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Sep 04. 2016

반 고흐 미술관

   “눈 좀 붙여요.”

   잠자는 시늉과 함께 내게 속닥거린 당신이 좌석 등받이를 뒤로 기울였다. 나는 당신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졸려?”

   내가 당신에게 물었다. 연보라색 면 담요를 목까지 당겨 덮은 당신은 고갤 저었다.

   “근데 자겠다구?”

   조금 웃으며 내가 다시 묻자 당신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도착할 때 컨디션 좋아야 하니까…….”

   눈 감은 채 당신이 잠꼬대처럼 웅얼거렸다. 나는 내 좌석 앞 간이 탁자에 놓인 담요 포장을 뜯었다. 내 몫의 담요를 당신에게 덮어 주자 당신은 내 손을 찾아 쥐었다. 여전히 눈은 감고 있었다. 당신 입가에 미소가 잠시 머물다 간 듯도 했다.

   잠들기 어려운지 당신은 계속 불규칙적으로 호흡했다. 한동안 당신 살펴보던 눈길을 거두고 나도 편히 앉았다.

   좌석 앞 바닥에 놓아 뒀던 가방 지퍼를 열고 책 한 권을 빼 들었다. 「미술 초짜가 만난 네덜란드 미술관」이라는 책이다. 사흘 전에 한 번 읽고 지금 두 번째 읽는 참이다. 이 책을 산 지는 3주쯤 됐다. 지하철역 지하상가 서점에서 이 책을 샀다. 그 날 책 계산해 주던 직원이 나를 보고 웃었다. 붙임성 좋아 보이는 직원은 내게 “미술 초짜신가 봐요?” 하고 물었다. 나는 멋쩍게 따라 웃으며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아무렴요. 초짜이다마다요. 근데 이 초짜가 3주 뒤에 네덜란드로 갑니다. 여행이 아니라 딱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요. 그게 뭐냐구요? 책 표지를 다시 한 번 봐 주시겠어요? 네, 미술관엘 갑니다. 미술관도 그냥 미술관에 가느냐구요? 아니요. 반 고흐 미술관에 갑니다. 반 고흐 미술관을 나와서는 또 다시 반 고흐의 미술 작품을 찾아다닐 거예요. 반 고흐의 미술 작품 모두를 눈에 담을 때까지요.

   책 값 17800원이 결제되는 동안 나는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아무렴요 초짜이다마다요…….    


   지금껏 내게 미술관은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TV에서 소설에서 영화에서 가끔 스치듯 볼 뿐……. 내 현실세계와는 전혀 관련 없는 곳이었다. 나는 미술과 전혀 관련 없는 인생을 살아 왔다. 미술만이 아니다. 예술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인생을 살아 왔다. 기억도 안 나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 내게 붙은 ‘수학 영재’ 딱지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검증 절차를 밟아 내가 수학 영재가 된 건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내 최초의 기억은 어느 초등학교 교장실에서 시작된다. 거기서 엄마와 교장선생님은 잔뜩 엄숙한 표정으로 내 얘길 했다. 교장선생님은 나를 이 학교에 입학 시키고 싶어 했다. 교장선생님 입에서 ‘이런 수학 영재가’라는 말이 네 번 나왔다. 엄마는 어깨를 으쓱대며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결국 그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와 대학교도 비슷한 식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우리 집을 찾아와 엄마를 설득했고 엄마가 설득되면 내 진학 문제도 결정됐다. 

   내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족들조차 그랬다.    


   그런 내게 내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 생겼다. 아무 군더더기 없이 내 이름만을 불러 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게 당신이었다.

   그러고 보면 당신 인생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던가.

   당신을 처음 만난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지도교수 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연구원으로서 내가 하는 일은 세상의 현상을 수학 공식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세계를 수학으로 풀이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세상에 일어난 어떤 일을 수학 공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거기 생기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세울 수 있으니까……. 근데 이 얘길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에게 해 본 적은 없다. 그들은 항상 내 얘길 어려워하니까. 가끔은 나도 내 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들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따금 기업의 청탁을 받아 그들을 위해 일하곤 했다. 당신은 내가 네 번째 계약한 기업의 과장이었다. 당신이 과장으로 있는 그 기업은 금융 기업이었다. 금융은 돈이고 돈은 숫자다. 첫 만남에서 나는 당신 눈을 바라보며 예상했다. 당신도 나처럼 바깥세상보단 숫자와 가깝게 지내며 살아 왔을 거라고. 내 마음이 읽혔는지 당신이 웃으며 이 말을 했었다. “수학자……. 수학자면 하루 종일 숫자 갖고 씨름하시겠네요?”

   서로를 향한 우리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우린 우리의 직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예외가 없었다. 취미로 문학 서적을 즐겨 읽는다든지 재즈 음악을 듣는다든지 그런 예외가 없었다.

