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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an 27. 2017

당신의 불완전함,
그 지극한 정상

우리는 인간, 인간이니까



   가끔 10년 전쯤의 날들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정말 형편없는 태도를 가졌었다. 사람을 전혀 공경할 줄 몰랐다. 공경할 줄 모르기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건, 내가 불행의 꾸러미를 안고 태어난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장맛비 같은 불행만 쏟아질 뿐이라 믿었다. 내 모든 처지는 불공평하게만 느껴졌다. 그 지독한 부당함으로 인한 분노를 추스를 수가 없었다. 분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그런 가슴으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타인도 나도 험하게만 대했다. 험하다는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했다. 
   내가 지긋지긋하게 느낀 불공평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나는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이 내게 순순히 주어지는 법 따위는 없다고 느꼈다. 내가 원하면 원할수록, 그것은 내게서 멀어져만 간다고 느꼈다. 
   게다가 사람들은 정당한 이유도 없이 내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는다고 느꼈다. 결국 그 불쾌한 감정이 나를 배신하도록 만든다고 느꼈다. 
   또 나는 항상 내가 쏟아 부은 노력보다 낮은 평가를 받기만 한다고 느꼈다. 내 인생에 끼어드는 모든 심사위원은 하나같이 거지같은 안목을 가졌다고 느꼈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가치를 꿰뚫어볼 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내가 시험지에 찍은 3번이 정답이 아닐 걸 알았지만, 4번을 찍는다고 해서 그게 정답일 리도 없다고 느꼈다. 어차피 행운 같은 건 내 삶에 잠시라도 기웃대 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터무니없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남고 싶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살고 싶은 의지 하나는 끝내주게 굳건했다. 그래서 나는 악착같아지기로 했다. 이 전쟁 같은 삶에서 나가떨어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악착같아지자. 사람들에게 되도록 마음 주지 말자. 배신의 기미가 읽히기도 전에 먼저 배신하는 편이 현명한 거다. 어차피 뭘 하든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을 테니, 아예 꼴사납게 엇나가 버리는 편이 좋다. 그러니 최대한 뼈아픈 말들만 골라서 내뱉자. 최대한 엉망진창인 선택을 내리자. 다들 엿이나 먹으라고 하자.’





   부끄럽다. 그렇게 살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세상을 비관하지 않아도 됐는데. 미리 나쁜 결과를 준비하다가, 스스로 나쁜 결과가 되지 않아도 됐는데.
   그 만신창이 같은 삶이 10년 전쯤에 끝났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한없이 삐뚠 그 태도의 일부가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옛날에 비하면 ‘멸종’의 수준이긴 해도. 완전한 멸종은 아니다. 나는 그걸 느낄 수 있다. 그 태도가 아직 숨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을. 내 밖으로 뛰쳐나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한 사람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의 주제가 바로 ‘이 태도’였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내가 가진 치부恥部들을 꽤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내 영혼의 일부분이 얼마나 흉하게 일그러져 있다 한들,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은 떠나지 않을 거란 믿음 같은 게 생겨서일까. 관계가 깨지는 건 ‘누군가의 못난 점’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못난 점마저 이해하고 안아 주려는 의욕과 열정의 상실’ 때문임을 조금쯤 깨달아서일까(함께 지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건 아무 상관없어지더라는 걸 몇 번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그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관계의 미래를 결정하는 유일한 조건은 ‘서로가 서로의 곁을 지킬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라는 걸. 이 의지가 관계의 모든 걸 만든다. 이 의지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이 의지를 흔한 말로 바꾸면 ‘콩깍지’가 되겠다. 내 눈에 한 번 씌워진 콩깍지를 떼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건 사랑에 지칠 때 저절로 떨어지는 거지, 누가 벗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지독한 단점을 발견했다고 해서 이별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나도 그만한 단점 몇 개 갖고 있는데, 뭘.’ 하며 그 사람 단점을 가만히 끌어안을 뿐이다. 소소한 단점들은 귀여워 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콩깍지가 한 번 벗겨지고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상대가 그 어떤 장점을 들이밀어도, 콩깍지가 도로 씌워지는 일이 없다. 남들이야 콩깍지가 두 번, 세 번, 씌워지는지 몰라도, 내 콩깍지는 모두 일회용이다. 한 번 헤어진 사람과 두 번 만날 수는 없다. 물론 만나 본 적이 있다. 전부 얼마 못가 또 헤어졌다. 그래서 이젠 한 번 헤어지면 끝이다. 흔들려도 넘어가지는 않는다. 중범죄 저지른 애인을 내 집에 숨겨 주다 기꺼이 공범이 될 순 있어도, 헤어진 애인을 내 집에 쉽게 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헤어진 그 애인이 얼마나 잘난 사람이든, 헤어진 그 애인이 지금 얼마나 힘겨운 상황에 있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아니, 사실 별로 미안하지도 않지만. 사랑해서 끝까지 가겠다는 그 바다 같은 의지가 다 말라 버릴 때까지 고통 받은 관계에 다시 뛰어들 수는 없다. 그 비극이 다신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 같은 것도 없고).





