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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Sep 13. 2017

사람이 얼마나 좋으면

어떤 그리움과 함께한 이야기





모르겠어.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던 건지. 어떻게 그렇게 눈길만 마주치면 입이 벌어지고 웃음이 터져 나왔을까. 뭘 구하러 어디에 갔는데 결국 구하려던 걸 구하지 못했다는 애석한 이야기를 전하고 전해 들으면서도, 우리는 뭔가 아주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발견해 낸 사람처럼 생글생글 웃었는데. 


걸리기만 하면 슬픔과 관련된 온갖 기능들이 싹 제거되어 버리는 전염병에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 같았어, 우리는. 눈동자들과 엄지손가락들이 여러 각도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한도 없이 즐거워지곤 했었다. 그런 무차별적인 기쁨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있구나. 미치도록 찬란했다.


대체 우리는 함께한 모두를 얼마나 좋아했던 걸까.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면 모든 나쁜 것에 마비가 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를 수 있는 걸까. 그런 나날이 있었다는 것에 쉴 틈 없이 고마워져야 하는데, 그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커서, 언제부턴가는 그 시간들 쪽을 바라보는 내 눈길이 자주 바닥으로 떨어지곤 했다. 가만히 보고 있기가 조금 힘들어서. 그리움이 걷잡을 수 없이 아릴 수도 있구나. 제대로 박힌 그리움은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구나.






우리가 언제 또 그렇게 부둥켜안고 손잡고 시계와 상관없이 이야기하거나 걸을 수 있을까. ‘그렇게 떠나 버릴 거였으면 그토록 잘해 주지나 말지’라는 의미가 들어 있던 노랫말이 이런 식으로 이해가 된다. 분명 너무 좋아서 값으로는 결코 매길 수조차 없는 순간들이었는데, 그 순간들이 없는 순간들을 지내자니 한 번씩 너무 버거워서, 차라리 그 순간들이 없었다면 어떨까 하는 못난 생각마저 들곤 했다. 너무 행복해서 조금은 미웠다, 그때가. 어떻게 이런 마음이 존재할 수 있는 거지. 참 이상하다.    


보고 싶어. 잘 지내고 있느냐는 말을 멀리서 건네는 게 겸연쩍지가 않고 약간 서글플 정도로. 늘 같이 있어서 인사가 따로 필요 없던 우리가, 인사 없이는 서로로부터 아무 소식을 알아낼 수 없는 세월을 나고 있다.


돈이 없는 배고픔보다 아끼던 사람이 없는 배고픔이 훨씬 지독하구나. 기약 없는 약속이 얼마나 잔인한 줄 알아서 “언제 한 번 보자.”는 식의 어렴풋한 말은 한 번도 나누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런 애매한 약속마저 좀 간절해진다. 나는 우리가 같이 있던 그 시간들 밖으로는 한 번도 나와 산 적이 없나 봐. 그래서 그 시간들과 계속 멀어지기만 하는 오늘을 사는 게 자꾸 숨 막히고 힘겨운가 봐. 나만 그런가? 그렇다면 미안해. 좋았던 시절을 돌이키며 자꾸 아파 버려서.






근데 말이야,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 그리움을 어느 정도 감당해 낼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리움의 고통 아래에 있는 가치를 분명하게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행복이 내 앞에 있을 때, 그 행복이 얼마나의 그리움으로 바뀔지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 같아. 그래서 그리움의 정도가 크다는 건 그만큼 내가 행복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때그때 떠올리게 되는 거지. 그리움이 행복의 또 다른 형태라는 점을 놓치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런 경지에 오르면, 내 삶 아래로 고이는 그리움들이 덜 벅차지지 않을까. 살수록 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자꾸 무거워지기만 하던 내 세월이 점점 가벼워지지 않을까. 우리가 우리였던 때로 인해 생겨난 그리움이 나를 쑤시고 때리던 순간들마저, 결국에는 나를 일으키는 하나의 가르침이 되지 않을까. 우리라는 이름으로 발생된 모든 것들에는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는 결론적인 감상이, 내 생애의 중심부를 따뜻하게 물들이지 않을까.


너희와의 모든 것들을 돌이키기에만 바빠서, 그동안 내 주변 사람들에게 못할 짓 많이 한 것 같은데. 가까운 미래에는 그 사람들한테도, 잊히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을 행복 몇 가지씩 안겨 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산문집 『가치에 대한 이야기』:

http://www.bookk.co.kr/book/view/2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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