   우리의 이 비슷한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결국 우리 사이를 발전 시켰다. 동료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런데 당신이 내게 와 뜬금없이 말했다. “고흐 알죠. 화가. 고흐 그림 보러 가요. 진짜로. 진짜 그림 보러 가요.” 나는 꿈과 현실을 분간 못하겠단 얼굴로 당신을 멀찍이 바라보기만 했다. 한 달 전의 일이다. 갑자기 고흐 그림 보러 가잔 이유를 물었더니 당신은 입을 한참 다물고 있었다. 그러더니 “암스테르담 도착하면 말해 줄게요.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라고 있어. 우리 거기 가요. 가자구.” 하며 조금 웃었다. 나는 고흐가 네덜란드 화가란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비행기는 스히폴 공항에 착륙하기로 돼 있다. 스히폴 공항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공항이다. 경유지에서 비행기 안 갈아타고 직항으로 가는 거지만 최소 10시간은 꼼짝없이 비행기 속에 있어야 한다.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봤다. 비행기 뜬 지 이제 2시간 조금 지났다. 손목시계에 달린 버튼 몇 개를 눌렀다. 한국 모드로 맞춰진 시간을 네덜란드 모드로 변경했다. 네덜란드는 지금 새벽이다.

   “안 잤어요?”

   당신이 부스스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뭐야, 잤어, 방금?”

   “응……. 나 얼마나 잤어요?”

   “10분?”

   “느낌으론 한 한 시간 잔 거 같았는데…….”

   “곤했나 보네. 어제 잠 못 잤어?”

   “설레서 어떻게 자요. 날밤 꼴딱 새우고 왔지.”

   당신이 손바닥을 오른쪽 뺨에 가져다 대고 말했다. 당신 오른쪽 뺨에 옷 자국이 나 있었다. 

   “그거 지금 얘기해 주면 안 돼?”

   당신이 또 잘까 봐 당신 담요 벗기며 내가 물었다. 

   “뭘요?”

   “갑자기 웬 고흐야.”

   “응?”

   “내가 생각을 해 봤거든. 사람이 살다가 한 번씩 정반대 삶을 느껴 보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래서 당신이 갑자기 그림 보고 싶어 하나, 싶었어. 거기까진 이해해. 근데 왜 하필 고흐야? 세상에 화가가 한둘이 아닌데……. 얘기해 준다고 했잖아. 고흐 그림 보러 가잔 이유 말이야. 암스테르담 도착하면 얘기해 준다고……. 근데 너무 궁금해서. 지금 얘기해 주면 안 돼? 꼭 암스테르담 도착해야 들을 수 있는 얘긴가?”

   “아니. 지금 얘기해 줄 수 있어요. 되게 궁금했나 보네. 그럼 진작 물어보지! 물론 비행기 타기 전까진 얘기 안 해 줬겠지만.”

   당신이 조금 타박하듯 말했다.

   “난 무슨 대단한 이유 같은 게 있는 줄 알고…….”

   “대단한 이유가 아니라서 도착하면 얘기해 준다고 한 건데.”

   “응?”

   “대단한 이유 아니라서 진짜 이유 들으면 같이 안 가려고 할까 봐……. 약간의 호기심과 흥미 유발을 위해?”

   당신이 입술을 샐쭉거리며 말했다.

   “그럼 얘기해 줘.”

   “우리 부장님 알죠. 김 부장.”

   “약간 괴짜라던 그 김 부장?”

