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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Mar 28. 2017

이상형이 어떻게 돼?



   어제 아침이었나, 그저께 아침이었나. 새벽이다시피 이른 아침에, 전화가 걸려 왔다. 내게 전화 건 사람은 해율이었다. 잠에서 한참 덜 깬 내게, 해율이 다짜고짜 질문했다. 내 이상형이 어떻게 되느냐고. 이번 특집 기사가 이상형에 관한 거라, 물어 보는 거라고. 지금, 최대한 많은 사람들 이상형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라고.

   해율은 기자다. 4년 차 기자. 근데, 해율, 부서를 옮긴 건가. 웬 이상형 기사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주물러 펴며, 나는 뜸을 들였다. 해율이 내게 대답을 재촉했지만, 그 대답을 내놓는 일이 내겐 쉽지가 않았다.

   이상형? 이상형이 뭐냐고?

   “야, 뭘 그런 걸 갖고, 그렇게 고민하냐? 답 없는 질문한 거 아니잖아? 이상형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이상형이 뭔지 몰라? 모를 리가 없잖아? 넌 머리 긴 사람이 좋냐, 아니면, 날씬한 사람이 좋냐? 아, 그런 걸 말해 달라고! 그런 거! 단순한 거!”

   수화기 너머에서 숨죽이고 있는 내게, 해율이 소리쳤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니가 생각하는 이상형하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하고, 좀 다른 거 같은데.”

   잠긴 목소리로 내가 대꾸했다.

   “뭐? 이상형에 종류가 어디 있냐? 아, 어쨌든, 빨리 말해 봐! 뭐냐고? 니 이상형?”

   “꿈이 있는 사람.”

   “꾸밈없는 사람?”

   “꿈, 꿈이 있는 사람이라고. 내 이상형.”

   “뭐라는 거야. 꿈이 있는 사람이, 니 이상형이라고?”

   “응.”

   “뭐 그런 이상형이 다 있대.”

   “그러게.”





   “야, 니 대답은 못 쓰겠다.”

   “왜?”

   “내 목록에 없어.”

   “무슨 목록?”

   “외모, 직업, 취미, 소유물. 이게 내가 뽑은 이상형 분류 목록인데. ‘꿈이 있는 사람’이 속할 만한 목록은 없잖아. 아니냐? 꿈이 있다, 꿈이 있다는 거면, 꿈도 소유물에 포함될 수 있는 건가?”

   “물건이 아니니까, 꿈은 소유물이 아니겠지.”

   “그래, 그렇지? 알겠다.”

   짤막한 대답 뒤에, 해율이 전화를 끊었다. 오전 7시 23분이었다.     





   외모, 직업, 취미, 소유물. 이불을 당겨 덮으며, 나는 해율이 만든 이상형 분류 목록을 생각했다. 

   가만. 이상형理想型의 정확한 뜻이 뭐지? 이상형에 대해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감았던 눈을 뜨며, 나는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 액정을 켜고, 인터넷 어플을 누른 뒤, 검색창에 ‘이상형’을 입력했다.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  

   이게 이상형의 정의였다. 유형. 유형의 정확한 뜻은 뭐지?

   「성질이나 특성의 공통적인 부분들을 묶어낸 하나의 틀. 혹은 그 틀에 속하는 것.」

   이게 유형의 정의였다.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형태’가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이었다. 이상형은. 이상형의 ‘형’은 ‘유형’이었다. 유형은 수많은 것들 속에서 찾아낸, 공통적인 부분일 뿐이고. 사물이나 사람들 사이의 공통적인 부분은, 형태가 있는 것일 수도, 없는 것일 수도 있는 거고.

   모든 게 이상형이 될 수 있다. 내가 가진 이상형은, 정상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 

   꿈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다양한 버전version으로 완성시킨다. 꿈을 가져 본 사람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꿈을 품고, 꾸고, 이룬 뒤에, 또 다른 꿈을 그려 나간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내 눈에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쉼 없이 스스로를 채워 나가는 사람이라.    


   자기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걸 잘 알고, 그 무한함 속으로 끝없이 나아갈 줄 아는 사람에게, 나는 번번이 반해 버린다. 그런 사람은 정말 매력적이다. 스스로가 뭐든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의 자신감은, 어디 비교할 대상이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그런 사람 옆에 있으면, 내 안의 좁은 문이 터져 버린다. 터져 버린 그 좁은 문 뒤에서 우주가 쏟아져 나온다. 마찬가지로 무한한, 내 가능성이 세차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 격렬한 해방의 느낌은 나를 순식간에 압도하고, 아플 만큼 나를 전율시킨다.


   한계가 없는 사람 곁에서, 내 한계를 부수고, 그렇게 함께 무한이 되는 일. 서로의 새로운 선택이 열어 줄, 새로운 세계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 관계. 나는 그런 일과 그런 관계를, 사랑이라 부른다.    


   점 하나에 불과했던 내 내면이, 어떤 계기를 만나, 우주로 폭발하는 순간. 나는 느낀다. 사랑이 첫 발을 떼었다는 사실을.




사람과 삶을 공부합니다. 배운 것들을 책 속에 담아내며 살아갑니다. 모두의 마음과 삶이 한 뼘씩 더 환해지고 행복해지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더 나은 책을 위해 부단히 고민합니다. 카쿠코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을 통해 소설집과 산문집을 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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