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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Nov 17. 2016

향수 제작자

꿈과 관계 사이에서

 


  “양보라는 좋은 말로 아무리 포장해도 포기는 포기야.”

   피우던 담배를 꺼뜨리며 연수가 투덜거렸다. 연수는 담뱃불 꺼뜨릴 때마다 눈살 찌푸리는 버릇이 있다. 연수 등 뒤로 노을이 진다. 이제 바깥바람이 제법 쌀쌀해졌다는 생각. 알싸한 바람 냄새와 담배 연기 냄새가 뒤섞여 호흡을 차고 탁하게 한다. 

   양보나 포기나 그게 그거라는 걸 누가 몰라서 하는 말인가.

   나는 허공에다 손을 휘저었다. 담배 연기를 흩뜨리기 위해서였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바깥에서 담배 피우면 옆 사람에게 피해가 안 가는 줄 안다. 아까 연수는 크게 선심 쓰듯 옥상으로 나를 데리고 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저 좁은 원룸 안에서 담배 피우지 않는 것에 대해 연수는 상당히 뿌듯해 하는 기색이었다. 배려는 자기 자신을 가장 기쁘게 만든다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연수가 말한 포기 그리고 내가 말한 양보는……. 휘청거리는 내 연애 사업에 관한 것이다. 자기 연애 얘기 남한테 해서 좋은 소리 못 듣는다는 걸 알지만…….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급하게 연수를 불렀다. 

   연수는 바빠 죽겠는데 사람 부른다고 갖은 생색을 내더니 잠옷 차림으로 내 집 현관문을 열었다. 잠에서 금방 깨 온기가 가시지 않은 손으로 연수는 짜장면 곱빼기를 시켜 먹었다.

   나는 연수 옆에서 짬뽕을 먹으며 연수와 중학교 때 얘길 했다. 연수는 ‘임’ 씨다. 임연수. 중학교 때 친구들이 연수에게 ‘임연수어’라고 많이 놀렸다. 임연수어는 물고기 이름이다. 연수 이름을 곧이곧대로 불러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특히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문호라는 녀석이 연수를 제일 많이 놀렸다.

   하루는 연수가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학교에 나타났다. 아침 자습시간에 연수는 그 스티로폼 박스 뚜껑을 열고 교실 맨 뒷자리 쪽으로 갔다. 연수는 문호 녀석의 머리 위에서 스티로폼 박스를 뒤집었다. 그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비린내 나는 물과 임연수어 세 마리가 쏟아져 나왔다. 바닷물을 튀기며 펄쩍펄쩍 날뛰는 문호에게 연수는 “이게 임연수어다, 이 씨발 놈아!” 하고 소리쳤다. 그 뒤로 연수에게 임연수어라고 놀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수는 자기 마음을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다. (임연수어 사태처럼) 자기 마음의 소리를 복수라는 형태로 표출하는 일이 더러 있긴 했지만……(나이가 들면서 연수의 공격성은 행동력에서 말발로 다 옮겨 갔다. 자기한테 고약하게 구는 사람을 향해 연수는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연수는 그 사람에게 가 입담으로 그를 조져 놓았다. 내가 보기엔 연수가 행동으로 보여 주는 복수보다 말로 보여 주는 복수가 훨씬 더 아픈 것 같다. 욕을 퍼붓는 것도 아닌데 사람을 아주 모욕적이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그 능력은 좀 무서울 정도다). 어쨌든 연수는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 뭔지 정확히 하는 애였다. 

   그래서 나는 연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일이 많았다. 내가 내 마음 갈피 하나 못 잡고 허둥지둥할 때 연수는 나 대신 내 마음을 살펴봐 주었다. 연수가 내 모든 마음을 안다 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내 마음의 일부분을 꿰뚫어볼 줄 아는 능력이 연수에게 있었다. 그렇게 꿰뚫어본 걸 얘기해 주는 방식이 쓰라리거나 따끔하긴 하지만…….

   그래서 지금 차질이 생긴 내 연애 사업이 뭐냐면…….

