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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Mar 07. 2017

붕어빵만 보면 우는 여자



   13년 전, 붕어빵만 보면 우는 여자를 만났다. 지금 나는 그 여자와 같이 살고 있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았기 때문이다.     

   아내와 내가 처음 만난 건, 대학 동기 모임에서였다. 아내를 데리고 온 건 해준이었다. 해준은 처음부터 아내와 나를 이어 주려 했다. 그러려고 아내를 부른 듯했다. 해준은 아내를 내 옆자리에 앉혔다. 그런 뒤, 아내에게 뭔가를 자꾸 해 주라고 나를 을러댔다. 아내 앞에 수저를 가져다주라고. 아내에게 물을 주라고. 아내가 말하니까, 아내를 쳐다보라고. 

   다른 동기들도 해준의 속셈에 힘을 실었다. 12월 중순, 허름한 포장마차 안이었다. 


   얼큰하게 취한 우리는 술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우리가 우르르 포장마차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에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골목 끝에서 구세군 종소리가 들려왔다. 

   골목 입구로 걸어 나온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새로운 골목으로 들어서기 위해서였다. 그쪽은 나도 아내도 해준도 처음 가 보는 곳이었다. 

   그 골목 왼편에 붕어빵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붕어빵 익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린 해준이 포장마차 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런 해준을 쳐다본 뒤, 아내를 돌아보았다. 아내는 빨개진 뺨을 문지르며,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아내에게 붕어빵 먹자고 말했다. 아내는 가만히 고갤 저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붕어빵 먹자고, 내가 다시 말했다. 약간 조르는 듯한 투로. 아내는 이전보다 단호하게 고갤 저었다. 그때, 포장마차 안에서 뛰어 나온 해준이 우리에게 붕어빵 봉투를 내밀었다. 아내 입에서 “싫어!” 하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해준의 손에 들린 붕어빵을 내려다보던 아내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싫어요. 붕어빵 싫어. 진짜 싫어.” 하며, 아내는 엉엉 울었다. 

   첫눈에 아내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잔뜩 굳은 얼굴로 붕어빵 봉투를 낚아챘다. 그런 뒤, 포장마차 쓰레기통에 그것을 처박아 버렸다. 포장마차 주인이 내게 뭐라고 욕을 했다. 하지만 포장마차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미안하지 않았다. 아내의 우는 얼굴을 보자마자, 내 안에 있던 도덕관념이 모조리 증발돼 버렸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아내의 일그러진 눈뿐이었고, 나는 그 눈을 얼른 원래대로 복구시켜 주고 싶었다. 





   내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는지, 아내는 울음을 그쳤다. 해준은 아내 옆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아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붕어빵 먹자고 해서 미안하다고. 다시는 붕어빵 먹잔 소리 안 하겠다고. 앞으로 붕어빵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할 거라고. 

   내가 그렇게 너스레를 떨자, 아내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내와 나는 금세 친해졌다. 아내는 내 구애를 선선히 받아 주었다. 3년 간의 열애 끝에,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 후 2년이 지났을 때, 아내 뱃속에 첫 아이가 들어섰다.

   아내의 입덧은 심했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입덧이었다. 아내가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거의 없었다. 맡아지는 음식 향이 조금만 강해도, 아내는 구역질했다. 아내는 허여멀건 미음만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여러 곡식 넣고 만든 죽을 가져다주시면서, 어머니는 아내 등을 가만히 쓰다듬곤 했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가끔은 그 손길에 눈물을 비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들이 꼭 모녀 사이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가 이 집에 장가 온 것 같았다.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여보, 나 붕어빵 먹고 싶어.” 하고 말했다. 붕어빵?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내가 휘둥그레진 눈만 뜨고 있자, 아내는 “진짜 미안한데, 붕어빵 한 봉지만 사다 줄 수 있겠어?” 하고 부탁해 왔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갤 끄덕인 뒤,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옷 위에 패딩 점퍼를 입은 내가 현관문을 나선 시각은 오후 9시 21분이었다. 

   동네에는 붕어빵 파는 데가 없었다. 나는 아파트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근처 대학로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때 생각으로, 그곳이 가장 번화가였기 때문이다. 대학로 후미진 골목에서, 나는 붕어빵을 열 마리 샀다. 

   내가 사온 붕어빵을 보고, 아내는 울었다. 예견된 반응이었다. 이럴 거면서 붕어빵을 먹고 싶다고? 나는 우는 아내에게 손수건을 가져다 준 뒤, 아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눈물 닦은 아내가 하얀 붕어빵 봉투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내 손에 들려 나온 붕어빵 꼬리는 약간 타 있었다. 아내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그것을 입에 넣고 씹었다. 아내가 그것을 삼키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내는 구역질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아내는 틈만 나면 붕어빵을 찾았다. 붕어빵 볼 때마다 여전히 눈물 흘리긴 했지만, 눈물의 양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같았다.

   아내가 만삭이 되어 갈 무렵, 겨울이 거의 다 끝났다. 나는 붕어빵 파는 곳에 붕어빵 3박스를 주문했다. 배송 받은 붕어빵은 냉동실에 보관했다. 아내가 붕어빵을 찾을 때마다 꺼내 주려고. 아내는 붕어빵 2박스를 먹어치웠다. 단 한 번의 구역질도 없이.


