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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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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Sep 11. 2016

뮤지컬 배우 손우정

   “뭐 보고 있어?”

   몸을 내던지듯 소파 위에 널브러지며 당신이 내게 물었다. 새로 들인지 얼마 안 돼 보이는 가죽 소파와 당신 몸이 만나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당신은 소파가 푹신할 줄 알고 뛰어든 모양이다. 소파와 부딪친 쪽이 얼얼한지 당신은 상체를 조금 움츠렸다.

   나는 찌푸려진 당신 얼굴과 진료실 쪽을 번갈아 보았다. 열린 진료실 문 너머에서 간호사가 막 걸어 나왔다. 간호사가 당신 이름을 불렀다. 당신은 내게 눈짓으로 인사한 뒤 주사실로 갔다. 당신 발에 걸린 커다란 슬리퍼가 헐렁거리며 사라졌다. 주사실 문이 닫혔다.

   다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당신 나오자마자 접었던 잡지를 도로 펼쳤다. 읽다 만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손우정……. 찾았다. 나는 손우정의 기사를 보고 있었다. 손우정은 10년 전쯤에 작은형이 좋아했던 뮤지컬 배우다. 그때 작은형은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나는 대학생이었고. 운동밖에 모르던 작은형이 손우정을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모른다. 아이스하키 선수와 뮤지컬 배우……. 희한한 조합이었다. 

   작은형이 손우정을 좋아한단 사실을 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걸 알게 된 건 작은형이 훈련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밤이었다. 그 훈련 있기 3주 전에 국가대표 선발이 있었다. 아마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지 싶다.

   작은형은 국가대표로 발탁되지 못했다. 그 다음 날부터 작은형은 눈 뜨고 잠들 때까지 운동만 했다. 평일엔 아이스링크 경기장에서 살다시피 했고 주말엔 온 동네를 뛰어 다녔다. 작은형은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훈련에도 모두 참석했다. 하루는 아이스하키 팀 코치가 내게 전화를 걸어 왔다. 코치는 내게 “작은형 좀 말려 주십시오.”라고 했다. 공손하면서도 절박한 목소리였다. 작은형을 아끼는 사람인가 보았다. 코치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국가대표 선발과 코치와는 아무 상관없었지만 나는 코치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도 내 생각보다 작은형을 많이 아꼈나 보았다. 코치의 전화를 받은 날부터 나는 작은형을 말리기 시작했다. 훈련 좀 작작 다니라고. 하지만 매번 작은형은 죽어도 가겠다고 했다. 죽어도 가겠다고. 죽어도 가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으랴.

   작은형은 좌절감이나 패배감도 운동으로 감당했다. 평생 하나만 하고 살아온 작은형은 그 하나를 통해 모든 걸 해결했다. 운동을 통해 기뻐했고 운동을 통해 슬퍼했고 운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났다. 한 가지에 몰두해 사는 인생은 뼈저리게 근사하지만 때론 지독히 고독한 것이기도 하단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래, 그 밤. 젖은 운동복 가득 든 가방 어깨에 걸고 작은형이 집에 돌아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차림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좀 다른 표정이었다. 만약 표정이 같았다 치더라도 낌새가 여느 때 같지 않았다. 가족만 감지할 수 있는 미묘한 이상 신호……. 그런 게 느껴졌다. 거실에 엎드려 핸드폰 만지고 있던 나는 작은형을 쫓아갔다. 작은형 방에서 시큰한 땀 냄새가 났다. 웃옷을 벗으려던 작은형이 나를 돌아보았다. 왜 왔냐고 묻는 눈이었다. 이상한 낌새 하나 쫓아 여기까지 왔지만 작은형이 왜 왔냐고 물으면 이쪽에선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눈을 피하며 쭈뼛거렸다. 작은형이 웃옷을 마저 벗고 “피자 먹을까?” 하고 물어 왔다. 난 고갤 끄덕이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40분쯤 뒤 우리는 주방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작은형이 손에 묻은 기름기를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아직 피자 두 조각밖에 안 먹어 놓고 그만 먹으려는 건가 싶었다. 국가대표 선발 안 돼서 마음 많이 상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작은형은 깨끗해진 손으로 식탁을 떠나려는 게 아니었다. 작은형은 회색 트레이닝복 바지 속에서 티켓 하나를 꺼냈다. 그걸 내게 내밀었다. 뮤지컬 티켓이었다. 공연 시간이 3시간 전이었다. 나는 피자를 우물거리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작은형은 “방금 보고 왔어. 이거.”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꼴로? 아까 그 꼴?” 하고 물었다. 아까 옷차림이 떠올랐는지 작은형은 얼굴을 붉혔다. 작은형이 얼굴 붉힌 걸 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작은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작은형은 어릴 때처럼 소리 없이 웃으며 “이거 또 보러 갈 거다.” 하고 말했다. 굳은살 박인 작은형 손끝에서 뮤지컬 티켓이 하늘거렸다.

   작은형이 뮤지컬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본다고? 심지어 무지 기꺼이?

   나는 작은형이 아이스하키를 아예 관두려는 줄 알았다. 뮤지컬을 시작으로 새로운 취미를 가져 보려는 건가. 새로운 취미 가지면서 이제 다른 분야에 관심 뻗치려나. 아이스하키 하면서 자꾸 피 마르는 거 보느니 작은형이 다 관두고 새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작은형에게 아무것도 더 묻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작은형은 매주 두 번씩 뮤지컬을 보고 왔다. 그런데 작은형 방 책상에 쌓여 가는 티켓들이 수상했다. 공연 이름이 다 똑같았다. 그로부터 세 달 뒤 나는 작은형으로부터 손우정의 이름을 전해 들었다. 손우정은 형이 매주 두 번씩 보러 간 뮤지컬 공연의 주인공이었다. 작은형은 그 공연 포스터 한가운데에 있는 머리 긴 여자를 가리키며 “형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거든. 이 사람인데.” 하고 말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손우정의 공연은 인기가 없었다. 작은형은 매번 맨 앞자리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손우정과 작은형이 시선 교환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손우정이 작은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손우정의 손 인사가 작은형 본인에게 향해진 거라는 믿음이 확신이 되어 갔다.

