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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Mar 12. 2017

당신 웃음 소리가 좋아



   온몸을 통해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웃는 사람 앞에 머무르는 일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 웃음에는 천연 진통제나, 영양제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시답잖은 말 한 마디 때문에 누군가 깔깔 넘어가기 시작하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잡념이 모조리 사라져 버린다. 그 잡념이 물고 늘어지던 이런저런 통증과, 영양가 없는 감정들도 함께.    


   예전에는 유머humor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다분히 진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보통 이상으로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나는 좋아했다. 나더러 진지하다고 누가 말해 올 때, 나는 은근한 기쁨을 느끼며, “아, 그런가요?” 하는 식으로 되묻기도 했다. 그 말을 한 번 더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금 내가 말한 ‘보통 이상의 진지함’은 유머와 거리가 멀었다. 그때는 농담 주고받는 게,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는 일처럼 여겨졌다. 한없이 골똘한 눈빛으로, 삶이 떠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최고 덕목이라 생각했다. 그 재미없음에서, 나는 재미를 느꼈다. 나는 따분한 사람이었다.    





   작년 봄부터였다. 내가 웃음의 가치에 눈뜨기 시작한 건. 웃음이 참 예쁜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 웃음소리를 계속 듣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하고부터였다. 

   그 사람 웃음은 인생을 가볍게 대한다는 느낌을 전혀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내가 받은 느낌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게 그 웃음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로 느껴졌다. 그런 웃음 없이 살아가는 일은 너무 끔찍하다고, 나는 느꼈다. 난데없고, 당혹스럽지만, 순응할 수밖에 없는 느낌이었다. 

   그런 웃음 없는 인생이 지니는 중요도가 바닥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살아가는 일에 대한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뀐 순간이었다. 웃는 일에 대해 한시도 관심 꺼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되었다, 나는. 편지 끄트머리에 부디 행복하라는, 많이 웃는 나날 보내라는 소망을 수시로 덧붙이는 사람이 되었다.

   그 어떤 강요 없이, 그 어떤 의도와 학습 없이, 그렇게 되었다.





   세상 방방곡곡을 아무리 뒤적이고, 수많은 책을 아무리 들춰도 찾을 수 없던 해답이나 돌파구를 사람에게서 찾을 때가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의 기회가 사람의 형태로 다가와, 내 내면을 멋지게 개조시킬 때가 있다. 

   좋은 인연이 한 사람 인생에 벌이는 기적은, 내 생각보다 거대하고 짜릿하다. 언제나 그래 왔던 것 같다.


   그 사람이 많이 웃을수록, 봄의 빛깔이 더 화사해질 것 같다. 세상의 평균 기온이 더 아늑해질 것 같다. 누군가의 행복이 삶을 더 아름답고 살기 좋게 만든다는 이 따뜻한 발상은, 그 사람이 내게 안겨 준 것이다. 이 발상이 내게 새로운 세상 하나를 개방해 주었다.

   좋은 사람이 오면, 좋은 세상이 열린다. 인연에 대한 기대와 노력을 늦추지 않아야 하는, 가장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과 삶을 공부합니다. 배운 것들을 책 속에 담아내며 살아갑니다. 읽고 나면 사람과 삶에 한 발 가까워질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더 나은 책을 위해 부단히 고민합니다. 카쿠코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을 통해 소설집과 산문집을 펴냅니다. 생활의 보고서를 발행합니다. 투박하지만 천진한, 우주에 하나뿐인 이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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