   내 여자 친구는 지금 내가 부모님 식당을 물려받길 원한다. 내가 부모님 집에서 이 원룸으로 독립해 온 지 4년이 되었다. 여자 친구와 내가 교제한 기간은 1년쯤 된다.

   원래 여자 친구는 내 부모님이 식당 운영 중이시라는 걸 몰랐다. 부모님 얘기 꺼려하는 나를 본 뒤로 여자 친구가 내 가족에 대해 일절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 얘기를 꺼리는 거지 내가 실제로 부모님을 꺼리는 건 아니다. 죄송할 뿐……. 

   4년 전 내가 독립한 이유는 하나였다. 내 힘으로 향수 제작자가 되고 싶어서였다. 남들보다 후각이 예민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향수에 관심이 많았다. 향수 제작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 건 군대에서였다.

   군대 안에선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나는 주로 책을 읽었다. 읽기 쉬운 에세이 종류만 골라 읽던 어느 날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살다 간 한 남자의 에세이를 읽었다. 말이 에세이지 길게 풀어 적은 유서 같았다. 저자인 그는 가족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남겼다. 특히 자녀들에게 남긴 편지는 길이도 길고 내용도 절절했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이 꿈을 저버리지 않기를 절박하게 소원했다.

   그의 꿈은 마라토너였다. 그런데 그가 마라토너로 살았던 세월은 단 하루도 없었다. 그의 꿈은 마음속에서만 가득 피어나는 꽃이었다. 그는 그 꿈의 꽃을 현실 세계에 옮겨 심지 않았다.

   암에 걸려 걸을 수 없게 되자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절망과 후회에 사로잡혔다. 그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단 한 가지 일은 마라톤인데 그걸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무엇을 위해 여태 살았는지’ 까마득하기만 한 날들을 보냈다. 더 많은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더 많은 술을 마시고 더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넓은 집을 사지 못한 데서 오는 후회는 너무 작아서 입에 담을 수조차 없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정말 자기가 원하는 일을 단 하루도 해내지 못한 채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당장의 순간은 너무 후회돼 1초도 빠짐없이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내 거짓된 목표를 다 버리기로 했다. 군대 제대 후 다니던 대학에 자퇴서를 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부모님 집에서 독립했다.

   하루에 12시간, 13시간 아르바이트 하며 향수 재료를 사 모으고 나는 혼자 실험했다. 실험하고 또 실험했다. 1년쯤 지났을 때 내가 이름 지을 수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향수가 세 종류 나왔다. 나는 사업자 등록을 한 뒤 블로그를 열고 향수를 팔기 시작했다.

   6개월 동안 나는 내 향수를 한 병도 팔지 못했다. 7개월 째 되던 때 향수 두 병이 팔렸다. 그때 내 손에 떨어진 순수익은 8천원이었다. 

   내 사업은 계속 지지부진했다. 여자 친구를 만날 때까지도 나는 한 달에 향수를 두세 병에서 서너 병밖에 팔지 못했다. 여자 친구는 그런 내 처지를 이해해 주고 나를 북돋워 주었다. 지금도 내 사업은 아주 더디게 나아가고 있다.     





   2주 전쯤인가. 나는 영화관에서 부모님과 우연히 마주쳤다. 나는 여자 친구와 둘이 있었고 부모님은 식당 직원들과 함께 계셨다. 부모님이 내 여자 친구를 보더니 “식당 와서 밥 한 끼 먹고 가.” 하고 말씀하셨다.

   이후로 여자 친구의 끈질긴 질문이 이어졌다. 부모님과 나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모양이었다.

   나는 모든 걸 털어놓았다. 부모님이 무슨 식당을 운영하시고 그 식당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부모님은 특허 낸 칼국수 집을 운영하고 계신다. 친척들끼리 체인점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께 죄송스러워 하는 내 마음에 대해서도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여자 친구는 부모님 사업을 물려받는 게 어떠냐고 내게 권해 왔다. 외동아들인 내가 사업을 물려받지 않으면 부모님이 섭섭해 하시지 않을까 하고. 나는 부모님 사업의 명맥을 이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내가 내 일로 일어서서 부모님께 떳떳한 자식이 되고 싶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니, 부모님께 떳떳한 자식이 되는 것보다 나 자신에게 떳떳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게 먼저라고 했다. 게다가 내가 아니어도 이미 다른 식구들이 부모님 사업을 넓혀 나가고 있잖은가.