   손우정이 주인공으로 활약한 그 뮤지컬 공연 시즌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 날 작은 행사로 관객과 배우의 사진 찍기 타임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작은형과 공연장에 같이 있었다. 작은형은 부끄럽다고 그냥 나가자고 했다. 나는 덩치 산만한 작은형을 안간힘 다해 붙들었다. 결국 작은형은 못 이긴 척 무대 위로 올라갔다. 손우정과 사진 다 찍고 내려온 작은형은 “1층에 가자.”고 말했다. 우리가 1층에 서성거린 지 30분이 지나서 손우정이 나타났다. 손우정이 작은형에게 1층에서 기다리라 한 모양이었다. 작은형이 손우정에게 그리 말했을 리가 없었다.

   손우정과 작은형은 친구가 되었다. 나도 가끔은 그 두 사람 약속 자리에 초대되었다. 평온한 1년이 지났다. 손우정에게 꽤 규모가 큰 공연 제의가 들어왔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손우정은 승낙했다. 그리고 그 공연은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났다. 손우정은 TV 프로그램 게스트로 흔히 불려 다니거나 지역 행사에 귀한 손님으로 초대 받는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 CF도 두 편 찍었다. 신기한 건 손우정이 우리에게 내내 한결같았다는 점이다. 작은형과 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손우정을 만날 수 있었다. 

   한결같은 건 우리 사이뿐이었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손우정에게 엄청난 서포터 한 명이 생겼다. 서포터는 알아주는 대기업의 간부였다. 손우정에게 첫눈에 반한 것 같았다. 작은형처럼…….

   서포터는 등장부터 화려했다. 손우정은 서포터가 투자한 뮤지컬 공연 주인공이 되면서 그와 얼굴을 익혔다. 이후로도 서포터는 손우정의 공연과 생활에 엄청난 혜택과 편의를 제공했다. 작은형 얼굴에 그늘이 늘기 시작했다. 작은형이 손우정에게 가진 마음이 우정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결국 작은형은 손우정을 떠났다. 그 자세한 내막을 다 알 순 없지만 작은형이 손우정을 포기한 것 같았다. 작은형은 더 이상 손우정을 만나지 않았다. 손우정은 갑자기 날벼락 맞은 사람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 왔다. 작은형 이름을 대며 “걔 갑자기 왜 이래?”라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그냥 손우정이 미웠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손우정의 결혼 소식을 접했다. 손우정은 결혼하기 전부터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결혼과 동시에 모든 작품 활동을 끝내겠다고 손우정이 선언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손우정의 결혼이 화제가 된 건 아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손우정이 하겠다는 게 농사여서 사람들은 의아해 하거나 깜짝 놀랐다. 손우정과 결혼할 사람이 농부인 건 아니었다. 아, 손우정과 결혼할 사람……. 그는 그 서포터가 아니었다. 손우정은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시나리오 작가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와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로 했다는 거다. 손우정은 농사를 지으며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손우정의 배우자는 농사를 도우며 시나리오를 쓸 거란다. 그 기사를 봤는지 안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 즈음 작은형은 술을 아주 많이 마셨다.    


   그리고 지금이다.

   나는 잡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손우정을 바라보았다. 10년 세월이 얼굴에 이런저런 흔적을 남겼지만 손우정은 예전처럼 명랑하고 유쾌해 보였다. 

   그때 작은형과 나는 왜 손우정이 그 서포터와 결혼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왜 아무도 주지 않은 배신감을 미리 받은 걸까. 그 배신감에 겨워 작은형은 손우정을 떠났고 나는 손우정에게 침묵했다. 왜?    


   “주사 너무 아프다. 뭐했어?”

   허릴 짚은 채 이쪽으로 다가오며 당신이 말했다. “뭐했어?” 하고 묻는 당신 말끝이 잡지 기사에 가 닿았다. 나는 잡지를 덮고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옛날 생각.”

   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재주도 좋으셔라. 요즘 잡지 보면서 옛날 생각을 다 하고.”

   “그러게. 주사 많이 아팠어? 아파서 어떡했어? 걸을 수 있겠어? 업을까?”

   내가 호들갑을 떨자 당신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애야? 이제 진짜 끝났어. 나가자.”

   당신이 내 옷깃을 잡아끌며 나를 채근했다. 나는 흐트러진 당신 머리카락을 바로 해 주며 일어섰다. 당신이 내게서 잡지를 받아갔다. 나는 당신이 그 잡지를 책꽂이에 꽂아 넣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얼마 전에 당신이 내게 말했었다. 나는 당신에게 뭐든 최고를 주는 사람이라고. 그땐 그 말을 믿어도 될까 싶었는데……. 이제 그 말을 믿어야겠다. 믿어야겠다. 그 말을 믿어야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에게서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을 수 있다. 

   내게 보내는 당신 마음보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보내는 마음을 더 많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는 당신을 떠나게 되어있다. 당신 탓하며 당신으로부터 달아나게 되어 있다.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그 말을 믿어야겠다. 당신이 내게 보여 준 그 마음을 믿어야겠다.




소설집 안내 및 문의 : www.parkdabin.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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