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Apr 01. 2017

터질 듯한 마음을 담아낸 음악

광시곡, 랩소디



   우연히, ‘광시곡’이라는 단어를 보았습니다. 처음 보는 단어는 아니지만, 뜻을 아는 단어도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단어를 평소처럼 흘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 단어의 여운을 가만히 음미하고 있던 직감이 나를 불렀습니다. 나는 그 직감의 소리를 따라갔습니다. 그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기로 한 것입니다. 

   광시곡.

   미칠 광狂, 시 시詩, 가락 곡曲. 

   광기 어린 리듬을 품은 음악.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악.


   광시곡은 기악곡器樂曲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기악곡은 악기를 사용해 연주하는 음악을 의미합니다. 광시곡과 같은 말로, 랩소디rhapsody가 있더군요. 노랫말에 자주 등장하던 랩소디가, 이런 뜻을 갖고 있었군요.

   거기까지 찾고 났을 때, 가슴 언저리가 조금 뻐근하다고, 나는 느꼈습니다. 아랫배까지 내려가지 못한 호흡은, 명치 위쪽에만 꽉 고여 있었습니다. 벅찼던 것입니다. 목 안쪽이 떨리고, 심장은 희미하게 펄떡거렸습니다. 

   설렜습니다. 





   광시곡. 제정신을 초월할 만큼, 열광적인 의식으로 지은 음악이라니. 이토록 멋진 단어를 만나다니.    

   광시곡은 미칠 듯한 사랑에서 떨어져 나온, 뜨거운 파편이었습니다. 사랑의 파편이면서도, 온전한 사랑에 대해 막힘없이 흥얼대는, 완벽하게 근사한 멜로디였습니다. 사랑이 절정에 치닫는 순간을 음악이라는 도구로 기록한, 하나의 절절한 이야기였습니다. 여행기이자, 자서전이자, 역사서였습니다.   




 

   3년 전에 즐겨 듣던 피아노 곡이 하나 있습니다(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중, 18번째 변주곡). 별 생각 없이 반복해서 듣던 그 곡이, 광시곡이었습니다. 

   그걸 방금 알았습니다. 

   어쩐지. 들을 때마다 마음이 주체가 안 되더니. 기분이 들썩거려, 수시로 혼미해지더니. 그게 광시곡이었군요. 어쩐지. 영혼의 발바닥이 자꾸 간지러워지더니. 그래서 어딘가로 계속 떠나고 싶어지더니. 그게 누구인 줄도 모르면서, 누가 서 있거나 앉아 있을 어딘가로 가고 싶어, 목이 타더니. 그게 광시곡이었군요.    





   그 곡을, 오늘 다시 듣습니다. 지금 듣고 있습니다. 그 곡이 두 번째로 재생되는 지금, 모든 게 명확해집니다.

   3년 전, 멀미 앓는 심정으로 내가 도달하고 싶던, 서 있거나 앉아 있을 그 누군가의 곁이 어디인지, 환히 밝혀집니다.     


   랩소디라는 단어를 그렇게 많이 접했으면서. 광시곡이라는 단어의 독특한 어감이 재미있다고 여러 번 생각했으면서. 그 모든 뜻을 이제야 알아낸 의미도, 덩달아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신을 만나는 동안, 내 안에서 폭발해 버린 사랑의 감정은 수없는 파편이 되어 온 곳으로 튀었는데, 그 중 일부가 3년 전으로 튀어 버린 모양입니다. 그 파편에 얻어맞은 그 시절의 나는 문득 광시곡 하나를 알게 되었고, 그걸 즐겨 듣게 되었고, 자주 듣다가 목적 없는 상사병도 앓았고, 그러면서 3년이 흘렀습니다. 

   그때 그 감정 파편을 보유한 채로 살아온 내가, 광시곡이 가진 뜻과 나에 대해 당신이 지닌 뜻을, 오늘 모두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이 커다란 사랑의 감정에다가, 그 폭발의 흔적에다가, 3년 전 내게로 날아든 감정 파편을 맞대 보게 되었습니다.

   딱 맞습니다. 조금의 균열도 없이, 들어맞습니다.    


   3년 전 그때, 나는 미래의 사랑에서 터져 나온, 한 곡의 희미한 광시곡이었습니다.

   지금, 그 광시곡이 선명하고 풍성하게 변주되고 있습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던 날,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해야 하는데, 마음 한편으로 자꾸만 “오래간만입니다.”가 맴돌더니. 갑작스럽게 떠오른 “오래간만입니다.” 때문에 속으로 된통 난처하기만 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요.

   나만 이해되는, 아니, 나조차도 완전히는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신, 지금 내 말, 이해 안 되죠?

   누구도 쉽게 이해하지 못할, 턱없이 이상한 시간관념을 주제로 이런 편지를 쓰게 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정말 광시곡인가 봅니다.

   미칠 광, 시 시, 가락 곡. 

   광기 어린 리듬을 품은 음악.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악.    


   이 연주가 마음에 드십니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친근하지만 조금씩 다채로워지는 선율로, 그렇게, 나는 매일 당신에게 가고 있습니다. 이런 음으로, 저런 음으로, 이런 박자로, 저런 박자로, 그렇게, 나는 매일 당신에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울려 가고 있습니다.

   혹시, 들리십니까.


   나는 광시곡입니다. 아마 당신에게만 들릴, 광시곡입니다. 우주가 오직 당신만을 위해, 이 광시곡을 준비하고 창조해 왔습니다.

   나는 이 광시곡의 끝을 모릅니다.




사람과 삶을 공부합니다. 배운 것들을 책 속에 담아내며 살아갑니다. 모두의 마음과 삶이 한 뼘씩 더 환해지고 행복해지는 책을 만들고자 합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더 나은 책을 위해 부단히 생각합니다. 카쿠코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을 통해 소설집과 산문집을 펴냅니다.


카쿠코에서 출간된 책 둘러보기  :  http://cacuco.modoo.at/

카쿠코 크리에이터 후원하기 : https://cacuco.modoo.at/?link=9lepcgtk


2600여 명의 구독자와 함께, 카쿠코 매거진은 더 풍부한 세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 자고 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