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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pr 26. 2017

인적 드문 바다 마을



   해가 지려고 한다. 몇 시인 줄은 모르겠다. 이곳의 시간에 익숙하지 않다. 이곳은 내가 사는 나라가 아니며, 내가 사는 나라로부터 아주 먼 데 있기 때문이다. 시차 같은 게 느껴지는 것 같다. 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깨랑 목에서 희미한 근육통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는다. 슬리퍼 훔쳐 갈 사람 같은 건 없다. 여긴 이름난 관광지도 아닌데다가, 현지인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서.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 

   허허벌판 같은 모래사장 위를 걷는다. 아까 이쪽으로 걷기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저 앞에 한 사람이 걷고 있다. 그 사람은 민소매 티를 입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 사람이 바다를 건너다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보조개가 보인다.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얗고 약간 도톰한 조개껍데기들이 드문드문 밟힌다. 맨발을 감싸는 고운 모래의 감촉이 좋다. 내가 본 모래 중에, 여기 모래 입자가 제일 고운 것 같다.

   점잖은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가기를 반복한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구분되지 않는다. 

   코끝에 바다 짠 냄새가 맡아지는데, 거기 연기 냄새도 살짝 섞여 있다. 해안가에 자리하고 있는 몇몇 식당이 이제 문을 연 모양이다. 

   이곳의 식당들은 초저녁쯤 되어야 문을 연다. 낮에 장사하는 집은 거의 없다. 그 풍습을 금방 알았다. 아까 점심시간에, 식당 찾다 지쳐, 편의점 같이 생긴 슈퍼에서 젤리를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먹은 초록색 젤리 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과일이 들어 있었다. 과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출출하네.    


   갈매기 한 마리가 바닷물 바로 위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다. 그러더니, 바닷물을 박차듯 하고 허공을 향해 날아오른다. 그 민첩한 움직임에서, 그 어떤 군더더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저렇게 살지 못한 세월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냥 담담하다. 이곳의 적막한 분위기가, 내 안의 감정을 모조리 몰아낸 것 같다.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게 없다. 그냥 그렇다. 모든 게, 그냥 그렇다.    





   입고 있던 셔츠의 소매를 걷는다. 반듯하게 접어서 걷지 않고, 그냥 당겨서 걷었다. 셔츠 안에 입은 반팔 티 곳곳이 땀에 젖어 있다. 약간 더운데, 셔츠를 벗고 싶지는 않다. 살결에 닿아 오는 셔츠의 까슬까슬한 감촉이 좋다. 바람을 맞아 셔츠 자락이 펄럭거리는 소리도 좋고. 헐렁한 반바지에 셔츠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지금의 내 모양새가 약간 멋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시력이 좀 더 좋았다면 선글라스를 벗은 채로 다녔을 텐데. 안경을 들고 나왔을 걸 그랬다. 해 지는 무렵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오다니. 술에 취한 건가.

   숙소에 남겨두고 온 맥주 반 병이 생각난다. 미지근해지고 탄산 다 빠진 맥주를 욕조에 붓고, 긴 목욕을 하면 좋겠다. 이따가. 지금은 일단 오래 걷고 싶다. 핸드폰 없이, 거의 맨몸에 가깝게 된 채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이 시간을 최대한 만끽하고 싶다. 

   당장이야 이런 시간을 얼마든 다시 마련하면 된다고 여기지만, 며칠 뒤 일상으로 돌아가면 사정이 달라질 걸 안다. 이런 시간 다시 만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내 예상이 빗나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뒤돌아서서, 왔던 방향으로 걷는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쪽으로 걷고 싶다. 아까 봤던 그 사람이 거기 계속 죽치고 있길래. 

   오른쪽으로 펼쳐진 바다 끄트머리에 바위섬이 있다. 근처에 배 탈 수 있는 곳이 있나. 저 바위섬에서 반나절쯤 보내도 좋을 것 같은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다. 그럴 것 같은 공간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뭘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바위섬까지 가야 하는 내 처지가 좀 우습긴 하네.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를 버거워한 게, 언제부터일까. 뭐라도 해야 안심 되는, 이 고질적인 부산함을 버리겠다고, 이 먼 나라까지 날아왔는데, 여기 와서도 또 어딘가로 처박히려 한다. 

   그래도 지금은 뱃속이 많이 편안하다. 배가 고픈 상태이든, 배가 부른 상태이든, 뭔가에 쫓기느라 속이 항상 더부룩했었는데. 지금은 몸속이 되게 가볍다. 몸속에 든 게 공기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동안 내가 누려 온 자유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질적으로 종류가 다른 듯하다. 제한이 있는 자유와 제한이 없는 자유의 차이일까. 이것보다 더 후련한 자유가 또 있을까. 그런 자유를 맛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지 않아도 지금 같은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는 게, 최대한의 자유겠지.    





   수건으로 대충 닦기만 하고 나온 머리카락이 말라 가며, 두피를 시원하게 한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피부가 약간 버석거리는 것 같은데, 그 느낌도 썩 좋다. 

   숙소 주인 말에 따르면, 해변에서 자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밤에 다시 나와 볼까. 두꺼운 담요 깔고 노래 들으면서, 바닷가 밤공기 질리도록 마시면서, 그렇게 잠들어 보고 싶다. 그 어떤 종류의 위협도 느끼지 않고, 단지 살아 있기만 하면서, 그것만 하면서, 삶의 모든 순간들 위로 둥둥 떠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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