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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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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Sep 14. 2016

뒤에서 지켜봐 주는 사람

   “수연아!”

   그녀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비명에 가까운 부름이었다. 읽고 있던 책을 엎었다. 주방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피 배어난 손가락을 물고 있었다.

   “뭐예요?”

   싱크대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내가 물었다. 싱크대 한편엔 도마가 놓여 있다. 도마 위엔 큼지막한 단호박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단호박 테두리엔 칼집이 여러 개 나 있다. 저걸 자르려다 손가락 베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내게 다친 손가락을 보여 주었다. 상처가 꽤 깊다. 상처 깊이를 가늠할 틈도 주지 않고 피가 솟아올랐다. 나는 키친타월을 뽑아 그녀의 다친 손가락에 감았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꽉 쥐었다. 이렇게 지혈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뭐라도 해야 하니까……. 

   허둥대는 건 나뿐인 듯했다. 기겁한 듯 소리칠 땐 언제고 그녀는 담담했다. 내 행동들을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안 아파요? 뭘 그렇게 멀뚱히 보고 있어요? 너무 놀라서 그런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병원부터 가요, 우리. 이거 이렇게 쥐고 있는다고 될 일 아닌 거 같은데. 병원 가요.”

   병원 가잔 내 말에 그녀는 순순히 고갤 끄덕였다. 병원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 웬일로.    


   나는 방에서 지갑만 들고 나왔다. 이렇게 정신없는 날 운전하면 사고 나기 십상이니까 택시 타고 가야겠다. 그녀는 다친 손가락을 움켜쥔 채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손가락에 감긴 키친타월이 아까보다 두꺼워졌다. 그녀의 얼굴색이 좀 창백해진 것 같다. 피가 생각보다 많이 나나 보았다.

   나를 발견한 그녀는 현관에 들어가 신발을 신었다. 나도 그녀 뒤를 따라 현관으로 들어갔다. 운동화 꿰어 신으며 신발장 선반에 놓인 액자를 쳐다보았다. 내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다. 회색 교복 차림의 나와 까만 정장 차림의 그녀가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아원에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헤어지면서 나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내가 고아원에 오던 날이었다. 무슨 단체라고 적힌 연두색 조끼 입은 아줌마들이 꼭두새벽부터 내 방에 들어왔다. 나를 데려가기 위해서란다. 내가 고아원에 가게 된단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아줌마들을 순순히 따랐다. 착한 아이처럼 고갤 끄덕여 보이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짐은 우리가 알아서 챙겨갈 테니까……. 넌 저기 저 머리 묶은 아줌마랑 먼저 내려가 있거라.”고 한 아줌마가 말했다. 나는 책가방을 메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신발장엔 어젯밤처럼 신발들이 다 놓여 있는데 거실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누구를 찾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현관을 빠져 나갔다. 이제부턴 정말 혼자라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런데 1층에서 기다리던 아줌마가 나를 끌어안으며 “너는 혼자가 아니야. 가서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날 거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하고 말했다. 믿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를 입양하겠단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어떤 부잣집 부부가 나를 입양하려 했다. 나는 거절했다. 그 부잣집 부부를 그냥 돌려보낸 날 나는 보육원 행정실장에게 이유도 모르는 욕을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내 목표는 입양되는 게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보육원에서 벗어나 진짜 혼자가 되는 것. 내 목표는 오직 그뿐이었다. 

   그녀도 그런 내 목표를 알고 있었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그 날 내가 그녀에게 내 목표를 이야기했다. 진로 발표 시간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교사 신분으로 우리 보육원에 진로 상담을 나와 있었다. 그녀는 2주에 한 번씩 우리 보육원을 찾아왔다. 다른 교사들은 공부를 가르쳐 주거나 간식을 사 주었고 그녀는 진로 상담을 했다.

   그녀와의 진로 상담이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진로 발표 시간마다 나는 내 한 가지 목표만을 이야기했다. 졸업하고 여길 어서 떠나는 것……. 내 진로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하루는 그녀가 집에 돌아가지 않고 남아 나를 따로 불렀다. 나는 그녀의 차 조수석에 앉아 그녀가 내게 하려는 말을 기다렸다. 그녀는 한참 뜸을 들였다. 진로 상담 시간에 내가 본 사람 맞나 싶었다. 매번 맞는 말만 재치 있게 골라 내뱉던 (사실 그래서 좀 재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사람이 한도 끝도 없이 머뭇대고 있다. 결국 20분쯤 지나서 그녀가 입을 떼었다. 그토록 오래 망설인 데 비해 결국 꺼내진 말은 너무 짧았고 또 너무 뜻밖이었다.

   “수연아,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니지?”

   나와 눈 못 마주친 채로 그녀가 내게 말했다.

   “네?”

   “아니……. 니가 보기에 말이야.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니지?”

   “그게 무슨 말인데요?”

   “말 그대로야. 니가 보기에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 물어보고 싶어서.”

   “이런 질문은 처음인데…….”

   “그냥 솔직하게 얘기해 봐.”

   “뭐……. 네, 선생님 막 그렇게 믿음직하고 그렇진 않아요. 서운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저 원래 사람 안 믿어요.”

   “못 믿으면 같이 살 수도 없는 건가?”

   “네?”

   “나는 너랑 같이 살고 싶은데.”

   “저랑요? 왜요? 아니……. 저랑요?”

   납득되지 않는단 얼굴로 내가 물었다. 서른도 안 된 앞길 창창한 그녀가 왜 나를……. 어린 애들도 아니고 다 커버린 나를 왜…….

