 언제 당신과 함께 놀러 오라며 활기차게 웃었다.

   당신을 만난 건 5시간 전이었다. 그때가 오후 5시였다. 나는 막바지 작업 끝내 놓고 2층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당신은 1층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막 들어서고 있었다. 1층 문 열리는 소리 듣고 나도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당신을 마주치자마자 나는 “나가자.” 하고 말했다. 당신은 바깥에 비 온다며 내게 옷 갈아입을 것을 권했다. 당신을 2층 소파에 앉혀 둔 뒤 나는 침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앞장서 계단 내려가던 당신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고 그대로 뒤돌아 내게 입을 맞췄다. 당신 기분이 좋아 보여 나도 좋았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동네 파스타 집에 들어갔다. 당신은 작은 입으로 샐러드를 씹으며 오늘 내 작업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당신 접시가 비지 않았는지 컵에 음료수가 얼마나 차 있는지 확인하며 오늘 작업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얘기해 주었다. 당신은 조각칼에 베인 내 손을 매만지며 “이런 거 보면 얼마나 속상한 줄 알아? 조심 좀 하라구. 내가 다른 건 아무 소리 안 하잖아. 다 좋은데 다치지만 마.” 하고 말했다. 나는 밴드 붙은 손으로 당신 머릴 쓰다듬었다. 그러고 있는데 당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손을 떼며 당신에게 고갤 끄덕여 보였다. 전화 얼른 받으라고.

   당신이 어머니와 통화하는 동안 나는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세 달 전이었다. 당신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갔더니 당신이 당신 가족 모두와 함께 앉아 있었다. 당신은 가족들을 향해 내가 최고의 조각가라고 말했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며 “저 사람은 내 인생도 멋지게 조각해 줘. 진짜야.” 하고 말했을 때 그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거기서 눈물을 와락 쏟을 뻔했다. 그 날 나는 당신에게 훌륭한 신랑감이 아니란 소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과 내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에 당신 손을 놓지 않았다. 당신은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나는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저녁을 다 먹은 우리는 작업실 쪽으로 걸어 왔다. 작업실 맞은편에 새로 생긴 카페가 있길래 그리로 들어갔다. 그 카페에선 동남아시아의 전통 차를 팔고 있었다. 메뉴판이 모두 외국어로 되어 있었다. 당신은 그걸 재밌어 했다. 나는 당신이 골라 준 차를 마셨고 당신은 내가 골라 준 차를 마셨다. 내가 마신 차는 홍차처럼 씁쓸했고 당신이 마신 차는 생전 처음 맡아 보는 향을 가지고 있었다.

   찻잔 두 개가 거의 비어 갈 무렵이었다. 당신이 별안간 핸드폰을 껐다. 그러더니 “내일 작업할 거 많아?” 하고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눈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당신은 “그럼 나랑 어디 좀 같이 가.” 하고 말했다. 그 태도가 너무 결연해 나는 그러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내 차 대신 당신 차로 움직이자고 했다. 나는 또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곳에 있다.    


   “어디쯤이었더라…….”

   퀴퀴한 냄새 나는 1층으로 들어서며 당신이 말했다. 아까 건물 외벽에 102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동 입구 유리는 다 깨져 있었고 엘리베이터는 문 없이 시커멓게 뚫려 있었다.

   “아는 곳이야?”

   당신 하자는 대로 할 생각이긴 했지만 궁금증에 못 이긴 내가 물었다.

   “잠시만……. 여기 몇 동이지?”

   “102동.”

   “여기 아니다. 나가자.”

   당신이 내 손에 쥔 손전등을 가져가며 말했다.     


   “여기야.”

   103동 입구에서 당신이 소곤댔다.

   “여기가 어딘데?”

   “내가 살던 곳.”

   “살던 곳?”

   너무 뜻밖의 대답이라 내가 소스라치며 외쳤다.

   “응. 살던 곳. 태어나서 살던 곳. 자기랑 와 보고 싶었어.”

   “왜?”

   “이리 와 봐. 위험하진 않겠지?”

