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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Feb 23. 2017

골절된 영혼을 지탱해 준,
어떤 입맛



   점심으로 또 잔치 국수 먹었다. 그런 내게, 김 부장이 “자네는 뭐 매일 잔칫날인가 봐?” 하고 빈정거렸다. 구내식당에서 같이 밥 먹을 사람이 나 말곤 없어서 그러나. 내가 잔치 국수 먹으러 회사 앞으로 나갈 때마다, 김 부장은 내게 삐딱하게 군다. 기다리라 한 적도 없는데 기다려 놓고, 시끄럽게 떽떽대는 철부지 애인처럼. 

   가끔 김 부장은 “점심 값 아끼려고 2000원짜리 잔치 국수 사 먹나?” 하고 말하며, 내 자존심을 시험한다. 나는 그 시험에 들지 않는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잔치 국수집을 부지런히 드나든다. 

   이삼 일에 한 번 꼴로 잔치 국수를 먹어야, 내 기분과 마음은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내 상태는 중독이나 의존에 가깝다. 며칠 씩 여행 떠날 때 제일 힘든 점이 ‘잔치 국수 못 먹는 거’라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할 거다. 하지만 나는 이 중독을 끊을 생각이 없다. 그만큼 나는 잔치 국수를 좋아한다. 미쳐 있다시피 좋아한다. 잔치 국수 값이 싸서가 아니다. 잔치 국수와 관련된, 옛 기억 때문이다.     





   내가 대여섯 살 때쯤이었다. 나는 동네 친구와 단둘이 길거리에서 놀고 있었다. 점심시간 무렵, 우리는 그 녀석 집으로 놀러갔다. 그 녀석 집으로 놀러 가기는 처음이었다. 

   녀석의 집 내부 구조는 단출했다. 단출한데 단정했다. 집 곳곳에 있는 모든 물건은 꼭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놓여 있는 듯했다. 바닥 장판은 바둑판 무늬였는데, 약간 끈적거렸다. 발을 옮길 때마다 ‘쩍쩍’ 소리가 희미하게 났다. 집 안은 대체로 어둑했다. 2층짜리 공장이 집 둘레를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문으로 빛이 들어올 만한 틈새가 없었다.

   온 곳으로 쏘다니고 온 우리를 맞아 준 건, 친구네 할머니였다. 목소리와 눈매가 고운 분이었다(나머지 인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거실에서 노닥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소파 비슷하게 생긴 걸 가지고 놀며 한참 낄낄댔다. 별안간 낯선 인기척이 들려 왔다. 나는 소리 난 쪽으로 고갤 돌렸다. 둥근 나무 밥상이 이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친구네 할머니가 밥상을 들고 오는 것이었다. 푸짐한 잔치 국수 두 그릇이 상 위에 놓여 있었다. 시원한 멸치 육수에 달콤한 간장 양념으로 간을 한 잔치 국수였다. 바닥에 상이 놓이자마자, 진한 참기름 냄새가 맡아졌다. 육수 위로 동동 떠다니는 샛노란 달걀 고명과 자잘한 소고기 고명이 내 허기를 자극했다. 

   나는 대접에 코를 박다시피 하고 국수를 먹었다. 아마 두 그릇을 먹었을 거다. 그때는 염치 같은 걸 알지 못한 때여서, 그저 신나는 기분으로 국수 두 그릇을 해치웠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잔치 국수를 열렬히 사랑했다. 친구 녀석 집에서 잔치 국수 먹은 그 기억이 좋았던 까닭이다.

   ‘왜’ 그 기억이 좋았는지에 대한 건, 서른 살 때쯤 깨달았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시도 때도 없이 잔치 국수 먹자던 내게, 아내가 불만을 터뜨린 참이었다. “아니, 당신은 왜 틈만 나면 잔치 국수 먹자고 해? 잔치 국수 못 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거야? 밀가루 너무 많이 먹으면, 나 살 찐단 말이야! 작작 좀 먹자구, 잔치 국수! 당신은 내가 배불뚝이였으면 좋겠어?” 하며, 아내가 내게 분통을 터뜨렸다. 나는 배불뚝이가 된 아내 모습을 상상하다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가 왜 잔치 국수를 좋아하는지.

