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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도인 박대리 Nov 22. 2023

4단 승단의 때가 도래했다

내가 “승단”할 수 있을까 ❶ 


유도를 시작했던 건 2012년. 4단을 딴 건 올해 2023년 중순이었다. 약 11년이 걸렸다. 오래 걸렸다면 오래 걸렸다. 초단을 따고 1년이 지나야 2단을 딸 수 있고, 2단을 딴 후 2년이 지나야 3단을 딸 수 있다. 게다가 2단까지는 다니고 있는 도장에서 딸 수 있지만 3단부터는 유도원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한다. 그리고 3단을 딴 뒤 3년이 지나야 4단 승단이 가능하다. 즉, 승단 가능 기간이 도래했을 때 지체하지 않고 바로 승단을 할 경우, 유도를 시작하고 7~8년 정도가 되면 4단이 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11년이나 걸렸으니 다소 늦었다고 볼 수 있다. 그닥 승단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도로서의 유도를 잘하고 싶었을 뿐, 타이틀에 큰 욕심이 생기지 않았다.(이런 마음으로 초단 또는 2단에 머무른 채 엄청난 공력을 숨기고 있는 유도인들이 은근히 많다.)


초단을 땄을 때는 첫 검은띠였으니 제일 기쁘고 뿌듯했고, 1년 뒤에 딴 2단에는 큰 감흥이 없었다. 당시 경찰공무원 시험에서 유도 2, 3단의 경우 가산점 2점을 부여해줬다. 그저 유도 2단을 시기적으로 이번 시험에 가산점으로 적용이 가능한지 가늠하느라 여념이 없었기에 승단의 기쁨을 음미할 겨를이 없었다. 이후 2년이 지나 수험 생활을 그만두고 직장인이 되어 유도를 한창 즐기고 있을 때는 아예 승단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주변의 유도 2단인 지인들이 3단을 따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나는 종로 YMCA에서 퇴근 후 유도를 하며 즐거이 지냈다. 아예 승단 시기를 한 차례 놓치고 나니 말끔히 승단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됐달까.


그러던 어느날 사범님이 내게 서류 승단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2단을 따고 5년 정도가 지나면 서류와 시합 출전 이력 등으로 승단이 가능하다고. YMCA에서 시합도 몇 차례 나간 데다가, 2단을 따고 유도를 하면서 5년이 경과하였으니 3단으로 올려보지 않겠냐고. 그렇게 3단은 얼떨결에 실기 시험을 보지 않고 그간의 이력을 증명하여 따게 됐다. 그리고 그게 내 인생에서 마지막 승단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생활체육인으로서 굳이 더이상의 단을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었다. 나는 이력서의 자격증란에 적힌 ‘유도 2단’을 ‘유도 3단’으로 고쳤다. 그것 외에 인생에 큰 변화는 없었다. 띠에 3단이라고 적힌 것도 아니었으니 어느 도장에 가든 적당히 2단 즈음이라고 둘러댔다. 스스로가 3단만큼의 유도 실력을 갖췄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메치기본, 굳히기본 심사를 정식으로 치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얼마 안 있어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강제로 체육관에 다니지 못하게 됐다. 마침 독립을 하면서 주거지를 옮기게 되어 기존에 다니던 종로 YMCA에 다니기도 어려워진 상황이었으니 나는 여러모로 소속된 체육관 없이 부유하고 있었다. 가끔씩 나의 첫 도장이었던 청림유도관에 가서 잊었던 유도의 느낌을 되새기고 오곤 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한소끔 가라앉고 나서야 집 인근에 있는 주말반이 있는 유도장을 찾아 다시 유도를 시작하게 됐다. 그때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3단을 땄던 날로부터 3년이 흘러 또 승단의 시기가 도래해있었다. 