   “입양이라는……. 그런 의미보다는……. 내가 니 부모가 되기엔 너무 젊긴 하지? 아무튼……. 나는 니 후견인이 돼 주고 싶은데…….”

   “왜요?”

   “넌 싫어?”

   “싫은 게 아니라 궁금하다니까요.”

   “뭐가?”

   “저는 너무 커버렸고…….”

   “여기서 니 나이를 왜 걸고 넘어져. 그게 마음에 걸리는 거야? 수연아. 나는 내가 키우기에 적당한 입양아를 찾고 있는 게 아니야. 방금 말했잖아. 나는 니 부모가 되고 싶다기보다 니 후견인이 돼 주고 싶은 거라고. 나는 누군가의 부모가 돼 줄 수 있을 만큼 그릇이 넓지 않아. 너한테 부모 노릇 못해 줘. 단지 난 니 인생을 가까이서 지켜봐 주고 싶어. 나는 너한테 그런 사람이 돼 주고 싶어. 그래서 후견인이라고 한 거야. 뒤에서 지켜봐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잖아, 후견인이.”

   “왜요?”

   “나도 혼자니까.”

   그녀가 눈길을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아랫배가 철렁거렸다. 수십 번 수백 번 혼자란 말을 해 왔는데……. 이 말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긴 처음이다. 혼자라는 걸 말하는 입장일 때와 듣는 입장일 때의 차이가 정말 크구나. 듣는 사람을 순식간에 외로워지도록 만드는 말이구나. 혼자란 말이.

   “거짓말……. 선생님이 선생님 부모님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그때 우리한테 얘기해 줬잖아요. 선생님 집 바로 위층에 부모님 사신다고.”

   “부모님 계시다고 가족이 많다고 혼자가 아닌 거면 얼마나 좋겠니. 니 말대로 선생님은 부모님도 계시고……. 언니도 오빠도 동생도 다 있어. 근데 선생님은 혼자야. 이해 안 되지?”

   “근데 왜 저예요? 전 혼자가 되고 싶은 사람인데……. 선생님은 혼자가 싫어서 나랑 살고 싶은 거 아니에요?”

   “넌 정말 혼자가 되고 싶은 거야?”

   “네.”

   “선생님도 옛날에 그랬는데.”

   “언제요?”

   “너만 할 때.”

   “지금은 왜 혼자가 싫은데요?”

   “그땐 혼자이고 싶었고 지금은 혼자이기 싫은 게 아니야. 지금 생각해 보면 나……. 단 한 순간도 진짜 혼자이고 싶었던 적 없었어. 다시 누가 나를 또 혼자 되게 만들까 봐 무서워서……. 그러면 더 아플 거 같아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이기만 한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래서 난 항상 혼자라고 혼자가 편하다고 앞으로도 혼자일 거라고 했었어. 진심으로 혼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다시 혼자 남는 게 두려워서…….”

   그녀는 말을 마친 뒤 오른쪽 눈을 비볐다. 나는 그녀가 눈에서 손 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차에서 나왔다.


   “택시! 여기!”

   아파트 단지 앞에 서서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 택시는 금방 왔다. 주황색 택시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키친타월 두어 겹을 들춰 피가 얼마나 배어났는지 살피고 있었다. 우리를 실은 택시는 빠르게 출발했다.

   “아파요? 이제 아프지 않아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내가 물었다.

   “응. 이제 욱신거려. 처음엔 아무 느낌 없었거든. 인간은 자기가 느낄 수 있는 범위 이상의 고통은 못 느낀다더니……. 진짠가 봐. 아……. 근데…….”

   그녀는 말하다 말고 엷게 웃었다. 

   “근데 뭐요?”

   “아니야.”

   그녀가 말끝을 얼버무리며 얼굴을 저었다. 그녀가 창문 쪽으로 고갤 돌리는 바람에 뭔가를 더 묻지 못했다. 나도 창밖을 내다보았다. 택시는 대학로를 지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산 지 8년이 지났다. 8년 간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또 많은 것들은 여전하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녀는 학교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 들어갔다. 나는 게임 회사에 취직해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그녀에게 선물을 사 주었다. 처음엔 돈 봉투를 내밀었는데 하마터면 크게 싸울 뻔했다. 그녀가 원하는 보답은 돈이 아닌가 보았다. 하기야 내가 선물 건넬 때도 “이런 거 좀 그만해. 내가 너한테 뭘 해줬다고 그래?”라며 퉁을 놓긴 한다. 그녀는 내게 보답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본 적이 없다. 어떤 호칭으로 그녀를 불러 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저기…….” 하고 내가 우물쭈물하면 그녀는 “응?” 하고 다가와 내 뒷말을 기다린다. 나는 그녀에게 항상 미안해하고 그녀는 내게 항상 고마워한다. 그녀는 내 후견인이 돼 주겠다고 해놓고 나를 뒤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 내 옆에서 내 앞에서까지 나를 바라보고 보살펴 주었다. 나는 부모가 어떤 건 줄 조금도 모르지만 그녀를 부모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 때문에 몇 번의 연애를 번번이 말아먹었다. 좋아하는 사람 생겨도 그 사람 언제 떠날까 걱정부터 앞서는 내가 나도 지긋지긋하다. 연인과 헤어지고 돌아온 밤이면 그녀와 술을 거하게 마셨다. 그녀가 연인과 헤어지고 돌아온 밤에도 우린 술판을 벌였다. 그녀도 나만큼 사람 사귀는 게 어려운가 보았다. 둘 다 초짜인 주제에 우린 서로에게 연애 코칭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싱글인가 보다. 

   나는 아직도 사람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있을 줄은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혼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게 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집 안내 및 문의 : www.parkdabin.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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