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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Mar 16. 2017

관계 회복에 대한 새로운 관점



   가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지금이 결정적인 기회다. 이번 기회 놓치면, 다음 기회 올 때까지 되게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아니지. 다음 기회 같은 건,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한 ‘결정적인 기회’는, ‘부서진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일, 결정적인 기회’를 의미한다. 글로 풀어 써서 이렇게 장황하지, 실제로 이 느낌은 찰나적이다. 언어가 아니라, 직감으로 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애매한 말다툼 때문에 서먹해진 사람이 내게 있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내 옆을 지나가다 소지품을 떨어뜨렸다. 그때다. 결정적인 기회의 느낌이 오는 건. 나는 ‘이거, 내가 주워 줄까? 주워 주면서 말이라도 한 마디 붙여 볼까? 그럼, 꽉 다물린 우리 관계에 작은 틈이 생기지 않을까? 그 틈 벌려서, 우리 관계, 다시 펼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 느낌이 나를 강하게 치고 간다.    





   물론, 관계 회복을 위해, 없는 기회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한없이 우유부단하고, 겁 많고, 소심한 사람이다. 마음끼리 한 번 어긋나 버린 상태에서,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에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다. 

   괜히 접근했다가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쓸데없이 나섰다가, 관계를 더 엉망으로 만들지 모른다는 노파심 때문이다.  

   그런 나라서. 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를 일부러 마련하는 데는, 그토록 젬병인 나라서. 나는 일단 내게 온 기회들이나마 최대한 잘 활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 기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써 왔다.    


   그런 채로 살고 있는데, 문득, 뭔가가 알아차려졌다. 관계 회복을 위해 써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사이가 어색해진 사람이 내 옆에서 짐을 떨어뜨리는 것만 기회가 아니었다. 그런 극적인 기회가 아니어도, 내가 잡아챌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즉석에서 얼른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다시 잘 지내고 싶은 그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기만 하면, 그 기회를 찾아낼 수 있었다. 끊임없이, 수없이, 발견할 수 있었다. 

   사이가 껄끄러워진 게 가족인 경우, 나는 그가 식사 후에 물을 찾는 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 나는 물이 든 컵을 그의 앞에 조용히 가져다 놓을 수 있다. 이것이, 그와 나 사이의 ‘대단한 사건’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갔고, 그에게 내 작은 호의를 전달했고, 그와 나는 짧게나마 서로를 의식했다.

   그렇게, 그 사람의 사소한 필요를 하나씩 해결해 주는 것. 그 사람에게 고요한 친절을 계속 베풀어 주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관계 회복의 기회였다.    





   그동안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관계 회복에 대한 기회는 드라마틱하거나, 거창해야 한다고. 관계 회복에 대한 시도는, 관계를 단번에 회복시켜 줄 거라고. 

   하지만, 관계 회복은 가벼운 접촉이 쌓이면서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었다. 조바심과 욕심을 버리고, 침착한 태도로 그 사람을 꾸준히 배려하는 것. 관계 회복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뿐이었다. 잔뜩 무게 잡고, “얘기 좀 할까?” 라며, 덜컥 부담 주는 게 아니라.

   진짜 관계 회복은 소박하고 차분하게 이뤄지는 거였다.    


   관계 회복에 대한 시도가 여태 두려웠던 건, ‘관계 회복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는 내 오해 때문이었다. 관계가 깨지는 건 잠깐이지만, 그걸 다시 다져 올리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한데, 나는 그걸 가슴으로 깨우치지 못했다. 

   관계 상태를 한 번에 뒤바꿀 수 있는 건 그 어디에도 없는데, 나는 그게 어딘가에 있을 줄 알았다. 그걸 내가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관계 회복을 내내 비관했다. 관계 회복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암담해 할 필요 없었는데. 관계 상태를 순식간에 전환시킬 수 있는 것 따위 원래 없으니, 그런 거 안 찾아도 됐는데.

   그렇게 심각해 하지 않아도 됐는데!




사람과 삶을 공부합니다. 배운 것들을 책 속에 담아내며 살아갑니다. 모두의 마음과 삶이 한 뼘씩 더 환해지고 행복해지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더 나은 책을 위해 부단히 고민합니다. 카쿠코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을 통해 소설집과 산문집을 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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