   타인에게서 받은 최초의 ‘조건 없는’ 호의. 잔치 국수는 내게 그런 의미였다. 나는 잔치 국수를 좋아했다기보다, 그 안에 담긴 그 의미를 좋아한 것이었다.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잔치 국수를 찾아 먹은 것이었다. 

계산 없이 건네진 그 다정함의 기억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나는 잔치 국수를 말아 먹었다. 그 기억에 담긴 사람의 온기가 고파서, 나는 잔치 국수를 사다 먹었다.

   마음의 이유였다. 내가 잔치 국수를 좋아한 건. 잔치 국수 먹는 건, 내게 단순한 취향 이상이었다. 싸구려 입맛 이상이었다.

   잔치 국수로 채워 온 건 내 육체의 허기가 아니라, 정신의 허기였다. 그 사실을 깨우쳤다. 잠깐 사이에 그걸 깨우쳤다. 





   깨우침의 시간이 지나가자, 내 시야로 다시 아내 얼굴이 들어왔다. 미간 좁힌 채 인상 찌푸리고 서 있는 아내에게, 나는 무슨 대답이라도 해 주려 했다. 앞으로 잔치 국수는 밖에서 사 먹겠다든지. 나는 당신이 배불뚝이여도 상관없다든지. 오히려 배불뚝이가 되면 귀여울 거 같다든지. 

   그런데 나는 아내에게 아무 대답도 못했다.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웃고 있는 채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눈물샘이 눈알 크기만큼 확장된 것 같았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물이 나올 수 있는지 기이할 정도로, 나는 많은 양의 눈물을 내뿜었다. 슬펐던 것도 아닌데. 

   느닷없이 쏟아진 데다가, 그쳐지지도 않는 눈물 때문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상태로, 된통 쩔쩔매기만 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내 얼굴빛은 창백했다. 아내도 적잖이 난감한 모양이었다. 난감할 수밖에. 

   아내는 잔치 국수 그만 먹자고 한 자기 말 때문에, 내가 우는 줄 아나 보았다. “미안해. 미안해, 여보. 나 좀 봐. 왜 그래, 응? 왜 울어? 아니야, 왜가 아니지. 내가 미안해. 고개 들고 내 얼굴 좀 봐.” 하고 말하며, 아내가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흥건한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나는 “나도 모르겠어. 나 왜 이러지? 근데 말이야…….” 하고 우물거렸다. 아내가 “응, 근데 뭐? 근데 왜?” 하며, 내 말끝을 물고 늘어졌다. 내 입에서 “나, 중학교 때까지, 숙제해야 밥 먹을 수 있었어. 숙제 안 한 날엔 밥 못 먹었어. 진짜로 못 먹었어. 내 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어. 나가면 혼났거든. 그게 갑자기 생각나네.” 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말이었다. 그 말이 내 몸 밖으로 흘러나오자마자, 눈물이 뚝 멎었다. 아내는 다른 나라 말로 쓰인 수수께끼를 대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날 저녁 식탁에 오른 건, 잔치 국수였다. 




사람과 삶을 공부합니다. 공부한 것들을 책 속에 차곡차곡 담으며 살아갑니다. 읽고 나면 사람과 삶에 한 발 가까워질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부단히 노력하려 애씁니다. WRIFE MAGAZINE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매거진을 통해 소설집과 산문집을 펴냅니다.


출간된 책 구매 안내  :  www.parkdabin.modoo.at 


   살다가 생기는 문제들 저마다 유별난 것 같아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결국 대부분 ‘마음 문제’였던 것 같다. 다친 마음이 다친 마음인 줄 몰라서, 다친 마음을 알고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때로는 모든 게 무너지기도 했던 것 같다. 스스로 모든 걸 무너뜨리기도 했던 것 같다. ‘그게 뭐 별거야?’ 하며, 마음을 가볍게 무시한 날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보복을 해 왔던 것 같다.
   마음이 원하는 건 돈이 들지도 않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걸 못 들어 줘서 (또는 안 들어 줘서) 애꿎은 돈이고 시간이고 진탕 잃어 버려 온 것 같다.
   되돌아보니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나 싶지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마음 문제를 다른 문제로 착각하며 엉뚱한 해결책을 세우고 있는지 모른다.

산문집 『마음이 퇴근하는 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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