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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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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Feb 15. 2017

재활의 샌드위치 카페



   재활이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일곱이었다. 서른일곱을 맞은 해 5월. 
   그때껏, 재활은 피자를 판매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의 중견 간부였다. 실제로 그는 꽤 유능한 직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이사회는 그의 사직서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이사회는 좋은 말로 재활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에게 승진과 연봉 인상을 한꺼번에 제안하기도 했다. 재활은 그 모든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에게 온 달콤한 제의들을 간단히 거절해 버렸다.
   자신들의 전략이 통하지 않자, 이사회는 재활을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회사를 나가 버린다면, 다시는 이 바닥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 거라고.   
   하지만 재활은 이사회의 위협에 겁먹지 않았다. 이사회가 어떤 처분을 내리든, 자신은 회사를 떠나겠다고 거듭 말할 뿐이었다. 그에게는 타협의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한 터였으므로, 그의 사직을 멋대로 취소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사직을 보류시킬 만한 작은 건수 같은 것도 없었다. 사직을 결심한 마당에, 그가 일처리에 실수를 저질러 놓았겠는가.  
   결국, 이사회는 그의 사직서를 수리受理할 수밖에 없었다.





   재활이 회사를 떠난 이유는 자영업自營業을 위해서였다.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서. 당장 자신의 가게를 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하루빨리 회사를 떠나고 싶어 했다.
   재활은 쳇바퀴 돌리는 듯한 회사 생활이 지겨웠다. 게다가, 상사들 비위 맞추느라 자신을 자꾸 탓하다 보니, 언제부턴가는 스스로를 점점 혐오하게 되었다. 그 책망과 증오는 어느덧 악순환으로 자리 잡았다. 
   재활은 그 악순환이 괴로웠다. 자신을 탓할수록 자신이 혐오스럽고, 자신을 혐오스러워 할수록 자신을 더 탓하게 되니까. 이런 식으로 회사 생활을 계속했다간, 자기 자신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릴 것 같았다. 아니, 스스로 자기 자신을 완전히 파괴시켜 버릴 것 같았다. 
   부하 직원을 견제하는 일도 재활의 골치를 썩였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긴 했지만, 아랫사람 기회를 박탈시키고 자기 밥그릇부터 챙기는 일에서, 그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여하간, 그는 조직 문화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떠나야 했다. 스스로 더 고갈되기 전에.


   게다가, 그는 한껏 자신에 차 있었다. 음식 업계 간부까지 지낸 그가 아닌가. 그는 자신의 가게를 멋들어지게 일궈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아내는 커피를 만들어 팔고,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나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판다.’
   재활은, 회사에서 하던 대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상권商圈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자신의 카페가 들어설 만한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뒤, 그는 한 매장을 매입했다. 
   곧이어, 매장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착수되었다. 인테리어 공사 기간 동안, 그는 아내와 메뉴 개발에 힘썼다. 
창업을 위해 재활이 시행하는 모든 과정은 흠 잡을 데 하나 없이 순조로웠다. 그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그의 창업을 낙관했다.





   재활이 자신의 샌드위치 카페를 개업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여덟이었다. 서른여덟을 맞은 해 8월.
   개업 직후 두 달 간, 재활의 카페는 그야말로 성업盛業했다. 카페를 드나드는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재활이 만드는 모든 샌드위치는 매일 매진되었다. 더 팔 게 없어, 손님들에게 사과해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사과를 받으며, 손님들은 그의 카페를 더욱 흠모하게 되었다. 무심결에 들렀다 매진 소식을 접한 손님들은, 그의 카페 간판을 새삼스런 눈길로 올려다보며, 이곳에 한 번 더 오겠다고 가볍게 다짐했다.
   재활이 세운 경영 전략들은 저마다 멋진 성공 사례가 되어 되돌아왔다. 그의 카페는 인터넷의 입소문을 타며, 더 많은 손님들을 끌어들였다.


   꿈만 같았던 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재활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은 그의 여동생이었다.
   “오빠! 오빠 카페랑 똑같은 카페가 우리 동네에 생겼어! 메뉴도 거의 똑같아!”
   재활의 여동생이 경악한 목소리로 그에게 소리쳤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여동생 집으로 내달아 갔다. 
   재활의 여동생이 그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와 그녀가 마주친 곳은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입구였다. 그를 마주친 그녀가 다짜고짜 팔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은 길 건너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손끝을 따라갔다. 그곳에 ‘문제의 카페’가 있었다.
   재활의 여동생 말대로, ‘그 카페’는 ‘그의 카페’를 거의 본떠 놓은 상태였다. 간판과 카페 이름부터, 인테리어와 메뉴까지 모두. 
   그 카페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손님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재활과 그의 여동생 옆을 지나가던 젊은 여자 하나가 그 카페를 쳐다보더니, “저 카페, 그 카페 아니야? 페이스북facebook에서 난리 났던 그 카페! 프랜차이즈인 줄은 몰랐네.” 하고, 일행에게 속닥거렸다. 





   재활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길로 그 카페에 들어가 사장을 불렀다.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오자마자, 재활은 고함을 내질렀다. 도둑놈이라고. 도둑놈이라고. 그러자, 그 사장도 재활에게 고함쳤다. 불룩한 배를 재활 쪽으로 불쑥 내밀면서. 얻다 대고 도둑놈 운운하느냐고. 법대로 하라고.
   법?
   재활이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자, 그 사장이 그에게 내쏘았다. “병신 같이, 특허도 안 내고 사업 시작한 게 누군데?” 하고.
   특허?
   재활은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음식 업계에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그가 유능했던 분야는 마케팅뿐이었다. 법이니, 특허니, 하는 쪽으로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아차!’ 싶었다. 
   교만했구나. 교만해서 너무 서둘렀구나. 서두르느라, 중요한 부분 몇 가지를 놓쳤구나.