   하지만 여자 친구는 나에 대한 권유를 쉽게 거두지 않았다. 여자 친구는 내 꿈을 잠시 양보하고 부모님 곁에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 결혼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나는 그런 여자 친구를 부담스럽다거나 야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변변치 못한 사업 안고 가정을 꾸린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내 여자 친구를 사랑한다. 마음속으로는 결혼식을 벌써 수백 번도 넘게 올렸다. 여자 친구가 부모님 사업에 욕심이 나 내게 그런 말한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안다. 여자 친구가 원하는 건 우리 둘 사이의 결속력. 우리가 헤어지지 않을 거란 확신. 그 둘뿐이다. 그 두 가지 소망을 위태롭게 하는 건 내 안정적이지 못한 직업이고……. 

   여자 친구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사람 인내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애인의 불안정한 직업은 견딜 만하지만 배우자의 불안정한 직업은 견디기가 힘들다.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내 직업이 여자 친구를 지금보다 훨씬 불안하게 할 거다. 그런 여자 친구의 불안을 보는 내 마음도 초조할 거고…….

   그래서 나는 지금 우왕좌왕하고 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긴 싫은데 내 꿈을 저버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이 마음이 욕심일까. 만일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면 뭘 포기하는 게 지혜로운 일일까.    





   “그 책이 뭔데?”

   벌겋게 물든 하늘을 휘 둘러보더니 연수가 내게 물었다. 

   “책?”

   “니가 향수 만드는……. 그 꿈 품고 가게 만든 거……. 그 책. 너한테 그 책 얘기 많이 들었는데 제목은 한 번도 못 물어봤네.”

   “제목? 나도 기억 안 나. 군대에서 읽은 거라…….”

   “너는 어떤데?”

   “응? 뭐가?”

   “갑자기 죽는다면 말이야.”

   “음…….”

   “갑자기 죽게 됐는데……. 죽기 전까지 니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능력도 여건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기분이 어떨 거 같냐고?”

   “아니. 니가 그런 상황인데도 포기가 안 될 일이 뭐가 있냐고. 절대 할 수 없는데도 마음에서 놓아지지 않는 일이 뭐가 있냐고. 향수야, 니 여자 친구야.”

   “…….”

   “생각해 봐.”

   “꼭 하나만 결정해야 돼?”

   “아니면 순서라도 정해 보든가.”

   “순서?”

   “니가 향수 일도 계속 하고 싶고 여자 친구도 계속 만나고 싶은데……. 두 개가 같이 진행될 수는 없다 이거잖아. 그럼 순서를 정해. 향수를 잠시 포기하고 여자 친구랑 결혼을 하든지 여자 친구를 잠시 포기하고 니 사업을 키우든지. 니 사업 안정되면 니 여자 친구가 맘 편히 너랑 결혼할 거 아니야? 그리고 이렇게 순서 정할 거면 순서 꼭 지켜. 결혼하고 나서 향수 꼭 다시 하고……. 니 사업 키우고 나서 니 여자 친구 꼭 다시 만나는……. 잠시만. 여자 친구 다시 만나는 건 니가 결심한다고 막 바로 되는 일은 아니다, 그치?”

   “음…….”

   “야, 버린 꿈 되찾는 데는 용기만 내면 되는데……. 한 번 헤어진 사람 다시 만나려면 온 우주의 행운을 다 갖다 써도 될까 말까야.”

   연수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며 나를 을러댔다. 나는 차가운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책 안내 : www.parkdabin.modoo.at




책 속 한 문장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잘못 자른 손톱처럼 아주 조금씩이지만……. 저도 자라고 있습니다. 언젠간 누군가의 곁을 단단히 버티고 설 날을 기다립니다. 그게 그 사람이길 바랍니다. 염치 불구하고 그 사람이길 바랍니다. 제가 유일하게 당신이라 부르는 그 사람이길 바랍니다.

-소설집『나고 살고 사랑하고 죽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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