   하여간 나는 내가 이 쓰레기 같은 태도를 보유한 적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고백했다. 지금도 가끔은 이 태도에 휘말리며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거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기나 한가.”
   그 사람이 얼굴을 흔들며 말했다. 말끝에 작은 코웃음이 묻어나왔다. 
   듣고 싶은 대답이었다. 누구나 그런 태도 하나쯤 안고 살지 않느냐는 말. 그 말에 담긴 위안. 
   물론 나는 그런 대답을 기다린 사람처럼 굴지 않았다. 오히려 의외의 답변을 건네받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런가.” 하고 우물거린 것이다. 
   “그래. 내가 오늘 그 말 듣고 싶어서 이 얘기 꺼냈나 보다.” 하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속내까지 모조리 드러내 버리면, 나 자신이 너무 변변찮은 인간처럼 느껴질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런 태도 갖고 살아온 주제에, 위로까지 바라다니. 아주 가관이군.’ 따위의 반응이 되돌아올까 봐 조금 두려웠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반응은 내 모든 예상을 뒤엎어 버렸다.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게 생각하고, 완벽하게 행동하고, 그렇게 아무 실수 없이 살길 바랐다면, 신이 인간을 안 만들었겠지. 아니, 인간을 만들 필요 자체가 없지. 그런 건 자기들이 이미 하고 있는 거잖아. 넌 인간인데 왜 신처럼 살지 못하는 걸 걱정하냐? 정신 차려. 너 신 아니야. 너 인간이야. 니가 불완전한 게 당연한 거야. 니가 뭘 알고 태어났니? 흠 하나 없이 깨끗한 사람 아니라고 해서 자책하는 거, 그게 비정상이야. 여기 때 안 묻은 사람이 어디 있니? 다들 때 안 묻은 쪽만 보여 주면서 사는 거지.”
   그 사람이 요목조목 말했다. 냅킨으로 턱 아래쪽을 닦으면서. 턱에 뭐가 묻지는 않았는데.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무의식중에 손을 올리고 코끝을 매만졌다. 코끝은 차가웠다. 
   고갤 들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뭐라 대꾸는 못하고, 숨만 두어 번 내쉬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 같았다. 그 백지 같은 머릿속엔 그 사람 말들만 스케치처럼 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여기 때 안 묻은 사람이 어디 있니? 다들 때 안 묻은 쪽만 보여 주면서 사는 거지.’
   “니 말이 맞다, 내가 여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또 자책하려고 그러지?”
   그 사람이 물어 왔다.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면서. 
   나는 그 사람을 향해 양쪽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항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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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과 산문집을 발행하는 WRIFE MAGAZINE은 ‘나’와 ‘나’가 만나 ‘나’와 ‘너’가 되고, ‘나’와 ‘너’가 어우러져 ‘우리’가 되는 모든 순간들을 담아냅니다. WRIFE MAGAZINE의 시선과 마음과 글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책 속 한 문장 :


과거로부터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채 살아가는……. 과거라는 태엽을 계속 감고 또 감아서 살아가는 태엽 인형 같은 존재가 인간일까?

-소설집『피아노 치는 아내를 원해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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