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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Nov 10. 2016

나만을 위한 인생 계획

평범함을 벗어나는 출발점



   “민선!”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재곤이었다. 재곤과 나 사이로 여행객들이 물결처럼 쓸려 다닌다. 나는 우리 둘 사이에 틈이 생기길 기다리며 재곤을 넘겨다보았다. 재곤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웃고 있다. 별일 없어도 천진난만한 저 기질이 가끔 미치도록 부러울 때가 있다.
   공항에서 일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는데 아직 이 공간은 나를 어지럽게 한다.
   경호원 자격으로 공항에서 일한 지 2년 7개월이 되었다. 원래 나는 공항 경호원이 아니었다. 경호원 신분으로 이 공항에 처음 발 디뎠던 당시 나는 사설 보안업체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커다란 국가사업 하나가 시작됐다. 여러 나라 대표자들이 우리나라에 모여 중요한 회의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측에선 각 나라 대표들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공항 보안 인력만으로는 그 일을 감당해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자세한 내막은 나도 잘 모른다. 어쨌든 나는 상급자 지시에 따라 공항에 투입됐다. 검은 정장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귀한 손님들 안전을 살피고 지켰다.
   그 후에 공항 경호원 자리가 몇 비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우리 회사에서 나를 그 자리에 넣어 주려 무진 애를 썼다. 마침내 나는 그 빈자리를 운 좋게 차지할 수 있었다. 내가 쓸 만한 경호원이란 생각은 안 해봤는데……. 공항‘씩’이나 되는 곳에 직장을 얻다니 한동안 얼떨떨했다.
   공항 취직하고 얼마 안 돼 전에 다니던 회사에 들렀다. 나는 회사 건물 앞에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 이름 적힌 플래카드가 건물 앞에 걸려 있었다. 회사에서 나를 잘 키워 공항에 넣어 주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회사 홍보용으로 공항에 들어간 것이었다. 어쩐지……. 아무 대가도 안 바라고 회사 사람들이 나를 너무 밀어 준다 싶었다.
   여자 몸으로 경호원 한다고 가족들은 항상 불만이었다. 그런데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공항에서 일하게 되자 가족들은 동네방네 내 자랑을 하고 다녔다. 가족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그 공항에서 일하는 가족을 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너무 매몰찬 생각인가? (내 직업을 반대하기만 했던 가족들에 대한) 그동안 서운했던 마음 때문에 가족들이 나를 칭찬하고 북돋워 줘도 그다지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너 근무 끝났어?”
   내 쪽으로 다가온 재곤에게 물었다.
   “어, 방금. 너는?”
   “아직.”
   작게 중얼거리며 시계를 내려다본 나는 뒷말을 이었다.
   “30분 정도 남았어.”
   “그럼 기다릴 테니까 저녁 같이 먹을래?”
   “그래, 그럼. 너 어디서 기다릴 건데?”
   “친구 잠시 오기로 해서……. 너 마칠 때쯤 내가 전화할게.”
   “알았어. 이따 봐.”
   재곤과 인사한 후 나는 다시 근무지로 돌아왔다. 


   별 일 없이 근무 시간을 다 채우고 재곤을 다시 만났다. 재곤은 검은색 후드 달린 코트를 입고 있었다. 공항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후 6시 17분이었다.
   “뭐 먹으러 갈까?”
   재곤 옆에 나란히 서며 내가 말했다.
   “따뜻한 거 먹자. 따뜻한 건데 니가 좋아하는 거.”
   “나 오늘 차 가지고 왔는데. 내 차 타고 가자.”
   내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보이자 재곤이 “오케이.” 하며 빙긋 웃었다.
   
