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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Nov 22. 2016

그 미치광이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 버리면



   사는 동안 이렇게 아파 보기는 처음이다. 24시간이 넘도록 쌀밥 한 톨 넘기지 못한 것도……. 독감이라든지 폐렴이라든지 하다못해 가벼운 몸살이라든지 그런 ‘질병’ 없이 이만큼 아플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차라리 몸에 생기는 병이 낫다 싶을 정도로 나는 혹심한 (하지만 어떤 병이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상태의) 아픔을 겪었다.

   나는 내가 이대로 죽을 줄 알았다. 마치 온몸에 심장이 달린 듯 온통 두근거리거나 지끈거리는 통증과 뇌가 마비될 정도의 배고픔 그리고 그 배고픔 이상의 메스꺼움이 내 생명을 사각사각 갉아먹다가 나를 세상에서 깨끗이 없애 버릴 줄 알았다. 공복 사흘 차로 접어들던 밤까지 그 믿음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곧 죽겠다. 곧 죽겠다.

   나는 그 믿음이 어서 실현되기를 바랐다. 하루빨리 내가 죽음의 문턱 너머로 들어설 수 있기를 바랐다. 내 몸에서 마음을 떼어 버릴 수 없으니 내 마음에서 내 몸의 생명을 떼어 버리기로 한 것이다. 마음이 좋지 않아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몸 군데군데서 터져 오르는 이상한 고통과 뱃속의 허기와 위장의 거북함 같은 것들……. 마음의 울렁거림에 비하면 그것들은 애송이 수준이었다.

   마음의 병이 가장 악랄하고 집요한 살인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시간이 사흘째에 도달하던 그 밤. 나는 집 안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을 부숴 버렸다. 그 파괴 욕구가 마침내 나 자신에게로 향할 수 있다고도 생각되었다. 머릿속에 벌레 같은 것들이 우글우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느물대는 것들이 내 의지를 모조리 씹어 먹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텅 빈 눈으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물건들을 던지고 짓밟았다. 나는 내 몸에 퍼져 있던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내 정신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알았다.

   밤 10시였다. 도자기 컵 하나를 박살내고 방으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나는 다시 방 밖으로 나가 주방 앞에 섰다. 주방은 폭탄 맞은 것처럼 어질러져 있었다. 부서진 물건의 파편들 사이로 음식들이 상해 가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픈데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서글펐다. 그 서글픔 속에서 생존 본능의 기운을 뜨겁게 느꼈다.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은 이 역설이 우습기도 하고…….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져 버린 건지 슬퍼지기도 했다. 제정신과 광기狂氣 가운데 뭐가 나인지 알 수 없어 나 자신이 두려웠다. 누구나 미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세상과 삶에 대한 내 모든 믿음을 무너뜨릴 만한 강력한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너무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나서 나는 이성의 고삐를 놓아 버렸다. 내가 놓은 건지 그게 저절로 내 손을 빠져 나간 건지 모른다. 

   나는 딱딱하게 굳고 색깔이 변하기 시작한 밥 한 덩이를 맨손으로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에 한가득 넣었다. 입 안에 밥의 감촉이 느껴졌다. 입 안에서 감각이 느껴진단 사실이 너무 낯설었다. 태어나 뭘 처음 먹는 사람의 기분이 되었다. 나는 돌덩이 같은 밥알을 씹어 삼켰다. 구역질 같은 게 올라왔지만 아랫배 저 끝에 잠들어 있던 허기가 밥알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손바닥은 텅 비어 있고 손가락 테두리에 밥알 몇 개가 덜렁덜렁 붙어 있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물건들을 부수고 폭발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내 손으로 내 뺨을 갈길 때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에 의한 울음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에 쥐가 나고 손끝이 저려 아무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내게 온 울음은 올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폭풍우 수십 개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 뒤 나를 이끌고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꼴이었다. 눈에 보이는 폭풍우가 보이지 않는 폭풍우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사는 동안 이 집으로 수많은 장마와 태풍 그리고 여러 종류의 재해들이 지나갔지만 기껏해야 베란다나 지붕에 문제가 조금 생기는 정도였는데……. 내 마음 안쪽으로 불어온 폭풍우 하나는 사흘 만에 이 집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집도 나도 성한 데가 하나도 없다.

   베란다 통유리 문은 벌써부터 깨져 겨울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방문마다 남아나는 문고리가 없으며 바스러진 거울 몇 조각은 내 발바닥에 박혀 있다.    


   그 울음 때문일까. 아니면 뭐 때문일까. 갑자기 집 안 풍경이 새롭게 보이고 나 자신에게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발바닥에서 거울 조각들을 뽑자 검은 피딱지 속에서 새빨간 피가 솟구쳐 올랐다. 나는 발바닥에 지혈을 하고 온 집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쓸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이다. 그때 그 사흘이 정말 내가 보낸 사흘인가 싶게 나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와 멀쩡히 살아가고 있다. 그때는 내가 정말 미치광이라도 된 줄 알았는데……. 내 안을 휘저으며 나를 없애려 하던 그 미치광이는 흔적도 없이 떠나가 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도 무섭다. 언제 어디서 그 미치광이를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라서. 마음의 벽이 무너져 버리면 그 안에서 온갖 것들이 쏟아져 나와 일상을 헝클고 목숨마저 위협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아서.

   마음이 단단해지려면 뭘 해야 할까. 어떤 연습을 해야 할까. 누굴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거실 서랍 안에 있는 헬스장 회원권과 신발장 안에 있는 수많은 운동화 그리고 내가 뛰어다닌 숱한 산책로 말고 뭐가 더 필요할까. 나에게.

   건강과 안전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책 안내 : www.parkdabin.modoo.at




책 속 한 문장 :


연인 한 쌍은 수북한 접시 더미를 사이에 놓고 한껏 화기애애한 표정이다. 가족 한 무리는 말없이 식사만 하고 있다. 하얀 셔츠 입은 종업원이 스테인리스 물병을 들고 내 앞을 가로질러 간다. 여기 있는 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고 나름의 수치심이 있고 그 사연과 수치심 다 보듬어 줄 한 사람이 있겠지.

-소설집『나고 살고 사랑하고 죽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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