   첫 아이가 태어난 건, 5월이었다. 아내는 17시간 진통 끝에, 아이를 낳았다. 산모도 아이도 건강하니 순산인 거라며, 의사가 아내를 독려했다. 

   정신을 좀 차린 아내가 나를 쳐다보더니, “여보, 나 붕어빵 먹고 싶어.” 하고 말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로부터 3시간 뒤, 나는 집에서 데워 온 붕어빵을 아내에게 가지고 갔다. 


   세 식구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날에도, 아내는 붕어빵을 먹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아내가 내게 “근데 왜 묻질 않아?” 하고 물어 왔다. 

   “뭘 묻질 않아?”

   내가 아내에게 되물었다.

   “나 붕어빵 보면 울잖아. 나, 당신 처음 만난 날에도 붕어빵 보고 울었던 거 같은데. 어째서 붕어빵 같은 거 때문에 우는지, 왜 안 물어 봐?”

   “너무 서럽게 울길래. 물으면 당신 더 서러워할 거 같아서.”

   “요즘은 붕어빵 봐도 잘 안 울잖아.”

   “그래도……. 근데 내가 당신한테 물어봐 줬으면 좋겠어? 붕어빵 때문에 왜 울었는지?”

   “물어봐 줬으면 한다기보다, 말해 주고 싶어서. 그 이유.”

   “뭔데?”

   “엄마야.”

   “응?”

   “붕어빵 보면 엄마 생각나서.”

   눈길을 떨어뜨리며, 아내가 말했다. 아내의 어머니는 아내가 열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붕어빵 보면 장모님 생각나?”

   “응. 웃긴 게, 엄마가 붕어빵을 한 번도 사 준 적이 없거든.”

   “근데?”

   “내가 일곱 살 때였어. 우리 동네에 붕어빵 파는 데가 처음 생겼던 때였거든, 그때가. 붕어빵 장수 보고 와서, 내가 엄마를 되게 졸랐어. 붕어빵 사달라고. 근데 엄만 붕어빵 사줄 형편이 안 되는 거야. 끼니 챙겨 먹기에도 버거운데, 붕어빵은 감히 꿈도 못 꿀 처지였던 거야. 그래서 엄만 나를 차분히 타일렀어. 다음에 붕어빵 사 주겠다고. 근데 일곱 살짜리 애가 뭘 알겠어? 다 필요 없고, 붕어빵 사 내라고, 막 떼를 쓴 거야. 그래서 엄마가, 우리 엄마가, 그럼 붕어빵을 직접 만들어 주겠다고 했어. 나는 입 꾹 다물고 엄마를 빤히 쳐다봤지. 그러다가, 지금 만들어 줄 거냐고, 엄마한테 물었어. 엄만 내 머릴 한 번 쓰다듬더니, 주방으로 휙 사라졌어. 내가 주방에 따라 들어갔을 때, 엄만 플라스틱 바가지에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있었어. 그걸로 전을 두 장 부치더라고, 엄마가. 다 부친 밀가루 전 두 장이 밥상 위에 올라왔어. 엄마는 전 두 장 사이에 설탕을 잔뜩 넣더니, 그걸 물고기 모양으로 잘랐어. 그리고는 그걸 나한테 줬어. 자, 붕어빵이다, 하면서. 근데 그 말을 하자마자, 엄마가 갑자기 우는 거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러면서 펑펑 우는 거야. 엄마가 울길래, 붕어빵 생각은 까맣게 잊고, 나도 막 따라 울었어. 엄마는 계속 미안하다면서 울고, 나는 엄마 왜 울어! 울지 마! 울지 마! 하면서 울었어. 다 울고 나서, 우리, 그 붕어빵 나눠 먹었다? 그 뒤로 나는 엄마한테 붕어빵 사 달라고 안 했어. 엄마가 또 많이 울까 봐 무서웠거든. 근데 붕어빵만 보면, 엄마 울던 게 생각나서, 자꾸 눈물이 났어. 주체가 안 되더라, 울음이.”

   잠시 숨을 고른 아내가 다시 뒷말을 이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했어. 붕어빵만 보면 발작적으로 눈물 나더라. 엄마가 보고 싶어서. 너무 그리워서. 근데 결혼하고 난 뒤부터는, 붕어빵 보면서 단순히 그리운 마음만 드는 게 아니더라. 나도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리워서 눈물 쏟을 만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붕어빵 보는 동안 눈물은 잦아들고, 마음 한편이 불안했어. 여보, 나 지금도 불안해. 우리 아기한테, 나, 좋은 엄마 돼 줄 수 있을까? 나 진짜 좋은 엄마 돼 주고 싶거든?”

   부은 눈두덩이를 비비며, 아내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가만히 아내를 끌어안았다. 내 생에, 아내를 가장 오래 안았던 밤이었다. 아내를 향한 사랑이 존경심과 경외심으로 물들어 간 밤이었다.




사람과 삶을 공부합니다. 공부한 것들을 책 속에 차곡차곡 담으며 살아갑니다. 읽고 나면 사람과 삶에 한 발 가까워질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부단히 노력하려 애씁니다. 카쿠코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을 통해 소설집과 산문집을 펴냅니다.


출간된 책 구입하기  :  http://cacuco.modoo.at/


비록 내게는 무덤덤했으나, 당신에겐 무한한 놀람이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당신에게 행복을 주었으니 그 순간 또한 축제였다 말해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 줄 수 있기를.

산문집 『마음이 퇴근하는 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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