   시내로 나온 재곤과 나는 두부전골 집에 들어왔다. 재곤은 채식주의자다. 재곤이 채식주의자인 걸 아는 사람은 공항에서 나뿐이다. 재곤이 ‘완벽한’ 채식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재곤은 완벽한 채식주의자였다(내가 재곤과 만나기 전의 일이라 나도 전해 듣기만 했다). 동물과 관련된 건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회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 도시락 싸 다니는 재곤에게 몇몇 이들은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했다.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다는 게 동물성 식품 먹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건 아닌데……. 재곤의 채식을 불편스럽게 여기는 이들은 재곤을 여러 방향에서 계속 압박했다.
   하는 수 없이 재곤은 부분적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남들 먹는 식사를 함께 하고 절친한 사람이나 가족과의 자리에서는 채식 식단을 따른다. 내가 재곤과 절친하다 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재곤의 음식 취향을 존중해 주고 싶어서 그렇게 하고 있다.

   나는 전골에 고기를 빼 달라고 주인아주머니께 부탁한 뒤 물을 마셨다. 재곤은 코트를 벗으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정말 이게 고마울 일인가.
다름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무조건 당연한 거라고 말은 늘 나오는데……. 그게 세상에서 지켜지기는 참 쉽지 않단 생각이 든다. 하기야 나도 마찬가지다. 재곤의 채식은 불편해 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다름은 여전히 불편해 한다. 이런 내 차별적 존중과 배려가 나를 자주 부끄럽게 만든다.
   두부전골 냄비가 반쯤 비었다.
   “민선아.”
   뜨거운 음식 때문에 벌개진 얼굴로 재곤이 나를 불렀다.
   “응?”
   “너는 5년 뒤에 뭐 할 거냐?”
   “5년 뒤? 왜?”
“그냥. 아까 공항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하더라고. 인생 계획은 5년 단위로 세워야 한다고.”
   “너는? 너는 무슨 계획 있어?”
   “아니. 근데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나는 다른 사람 다 빼 놓고 나만 좋고 나만 누리는 계획 같은 거 한 번도 세워 본 적이 없더라.”
   “그게 뭔데?”
   “항상 사람들이랑 같이 있다 보니까……. 내 인생 계획엔 늘 누군가 있었어. 가족이든지 친구든지 아니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여자 친구라든지. 그 사람들을 내 인생 계획에 넣게 되면 말이야. 그 사람들이랑 내가 같이 할 수 있는 뭔가를 생각해야 되잖아. 그래서 절충을 해야 돼. 내 쪽에서 뭔가를 포기해야 되는 거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네…….”
“내가 오늘 그렇게 불행한 것도 아니지만 미치게 행복한 것도 아닌 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없어서……. 많이도 아니고 그럴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없어서 그런 거 같단 생각이 든다. 남들 다 배제하고 아무 방해도 안 받고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게 인생에 하나쯤은 필요한 거 같아서. 그렇지 않냐?”
   내게 발언권을 넘긴 재곤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재곤은 반으로 조각난 두부 하나를 밥공기에 넣었다. 나는 식당 밖을 건너다보았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돌아다닌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불행한 것도 아니지만 미치게 행복한 것도 아닌 상태. 나나 재곤 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이 무덤덤한 상태. 그 상태의 뿌리가 드러난 기분이다.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없어서……. 재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문제는 내 멋대로 하고 싶은 게 내게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평범하게 살기 싫은데 특별하게 사는 법에 대해 조금도 모르고 있는 거다.
   이런 걸 배우는 학원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하면 된다.’는 식의 희망 마취제 말고……. 구체적으로 뭘 하고 싶은지 끈질기게 생각해 내도록 나를 붙들어 주는 학원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책 안내 : www.parkdabin.modoo.at




책 속 한 문장 :


잊을 수야 잊겠니. 하지만 담담해질 수는 있단다. 미움과 껄끄러움을 담담함으로 바꾸는 길은 용서뿐이다. 부디 엄마를 용서해다오. 니가 미워지는 마음이 올라오거든 엄마도 너를 용서하마.

-소설집『나고 살고 사랑하고 죽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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