   “응. 그 김 부장. 김 부장이 두 달 전에 유럽으로 출장을 갔거든요. 세 군데에 계약 따러……. 근데 계약 따내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나 봐요. 출장 기간이 사흘에서 열흘 되고 열흘에서 보름 되고 그러는 거야. 남자 혼자 유럽에서 이래저래 살려고 하니까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김 부장이 와이프한테 이틀만 와 있어 달라 그랬대. 그때 김 부장이 영국 있었거든요. 그래서 와이프가 영국으로 날아갔네? 근데 와이프가 가서 보니까 아주 가관이었던 거예요. 김 부장 꼴이…….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와이프가 거기 계속 지내면서 김 부장 밥 챙겨 먹이고 그랬대요. 결국 계약은 두 건만 성사 시키고……. 김 부장이랑 김 부장 와이프랑 한국 들어올 날짜를 잡고 있었대요. 한국 들어오기 하루 전인가? 김 부장 와이프가 플로리스트잖아. 꽃 만지는 사람. 그러다 보니 그림 이런 데 관심도 많은가 봐요. 평생 소원이니 미술관 한 번만 구경 시켜 달라 그랬대요. 와이프가 김 부장한테. 평생 소원이라는데 뭐 별 수 있겠어? 김 부장이 와이프한테 물어 봤대요. 가고 싶은 미술관 있느냐고. 그랬더니 와이프가 고흐 미술관을 가고 싶다 하더래요. 자긴 평소에 노란 꽃 너무 좋아하는데 고흐가 해바라기를 즐겨 그리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그래서 둘이 부랴부랴 네덜란드로 넘어간 거예요. 고흐 미술관 들어가서 그림을 보는데……. 무슨 하늘을 배경으로 한 밀밭이었나……. 아무튼 그 그림 앞에 걸음이 턱 걸리더래. 김 부장이요.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이냐면……. 누르죽죽한 밀밭이랑 칙칙한 하늘 그려진 게 전부거든요? 하늘 칠한 파란색이 왜 쨍한 파란색이 아니라 거뭇거뭇한 파란색이고 그런 거……. 근데 그 그림이 김 부장 가슴을 퍽 치더래요. 가슴을 퍽퍽 치다가 구멍을 다 내더래요. 그 구멍에서 여태 참아온 울분이 터져 나오더래요. 그래서 김 부장이 그 그림 앞에서 엉엉 울었다는 거야. 나중엔 미술관 직원이 와서 밖으로 안내하고 그랬대요. 죄송하지만 울음 그치고 다시 관람하시라고……. 근데 내가 김 부장을 7년 동안 봐 왔잖아요. 사람이 아무리 독특하다 해도 어디서 대뜸 오열하고 그런 사람은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난 너무 신기한 거야.”

   “그래서 당신도 고흐 그림 한 번 보고 싶다 그거야?”

   “그런 것도 있어요. 과연 고흐 그림이 내 가슴도 탕탕 두드려 줄까. 그러다 내 안에서 뭘 끄집어내 줄까. 궁금해요. 근데 그거보다도……. 내가 너무 내 세상에 갇혀 살았단 느낌이 들었어요. 누구는 살다가 그림 보고 펑펑 울기도 하는데 난 뭐지? 난 왜 항상 하던 것만 하고 살아왔지?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 느낌이 너무……. 힘들었어. 갑자기 나 자신이 꽉 막힌 사람 같구……. 바보 같구 못 견디겠는 거야. 그래서 좀 벗어나고 싶었어요. 내 원래 방식에서. 근데 내가 내 원래 살던 방식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잖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깜깜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김 부장 케이스를 따라서……. 일단 고흐. 고흐 그림으로 가자. 그렇게 된 거예요. 별거 없죠?”

   당신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말을 마쳤다. 나는 대답 대신 읽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표지를 다시 넘겼다. 반 고흐 미술관이 소개된 페이지를 찾았다. 김 부장 가슴을 뒤흔든 그림의 제목은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밀밭’이었다. 당신 설명대로 그 그림은 음침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당신에게 책을 넘겨주었다. 당신이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밀밭’을 꼼꼼히 보는 동안 나는 당신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얘길 듣는다. 온갖 사람들로부터……. 어떤 얘긴 아주 짧아도 금세 까먹어지지만 어떤 얘긴 아주 길어도 오래 기억된다. 어떤 얘긴 우리 삶을 조금도 건드리지 못하지만 어떤 얘긴 우리 삶을 통째로 박살내 버린다. 박살내 버리고 새로 세우기도 한다. 출장 다녀 온 김 부장 얘기는 당신 삶의 어느 부분을 박살냈나 보다. 당신은 그 박살난 부분 너머에서 불어오는 새로운 공기를 맡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거다. 내가 살아온 삶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저 너머에 새로운 뭔가가 더 있다는 것을.

   당신이 새로운 삶 쪽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뭘 발견하게 될지 나는 모른다. 같은 길을 걸어도 누군가는 새를 발견하고 누군가는 구름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강물을 발견하니까. 하지만 당신의 새로운 삶에도 나는 기꺼이 동행하고 싶다. 당신이 그 새로운 삶에서 숫자가 아닌 것들과 가장 친해진대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사랑을 시작하게 한 이유가 사랑을 지속시키는 이유가 될 필요는 없다. 서로 닮았단 이유로 우리가 가까워졌지만 서로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가 멀어질 필요는 없단 말이다. ‘신문지로 모닥불 피웠다고 그 모닥불에 신문지만 넣어야 하는가?’의 문제와 같다. 중요한 건 불이 붙었다는 거지 뭘로 그 불을 붙였는가가 아니란 소리다.

   숫자가 우리를 인연으로 만들었지만 우리 인연에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왠지 이번 미술관 관람은 당신 삶을 크게 변화 시킬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그게 우리 관계에 위기로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조금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소설집 안내 및 문의 : www.parkdabin.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같이 와 보고 싶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