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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빈 Aug 07. 2019

리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기


리듬(rhythm). 음악에서 어떤 장단, 강약 등이 반복되며 규칙을 이루는 것. 그 규칙적인 흐름. 이것을 리듬이라고 한다. 


우리 일상에도 리듬이 있다. 우리 몸의 컨디션에도 리듬이 있다. 바이오리듬(biorhythm)이 그 대표적인 예다. 체온, 수면, 대사 같은 것들 전부 주기적인 변동을 겪고 있다. 인간관계에도 리듬이 있고, 일에도 리듬이 있다. 


어떻게 보면, 우주 만물이 리듬에 따라 생명 현상을 이어 나가는 것 같다. 계절의 흐름도 리듬으로 볼 수 있고, 인간의 한 생애도 리듬으로 볼 수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온갖 생명은 다양한 규칙을 따르며 자신들의 움직임을 되풀이한다. 만물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리듬이라는 존재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을 한동안 무시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버리고 살 수는 없다. 리듬을 너무 오래 깨 버리면 그리로 죽음이 이르기 때문이다.     







나는 계획적인 삶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일상의 리듬, 몸과 마음의 리듬 같은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내 유일한 관심사는 그저, 내가 매일의 계획을 완벽하게 실천하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에게 할당량을 주었다. 오늘은 이만큼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나 스스로에게 매일 요구하였다. 세부 계획까지 다 지켜야 한다고.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고.


계획대로 움직일 수 없는 위급 상황에 처해서도, 나는 나 자신이 모든 계획을 지키길 바랐다. 그 바람은 촉구 수준이었다. 단순 바람은 아니었다. 계획을 하나라도 어기는 것은 불성실함의 증거라는 관념이 나에게 있었다. 강하게 박혀 있었다. 그 관념은 확신에 가까운 것이거나, 확신보다 큰 무엇이었다. 언제나. 


그렇게 나는 융통성 없이 살았다. 좀처럼 유연해지지 못하는 고집불통, 원칙주의자였다.      







‘하면 된다.’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뭐든지 계속 해 나가다 보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하다.’는 ‘365일, 24시간 내내 하다.’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 ‘하다.’가 ‘365일 24시간 내내 하다.’라고 착각하며, 오랜 세월 동안 나 자신을 혹사시켰다. 열심히 사는 거, 좋은데, 페이스 조절 없이 전력 질주만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여기저기서 탈이 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탈은 재미가 없어지는 거였다. 삶이 너무 고단해서, 살아가는 것에 흥미가 떨어졌다. 인생에 대한 설렘이 닳고 닳아 소멸하고 있었다. 순수한 열망은 옛말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계획이 되었다.      


몸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그동안 수도 없이 들었는데. 탈진해 나동그라지고 나서야, 나는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냥 무시해도 되는 줄 알았던 것들 중에 무시해선 안 될 것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몸에서 나에게 보내는 긴급 신호, 마음의 대들보가 부러지는 소리, 기분의 통제 센터가 바닥부터 무너져 내리는 소리…….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감지하고 있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것들을 없는 것 취급했을 뿐이지. 내 몸과 마음은 언제나 충분히 큰 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대로 가면 다치거나 아프게 될 거라고. 오르막에서는 느리게 걷고, 내리막에서는 여유 있게 걷고, 피곤하면 쉬엄쉬엄 걷고, 기운 날 때는 평소보다 많이 걷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오차 없이 매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활에 오차 생기는 걸 싫어하는 건 인생이 아니라 너라고.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너라고. 착각이 너무 오래되면, 그것이 사실인 줄 알고 살게 되지만, 착각은 결코 사실이 될 수 없다고.     







나는 10년 넘도록 매년 수첩을 썼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빼곡하게 적어 놓는 수첩. 전날 저녁이나 그날 아침에 내가 적어 놓은 목록에서 지워지지 않은 게 있으면, 나는 그 하루가 끝나기 전까지 일을 멈추지 않았다. 동틀 무렵에 잠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있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일단 건강해야 열심히 살 수도 있는 건데. 


내가 믿었던 젊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젊음도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젊음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는 내 생각보다 좁았다.


나는 비로소 내가 만용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였다. 그 사실에서 도망갈 곳이 없었다. 아무리 도리질을 쳐 봐도, 내가 더는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떨쳐지지가 않아서. 시선을 옮기지 않아도, 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확인할 수가 있어서.


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더는 호들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나로부터 파괴되고 있었다. ‘무조건 열심히, 성실히’라는 허울 좋은 원칙 때문에.     







인생과는 춤을 추듯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인생과 손을 맞잡고, 하루는 내가 한 걸음 내딛고, 하루는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그때그때 가장 알맞은 리듬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결코 나태함이 아니고, 편의주의적 행태도 아니었다. 


나는 아직 초보 댄서라, 지금도 한 번씩 노랫소리를 놓치고 인생의 발등을 밟거나 나 혼자서 휘청거린다. 그럼에도 노래는 계속되고, 내가 먼저 떠나지 않는 한 인생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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