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이웃, 검지손가락

<무제의 나날들> 2025년 9월 8일 월요일

by 무도인 박대리

아침 출근길에 현관문을 여는데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문 밖에 뭔가 무거운 게 놓여 있었다. 건너편 집이 이사를 가는지 이삿짐 센터의 플라스틱 바구니들이 즐비하게 쌓여있어서 우리집 문이 열리는 걸 가로막고 있었다. 열려 있는 건너편 현관문을 향해 크게 미소 지으며 문을 밀었다. 건너편에서 일하시던 이삿짐 센터 어르신이 나와서 '아이고, 미안합니다.'라며 짐들을 당겨주셨다. 미소의 힘은 멋진 거야, 덕분에 우리는 서로 웃으며 각자의 일을 시작하잖아. (여태껏 미소로 많은 부당한 상황들을 뭉게 왔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밖에 나를 지키지 못하면서 나이를 먹어도 되는 건지 불안해졌지만.) 나는 즐겁게 엘레베이터 닫힘 버튼을 눌렀다. 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오늘은 특히 몸이 가뿐했다. 처음으로 목발을 내려놓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무릎의 통증과 가동범위 면에서 많이 호전됐다고 스스로 느끼기도 했고 짧은 거리는 보호대만 차고 조금씩 걸어다녀 봐서, 슬슬 괜찮을 것 같았다. 보호대를 찬 왼쪽 무릎을 접지 못해서 여전히 절뚝거리며 걷고 있긴 하지만, 목발을 짚지 않아도 되니 오른팔이 자유로워졌다. 짐도 더 들 수 있고 포켓몬고를 하면서 걸어갈 수도 있게 됐다.

출근해서 이족보행을 하는 나를 보더니 팀원분들이 목발 무제와의 이별을 축하하며 점심을 다같이 먹자고 제안해주셨다. 디자인팀 팀원분들은 너무 다정하다. 덕분에 점심으로 좋아하던 스프 카레집에 갔다. 평소 마라탕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서, 이럴 때 먹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마라 스프카레를 주문했다. 정말 맛있었다. 스프카레를 극찬하며 먹었다.


월요일 오후 업무는 유난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순식간에 해가 저물었다. 나는 늦게 출근했던 탓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인파가 줄은 뒤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회사에서 좀더 비비고 있다가 해가 떨어지고 난 뒤에야 집으로 갔다. 목발이 없긴 해도 절뚝이고 걸으니 허리와 골반이 여전히 아팠다. 그래도 시장에 들러 차돌된장찌개 끓일 재료를 한가득 사서 지하철을 탔다. 손가락도 아프고 피곤했다. 집에 가서 된장찌개 끓여서 밥 지어먹고, 넷플릭스로 영화 보면서 턱걸이나 하자, 하며 집의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옆집이었다. 아마 오전에 전세입자가 나가고 바로 새로 이사온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입주하자마자 집들이라니 멋지군. 폐활량 좋은 사람이 한 명 있는지 웃음소리가 굉장했다. 집에 들어가서 음악소리를 키우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옆집의 낯선 소음들에 내가 예민하게 날을 세우게 될 것 같았다.


몇 년 전 원룸에서 살 때는 한 층에 다섯 개의 집, 아니 다섯 개의 방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과 거의 한가족처럼 모든 소음을 공유했었다. 당시 코로나로 체육관을 못 다니게 되면서 퇴근하고 집에만 박혀 있는데, 옆집 사람들은 인원 제한, 운영 시간 제한을 피해 자신들의 방으로 손님들을 불러 모았다. 다섯 평 남짓한 작은 단칸방으로 대여섯 명의 친구들을 불러서 늦도록 노래 부르고 웃고 떠들곤 했다. 어느날은 새벽에 못참고 나가보니 현관문 앞에 신발들이 즐비하게 나와 있었다. 원룸 안에 신발들을 둘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결집한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도 202호, 203호... 이웃의 소음은 이따금씩 내 달팽이관과 신경을 갉아먹었다. 집주인에게 얘기를 해보기도 하고, 이웃집 현관에 쪽지를 써붙이기도 하고, 어느날은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다 포기했다. 나도 그냥 청소기를 돌리고 친구들을 불러서 편하게 소리 지르고 놀았다. 헤드셋으로 두 귀를 틀어막고 자전거를 탔다. 무뎌져갔다. 다른 누군가 다른 집 문제로 민원을 넣으면 집주인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혹시 어젯밤에 소음을 느끼셨나요?' 그에게 나는 벽간소음 감별기였다. 찢어져라 웃는 소리나 괄괄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냥 누워서 욕지기를 내뱉으며 잠들면 끝이었다. 그래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전보다는 긍정적이고 관대한 사람이 됐을 거라고.