   손전등 불빛을 이리저리 흔들며 당신이 말했다. 내가 위험하다고 해도 그 위험성을 전혀 못 느낄 것 같은 눈빛이었다. 당신이 내게 팔짱 끼자마자 나는 계단을 올랐다.

   누군가의 고향에 오기는 처음이었다.

   당신이 걸음을 멈춘 곳은 3층이었다. 3층 엘리베이터 문은 성하게 붙어 있었다. 당신은 엘리베이터를 지나 306호 앞에 섰다. 당신이 손전등 불빛으로 나를 가리켰다. 

   “눈부셔.”

   “여기야.”

   “여기야? 자기 태어나서 살던 곳?”

   “응.”

   “들어가 볼까?”

   당신 대답 기다리기도 전에 내가 306호 현관문 손잡이를 내렸다. 하지만 306호는 굳게 닫혀 있었다.

   “에이……. 닫혀 있다.”

   내가 실망하자 당신이 생긋 웃었다.

   “같이 와 보고 싶었어.”

   당신이 다시 내게 팔짱 끼며 말했다.

   “왜?”

   “몰라. 보여 주고 싶었어.”

   “여길?”

   “응.”

   “여기가…….”

   “응?”

   “자기한테 중요한 곳인가?”

   “음…….”

   “아니다. 질문이 이상했네. 고향은 중요한 곳 맞지.”

   “응. 신기했어.”

   “뭐가?”

   “잊고 지냈거든. 이 아파트도 여기서 살던 시절도……. 근데 자기 만나고 나서 여기가 떠올랐어. 자기한테 여길 보여 주고 싶었어. 내 시작을 보여 주고 싶었어.”

   “시작…….”

   “우린 살다가 만났잖아. 20년 넘게 따로 살다가 만났잖아. 가족이 아니니까……. 그게 너무 당연한 건데 문득 아쉽더라구. 자기가 내 삶에 없던 시간이 아쉬웠어. ‘내 삶에 자기가 꽉 들어차 있음 좋을 텐데.’ 하고 말이야. 그래서 여길 자기한테 보여 주면……. 자기 없던 시간도 자기랑 같이 보낸 거처럼 느낄 수 있을 거 같았어. 그래서 여기 같이 오고 싶었어. 나 여기서 12년 살고 지금 집에서 여태 살았어. 지금 집은 알지?”

   당신이 조곤조곤 말했다. 나는 팔과 허리로 전해져 오는 당신 체온을 느끼며 가만 서 있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단 표현이 이런 순간에 탄생됐구나.

   “왜 대답이 없어?”

   당신이 팔짱 낀 채로 나를 밀며 대꾸를 재촉했다.

   “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야…….”

   팔짱을 풀고 내가 말했다.

   “이런 생각이 뭔데?”

   나는 대답 없이 당신을 끌어안았다. 언어 능력이 전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당신에게 해 줄 말이 너무 많은데 정작 할 수 있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결혼해 줘.”

   당신이 내게 안긴 채 조그맣게 말했다. 몸을 떼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나한테 이 말 어려워하는 거 다 알아. 자긴 생각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그 말 내가 할게. 결혼해 줘. 당신만 있으면 된단 말은 못해. 우리 넘어야 할 산 많을 거야. 그래도 하자. 나 다른 사람하고는 싫어. 내 시간 다 주고 싶은 사람 자기밖에 없다구. 하다못해 지나간 시간까지 주러 여기까지 왔잖아? 대답은 지금 하지 마. 오늘은 낭만적인 것만 할 거야. 내 평생의 낭만이 다 여기서 꽃피고 있다구. 초치면 가만 안 둬.”

   말을 마친 당신은 내 두 손을 모아 꼭 잡았다. 곧 당신은 내 손을 놓고 뒤돌아 걸어 나갔다. 나는 당신을 붙잡을까 지금 바로 대답할까 아님 다른 말을 할까 여러 생각을 했지만 그냥 당신을 뒤따르기로 했다. 당신 곁에 온 내게 당신은 다시 팔짱을 꼈다.




소설집 안내 및 문의 : www.parkdabin.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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