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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n 15. 2017

마음과 닮은 사물

   “마음을 사물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사물과 가장 많이 닮아 있습니까?”
   자기소개를 마치고 연단 위에서 막 내려온, 무슨 강사라고 하는 사람이 턱밑에 붙인 마이크에 대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에어컨 바람을 피해 자리를 옮기려다 말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던 자신의 눈을 조금 크게 뜬 강사가 내 쪽으로 팔을 쭉 뻗었습니다. 그러자 스태프 한 사람이 내게 마이크를 건네주었습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난 자세로 마이크를 받아 쥐었습니다. 회사 동료들이, 상사들이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20분쯤 전에 먹은 소불고기 덮밥이 소화되다 말고 얹히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 곳은 내가 다니는 회사였고, 연단 위에는 강연 주제를 대문짝만 하게 적어 놓은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습니다.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보살펴 주기 위해 마련된 강연 시간이었습니다. 
   “발표해 주십시오.”
   자신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내 쪽으로 흔들어 보이며, 강사가 내게 발언을 청했습니다. 나는 눈을 내리깔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강사는 나를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강연 자체에 별 관심 없어 보이는 회사 사람들은, 식곤증에 허덕여 가며 나를 힐끔거렸습니다.
   “석고나 시멘트요.”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강사는 턱을 목 쪽으로 당기며 “석고나 시멘트.”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왜요?” 하고 물어 왔습니다.
   “석고나 시멘트는, 처음 반죽했을 때 아주 무릅니다. 그래서 그것들로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 수 있고, 또 한 번 만든 모양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딱딱해집니다. 나중에는 자국 하나 남길 수 없게 굳어집니다. 그래서 마음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강사는 코를 한 번 훌쩍거린 뒤, 바지춤을 가만히 추슬렀습니다. 내 앞자리에 앉은 몇 사람 뒤통수가 위아래로 끄덕여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무언의 동의 표시가 나를 약간 우쭐하게 만들었습니다.
   왼손으로 마이크를 옮겨 쥔 강사가 “네, 다른 분은요?” 하고 말하며, 내게 마이크를 쥐여 주었던 스태프를 쳐다보았습니다. 곧, 스태프가 내게서 마이크를 받아 갔습니다.
   그로부터 30분 동안, 강사는 회사 사람들을 골고루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질문했습니다. 처음 던졌던 그 질문을 되풀이해서 던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사물과 가장 많이 닮아 있습니까?” 그런 다음 강사는 침착하게 대답을 들었고, 발표자가 그런 대답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 다시 질문했습니다.
   석고와 시멘트 얘기로 몇 사람의 동의를 얻어, 얼마간 의기양양해졌던 내 기분은 금세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수많은 대답들이 내 머리와 가슴을 거세게 뒤흔든 까닭이었습니다.
   내게 마음은 석고와 시멘트였지만, 어떤 사람에게 마음은 포도 젤리였고, 과일 깎는 칼이었고, 썩은 물이었고, 오줌이었고, 취하지 않는 술이었고, 자꾸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땅에 닿지 못하는 낙엽이었고, 앞이 막힌 메가폰이었고, 단추 없는 셔츠였고, 굴뚝이었고,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이었고, 고무줄이었고, 팬티였고, 가운데가 뜯겨 나간 소설책이었고, 균형이 안 맞는 역기였고, 아버지의 흑백사진이었고, 분홍색 보자기였고, 이빨 나간 바가지였고, 잉크 다 떨어진 볼펜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발표를 다 들은 강사는 불뚝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다시 연단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이 이렇게 제각각입니다, 여러분.”
   강사의 말을 들은 좌중이 한 번 술렁거렸습니다. “아.” 하는 낮은 탄성을 터뜨리며 팔짱을 끼는 사람도 몇 있었습니다.
   “때에 따라 마음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한 가지 방법으로만 사용합니다. 마음은 이런 거야, 하고 자기 답을 내려놓은 다음에, 그 답에 따라서만 마음을 다루는 겁니다. 아까 처음 발표하신 분이 마음을 석고랑 시멘트라고 하셨나요? 물론 저는 그 분의 삶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게 그 분께 실례가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제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 분은 자신의 마음을 석고나 시멘트처럼만 사용하며 살아오셨을 확률이 높습니다. 한 번 굳어 버리면 다시 손쓸 수 없는 마음만 갖고 살아오셨을 확률이요. 석고나 시멘트 같던 마음을 물이나 젤리 같은 마음처럼 쓰며 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사람 습관이라는 게, 한 번 굳어진 인식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그런데 저는 오늘 여기서, 여러분들의 굳은 인식을 측면에서 한 번 흔들어 볼 생각입니다. 마음이 가진 성질은 마음 주인이 붙여 주기 나름인 거라서, 언제든 그 성질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강사는 별안간 자신의 넥타이를 쥐고 흔들었습니다. 나는 내 삶에 대해 멋대로 넘겨짚는 강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강사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어서, 내심 철렁했습니다.
   그래서 당신과도 이 질문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어떤 사물과 가장 많이 닮아 있습니까? 
   언제라도 좋으니, 그 대답을 꼭 들려주세요. 꼭 듣고 싶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으로 인해, 내가 내 마음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했듯, 그 질문에 대한 당신 대답으로 인해, 내가 당신 마음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당신이 당신 마음을 다뤄 온 오랜 방법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면, 내가 당신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방법에도 얼마간의 개선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장편소설《거울 밖으로》: http://www.bookk.co.kr/book/view/18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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