나는 그저 나인투식스(9 to 6)의 삶을 살아가는 사무직 직장인이었다. 지금의 내 삶에서 이미 유도 3단부터가 다소 엉뚱한 자격증이었다. 게다가 승단 심사 준비에는 시간과 체력이 많이 들 터였고 제법 목돈도 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3단 승단 때 본 심사를 보지 않았던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는 거쳤어야 할 관문을, 멋모르고 접어든 샛길로 지나온 느낌이었으니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무런 의지 없이, 멍하니 시간에 몸을 내맡기고 흘러가는 내가 있었다. 코로나는 슬슬 끝이 나는데 나는 그 후유증에 시달리기라도 한 건지 계속 무기력한 상태였다. 비록 답답한 KF94를 끼고 해야 했지만 다시 시작한 유도는 당연히 재미있고 행복했다. 2년 여의 지옥 같았던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고, 여러 사람들과 다같이 뒤엉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으니까. 주말이 지나면 다시 월요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나는 별다른 목표 없이 그저 회사 생활과 운동을 반복했다. 뇌리에 계속 맴도는 '이 쳇바퀴 같은 일상에 끝이 있긴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마지막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주말마다 유도를 하다가 어느날 대련 중에 큰 부상을 입게 될 거고 그때가 아마 내가 유도를 하는 마지막날이 될 터였다. 나의 의지를 떠나 결국 유도를 하지 못하게 되는 어떤 상황이 나에게 유도인으로서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어줄 거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그만하자고 얘기할 수 없으니까, 으레 그래왔듯 그냥 내가 좋아하는 유도를 하도록 내버려뒀다.


무기력한 지금의 내 유도에 있어서 무언가 다시 방향키를 잡아줄 목표가 필요했다. 올해 초, 나는 유도 4단 승단을 새해 목표로 잡았다.



승단 시험 과목은 필기와 실기가 있었다. 필기는 관장님께서 자주 출제되는 내용을 정리해서 짤막하게 수업을 해주셨고, 가장 큰 문제는 실기였다. 실기는 크게 본(카타) 심사와 대련 심사로 나뉜다. '본'이란 태권도로 치면 품새와 같은 것으로 일본어로는 ‘카타’라고 한다. 3단 때 본 심사를 보지 않았기에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종종 도장에서 용인대 입시를 준비하는 십대 학생들이 메치기본을 연습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입시 과목으로서의 본이기에 더 기준이 높은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한편의 연극이나 무용을 보는 것만 같았다.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웠다. 대련을 할 때는 그렇게 가차없이 힘차고 거친 십대 아이들이 정갈한 몸짓으로 약속된 동작을 서로 주고받았다. 손과 발, 표정 등 몸의 모든 부위가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아름다운 동작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들만큼 아름답게 해내기는 커녕 과연 본의 순서를 헷갈리지나 않을지 걱정이었다.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대련 상황에서의 기술만을 수련해왔는데. 게다가 3, 4단 승단에는 메치기본 뿐만 아니라 굳히기본도 있었다. 메치기본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손기술-발기술-허리기술-누우며 던지기-모로 누우며 던지기. 각각의 기술마다 세 개의 메치기가 포함된다. 그리고 굳히기본에는 누르기-조르기-꺾기가 있고 각각 그 안에 5개 정도의 굳히기 기술이 포함된다. 즉, 총 15개의 메치기 기술, 15개의 굳히기 기술을 기술을 거는 ‘잡기’와 기술을 받아주는 ‘받기’로 번갈아 연습해야 했다. 메치기본이야 ‘받기’는 계속 바닥으로 메쳐지니 아프기는 해도 그저 ‘잡기’의 리드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데, 굳히기본에서의 ‘받기’는 ‘잡기’가 기술을 걸었을 때 저항하는 모션을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승단 심사 전에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할 강습회에 가서 대략적으로 배우기는 했지만 하루 동안 이뤄지는 수업에서 메치기본은 ‘손기술’까지, 굳히기본은 ‘누르기’까지만 가까스로 배워볼 수 있었다. 그나마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우왕좌왕 흩어져서 연습하는 데다가 시연하는 이들도 멀리서 두 사람이 뭉쳐서 빠르게 연기하며 지나가버리니 도통 보이지를 않았다. 결국 도장에서 관장님께 꼼꼼히 배우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연구해가며, 무엇보다 계속 합을 맞춰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일단은 승단 시험을 보려면 잡기, 받기를 번갈아가며 합을 맞춰볼 ‘파트너’가 필요했다. 메치기본의 손기술 중 '어깨로 메치기' 기술을 소화하려면, 내가 양어깨 위에 얹어 들 수 있을 만큼 나와 체격이 비슷한 파트너.



(계속)


메치기본의 손기술 중 '어깨로 메치기' (실제로는 어깨 위의 '받기'는 몸을 꼿꼿이 펴고 왼손으로 아래에 선 '잡기'의 등, 꼬리뼈 쪽을 짚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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