   재활은 변리사를 찾아갔다. 자신의 사업과 관련된 몇 가지 특허를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가 선임한 변리사는 고갤 저어 보이기만 하고, 특허 등록 절차를 진행시키지 않았다. 
   의아한 얼굴로 서 있는 재활에게, 변리사는 “늦으셨네요.” 하고 말했다. 재활의 아이디어를 모조리 베낀 그 사장이 한 발 빨랐다고. 재활이 개발한 그 메뉴들을 본인 특허로 먼저 등록해 버렸다고.
   재활이 변리사의 팔뚝을 붙잡고 소리쳤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이 메뉴들 만든 게 나라는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변리사는 계속 고개만 저었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늦으셨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법은 진실을 가려내는 수단이 아니었다. 법은 그것을 잘 알고, 그것을 영리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도구일 뿐이었다. 
   재활은 아득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변리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변리사 사무실을 빠져 나와, 자신의 차가 있는 곳까지 걸으며,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식의 처참한 실패는 내 인생에 없었는데.





   자신의 카페로 돌아온 재활은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던 아내가 그를 맞았다. 
   “어떻게 됐어요? 특허 등록하고 왔어요? 이제 괜찮은 거예요?”
   재활의 아내가 그에게 물었다. 시선을 떨어뜨린 재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내는 손에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도마 위에 내려놓았다. 샌드위치 빵 사이에 끼여 있던 피클 하나가 도마에 떨어졌다. 
   재활의 아내가 그와 마주 보고 섰다. 재활은 여전히 발끝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 안 된 거야?”
   재활의 아내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응. 법이, 글쎄, 법이…….”
   “빼앗긴 거예요, 그럼?”
   “법대로 하자면, 응, 빼앗긴 것 같아.”
   재활이 말끝에 입술을 깨물었다. 재활의 아내가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럼,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숨을 한 번 빠르게 들이켠 뒤, 재활의 아내가 말했다.
   “응?”
   “이제부터는 빼앗기지 않을 뭔가를 만들어야죠. 샌드위치 카페로 시작했다고 해서, 이 카페가 영원히 샌드위치 카페여야 한다는 법, 그런 법은 없잖아?”
   “그거야…….”
   “어떻게 손쓸 수 없는 일에 기운 빼지 말고, 우리, 다시 한 번 해 봐요. 이 카페 개업하기 전에 했던 거처럼. 주말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거 먹어 보고. 밤새워 가면서 메뉴 개발도 새로 하고. 한 번도 성공한 마당에, 두 번은 성공 못할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빼앗아 간 건, 우리가 만들어 낸 결과물뿐이잖아요.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그건 우리 둘만 알잖아요. 이 비법은 아무한테도 안 빼앗겼어요, 아직. 아마 앞으로도 안 빼앗길 거고. 그러니까, 기운 내서 다시 해 보자구. 차근차근. 응? 마음 아프게, 어깨 축 늘어뜨리고 다니지 말구요.”
   재활의 아내가 그의 손을 찾아 쥐며 말했다. 그가 눈시울을 벌컥 붉히자, 아내가 울상을 지었다. 
   “미안해. 다 잘 될 줄 알았어.”
   재활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다 잘 되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는데? 카페 개업한 지, 이제 겨우 두 달 지났어요. 이런 일 생길 각오도 안 하고, 그냥 창업에 뛰어든 거야, 당신은? 이제 보니, 순진한 구석이 있었네…….”
   조그만 소리로 웃으며, 재활의 아내가 그를 다독였다. 재활을 한번 지그시 바라보던 아내가 다시 도마 쪽으로 돌아섰다.
   “냉장고에서 토마토 좀 꺼내 줘요.”
   재활의 아내가 목소리를 조금 높이며 말했다. 아내를 지나 냉장고 쪽으로 가려던 재활이, 문득, 아내의 어깨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믿어 줘서 고마워.”
   재활이 말했다.
   “어머, 그런 말도 할 줄 알아요? 내가 당신 믿는 건 또 어떻게 알았대? 말 안 해 주면, 죽어도 모르는 양반이.”
   샌드위치를 포장지로 감싸며, 재활의 아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몰라. 반나절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정신 수습하고 봤더니, 갑자기 철이 좀 든 거 같기도 하고. 토마토만 갖다 주면 돼?”
   “토마토랑 치즈.”
   “알았어.”
   대답과 동시에, 냉장고 문을 연 재활이 작게 헛기침했다. 토마토를 꺼내려던 재활이, 냉장고 문을 조금 닫으며, 아내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번 창업에서 내가 고려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번 창업에서 내가 고려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아내였다. 미처 몰랐다. 아내에게 그런 눈빛과 강단剛斷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모든 해결의 중심엔 사람의 마음가짐이 있다는 것을.
   왜 나는 아내처럼 이 문제에 접근하지 못했을까. 아니, 사실 나는 이 문제에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문제를 멀찍이 바라보며, “안 돼. 이래서는 안 돼.” 되뇌고만 있을 뿐이었지.
   재활은 아내가 달리 보였다. 함께 관통해 온 결혼 생활이 무사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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