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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Jul 30. 2022

아빠 모습에서 할아버지가 보여요.

父子有親, 長幼有序


팔십 평생을 유교적인 틀에서 생활해 오신 아버지는 효(孝)와 예(禮)를 무척 강조하셨다. 엄격한 교육 때문에 아들들은 조그마한 실수를 해도 아버지께 혼이 날까 싶어 행동거지를 조심했다. 그런데 연세가 들어가고 몸과 마음이 약해지자 변화가 찾아왔다. 셋째 아들까지는 엄하게 키운 편이라 아들들이 아버지 앞에 가는 것도 조심스러웠는데, 언젠가부터 넷째와 막내에 대해선 그 엄격함의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가끔 넷째와 막내가 아버지를 안거나 아버지 앞에서 거리낌 없이 웃으면 무척 낯설었다. 같은 아들인데 너무나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큰아들인 나로서는 도저히 그 경지까진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안아드리고 사랑한다는 말만 하면 되는데 아버지께 다가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연히 아버지도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날 안아주시지 않았다. 마지막 염 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안고 사랑한다고 했다. 왜 나를 한 번도 안아주지 않았냐고 생명 없는 몸 앞에서 크게 외쳤다.



섣달 그믐날이다. 갑오년(甲午年)을 마치고 을미년(乙未年)을 맞이할 참이다. 세월이 빠르다. 아들 며느리들이 다 왔다. 어린것들이 들이닥쳐 집안이 떠들썩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른들 앞에서 옛날 같으면 이놈들 혼이 날 텐데 제 부모들이 오냐오냐 키워서 온갖 버릇이 없다.  모두가 제멋대로다. 그러나, 또 보면 볼수록 봄에 흙을 뚫고 올라오는 노란 새싹 같다. 귀엽다.

- 설 전날, 2015.2.18


며느리가 다섯, 손자가 여섯, 손녀가 다섯, 세뱃돈 계산하기가 어렵다. 손자 손녀들이 세배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한다. 며느리들이 다섯이 나란히 서서 절을 한다. 다들 예쁘다. 감흥이 있다. 아들 다섯이 세배를 한다. 제 자식 나쁘다는 사람 뉘 있을까. 항상 봐도 싫지 않는 얼굴들이다. 작은집 질부, 조카, 제 손들이 절을 했다. 나는 내가 잘 사는 것보다 동생이 잘 살기를 바랐다. 뜻대로 동생이 농사도 많고 자식들도 다 잘 산다. 나보다 낫다. 세배 끝나고 선산을 돌며 선영을 찾았다.  - 설날 2015.2.19



아버지는 집안에 장유의 질서와 부자유친의 오륜 덕목을 강조하셨다. 그런데 아버지 편에서는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셋째 아들까지는 유친(有親)이 잘 안 됐다고 아들들은 생각했다. 즉, 유친보다 장유(長幼)의 질서(秩序)를 강조한 나머지 부자간 동상이몽(同牀異夢)은 계속되었고, 아버지는 그것이 자식을 참 교육시키는 길이라 여기셨다.

감히 아버지께 뭐라 토를 달 수는 없었다. 바로 가정에서 아버지는 제왕적 존재였다. 아들들도 그렇게 대했다. 그게 덕목이었고 아버지 자존심을 세워드리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셋째까지는 아버지와 늘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었고, 문제가 발생하면 덮어버리거나 가능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했다.


“어린것들이 제멋대로다.”


아버지의 눈엔 함부로 떠들고 시끄럽게 하는 손주들이 오륜 교육을 제대로 안 받은 무례한 놈들로 보이셨을 테다. 저 말씀 속엔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제 부모들에 대한 원망도 섞여있었다. 큰손자가 어느 정도 자라고 시골 가는 것을 꺼렸던 가장 큰 이유가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녀석은 어린 사촌동생들이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긴 것을 보고 낯선 느낌을 느꼈다고 했다. 그것까지 대를 이어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손주들을 봄 새싹에 비유하며 귀여운 모습에 대한 감정을 표출한 것만 봐도 손주들에 대한 애정은 여느 할아버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아들 손주에게 좀 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대할 순 없었을까. 그것이 돌아가시고 난 후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할머니만 계신 시골, 전에 없이 손주들 모두가 모여 활기를 띠는 모습이 그 아쉬움을 진하게 한다. 세대를 넘어 포용, 간직, 버림은 유연성 있게 조화되어야 우리 삶이 따뜻하지 않을까. 가정에 법(法)이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틈도 들어온다. 법이 빠져나간다 해도 커져버린 틈이 서로 메워지기에는 많은 시간이 든다. 언젠가 아들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빠, 아빠도 가만 보면 아빠 모습에서 할아버지가 보여요.”

“에이, 정말? 말도 안 돼!”

할아버지가 그러셨듯 아빠도 느끼지 못하고 보이지 않을 뿐이에요.”


나도 모르게 스며든 것들, 내게 아버지의 그런 면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역시 내 생각일 뿐이었고, 나 역시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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