아니었다. 그 당시 코로나로 운동을 못했던 것처럼, 지금은 다리를 다쳐 운동을 못하고 있으니 그때의 내가 다시 돌아온 것만 같다. 나는 된장찌개를 머금고 맞은편 새 이웃이 내는 소리들을 감상했다.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네 명 모두 흡연자. 20-30분 간격으로 현관문을 왁자지껄하게 열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골목길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담배를 피운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인터폰을 눌러 본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폐활량 좋은 덩치가 비틀거리는 정도도 심해져갔다. 저 사람이 집주인일까? 저 폐활량 좋은 녀석은 이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 웃음소리를 매일 듣는 거라면 제정신으로 못 살 것 같은데. 방의 불을 끄고, 침대 위에 올라가서 창밖으로 쓰레기장에 서서 담배를 꼬나문 네 명을 굽어 봤다. 새벽 1시 30분. 이제 폐활량 좋은 덩치는 제 몸을 못 가누고 비틀거리며 웃으며 장난을 친다. 검지 손가락으로 그 살집이 두툼히 낀 등과 목덜미를 겨눠본다.

제발 불행해져. 더이상 그 멱따는 웃음소리 좀 안 듣게.

원룸에서도 그랬다. 나와 같은 고도에 살던 건너편 빌라 아저씨는 새벽 2-3시에도 담배를 피우러 빌라 계단참에 나와 유튜브를 봤다. 강호동의 웃음소리, 유행하는 릴스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 그때는 책상 위에 올라가서 아저씨를 구경했다. 방의 불을 끄고 서서 검지손가락을 그를 향해 겨누곤 했다. 이게 총이었으면. 비비탄 총이라도 됐으면.


가까스로 잠에 들었다가 또 골목에 내려와 깔깔거리는 목소리에 새벽잠을 깼다. 창밖으로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소리를 지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목소리를 삼켰다. 괜히 그랬다가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특히 지금은 다리 때문에 달리거나 도망칠 수도 없다. 창문을 닫아 버렸다. 갑갑했다.

결국 다음날 늦잠을 대차게 잤다. 9시가 돼서야 깼다. 허둥거리며 고양이 세수를 하고 옷을 꿰입었다. 현관문을 나서다가 고요하게 닫힌 건너편 현관과 마주했다. 지금쯤 어제의 숙취로 늘어져서 자고 있을 것이다. 저 문 너머에서.

참아야지. 별 수 있니? 막상 눈 앞에 있으면 말 한마디 못 할 거면서.

등 뒤에서 신발장에 선 무제가 말했다. 맞아. 그때 빌라 계단참의 아저씨한테도 총은 커녕 말 한마디 못하고 나는 그 동네에서 도망쳤어. 아마 그는 지금도 신림의 그 골목에서 멀쩡히 그러고 살고 있을 거다. 타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무례하게.


이렇게 미움과 화가 차오를 때일수록 입꼬리 올리기 게임을 해야 한다. 엘레베이터의 스테인레스 기둥에 얼굴을 비추어보면서 미소를 지어 본다. 굴곡진 기둥이 얼굴을 멋대로 뒤죽박죽 섞어줘서 나는 우는 듯 웃는 얼굴이 된다. 역시 미소의 힘은 멋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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