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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Aug 01. 2022

환생한 고구마가 내게 욕을 해댔다.

고구마를 캐다


어렸을 때 쌀이 없어 하루 종일 고구마만 먹은 적이 있었다. 한 번은 급히 먹다 목에 걸려 죽을 뻔했다. 옆에 부모님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뻔했다.

자주 고구마를 주식으로 며칠 먹다 보니 질려버렸다. 쌀밥이 그렇게 그리웠고 왜 우리 집은 쌀이 없는지 화가 났다. 보리도 없었다. 어디서 훔쳐오기라도 하고 싶었다. 하소연을 했더니 다음날은 갑자기 쌀과 보리가 생겨 밥을 먹었다. 정말 반가웠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동네 대문 집(부잣집)에서 꿔 온 것이었다.


밥상. 어머니가 양을 적게 담아 주시면서 쌀보리가 귀하니 아껴서 먹으라고 했다. 밥공기로 절반도 안 되는 밥이었다. 그것을 두어 숟가락 먹으니 없어졌다. 아버지 밥은 고봉으로 담았는데 나는 너무 적게 담아 내 눈이 자꾸만 어머니를 바라보고 또 아버지 밥으로 갔다.

그렇다고 아버지는 내게 덜어줄 생각도 전혀 안 하셨다. 미동도 없는 아버지 얼굴을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인상도 별로 안 좋았다. 어머니가 내게 눈치를 주며 일을 하려면 밥을 든든하게 드셔야 한다고 목소리 톤이 조용하면서도 끝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 할머니가 나보다 적은 밥 한 숟갈을 내게 덜어주시려고 하자 아버지의 눈이 레이저 광선으로 불꽃이 튀었다. 그냥 앉아 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앞뒤 보지 않고 바로 일어섰다.


오랜만에 밥은 먹었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고구마를 뒤주에 쌓아놓은 작은 방으로 가서 생고구마를 배가 채워질 때까지 쥐처럼 갉아먹었다. 그나마 고구마가 내게 배를 채워주는 간식이었는데 이상하게 원수 같았다. 쳐다보기도 싫었다. 먹다가 한 개를 고구마 뒤주에 힘껏 던져버렸다. 심하게 으깨어진 고구마가 이리저리 튀었다. 어머니가 대문 집에 가서 머리 조아리며 쌀을 꿔 올 때 그 심정은 하나도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나는 그저 배가 고플 뿐이었고 고구마 아닌 밥, 밥을 먹어야 했다.

세월이 흘러 남아 돌아가는 쌀 때문인지 흔한 고구마 때문인지 그 시절 고구마의 추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늘은 날이 흐리다. 고구마를 캐자고 한다. 경운기에 쟁기를 싣고 박스와 마대 등을 얹어 밭으로 갔다. 안사람은 날씨가 가물어 심은 대로 발육이 못되었고, 뿌리 밖의 포기도 빗물이 들지 못해 빈 곳이 많고, 줄기도 길지 못하여 여인 댕기처럼 생겨 고구마가 7포대 밖에 안 나올 것이라고 한숨을 짓는다. 아들 다섯, 고모 2, 작은아버지 1, 총 8포대는 나와야 할 텐데 다 못주겠다고 야단이다. 나는 모자라 다 못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상관치 않고 쟁기를 끼워 고구마 줄기를 걷어 치운 골을 갈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고구마가 형태가 둥글고 포기 포기에 위로 붉은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총 10포대 정도가 되고 하자품 잔 것은 4포대 정도가 나왔다. 예상보다 많이 나와 흡족했다. 재미있게 채취했다. - 고구마를 캐다 2015.10.24



고구마.

세 글자만 들어도 질렸던 간식. 아니 시도 때도 없이 며칠 동안 주식으로 먹기도 했던 음식. 오늘은 아버지 일기장을 보며 그 시절이 생각나 그냥 눈물이 나왔다.

해마다 시골에서 햇고구마를 보내 주시면 그냥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받아먹었다. 모양이 붉고 통통하여 삶으면 속이 노랗게 익어, 마치 밤과 같아서 밤고구마라고도 했다. 늘 받아먹기만 했는데 이제야 고구마를 캐시는 두 분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같아 너무나 죄송했다. 내일은 홀로 계신 어머니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어머니는 가뭄 때문에 예상보다 적게 나올 것 같아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8포대는 나와야 아들, 고모 등 수량을 맞춰 보낼 수 있는데 7포대 밖에 안 나올 것 같아 노심초사하신 모습이 역력하다. 당신들의 것은 수량에도 넣지 않은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도대체 그렇게 고생해서 자식들, 동생들한테 다 주시기만 하다니 한편 화도 난다.

그래도 수확해 보니 10포대나 나왔고 하자가 있는 고구마도 4포나 나왔다고 좋아하신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시골 가면 상처 입은 고구마뿐이었다. 다 보내주고 남겨진 부모님 몫이었다. 가뭄에 흉작인 줄 알았는데 두 배나 수확이 된 것을 보고 흡족해하시는 허리 휜 두 분의 모습. 눈에 아프게 그려진다. 어쨌든 심한 가뭄이 왔고 날도 흐렸지만 해피 엔딩이다.


눈을 감았다. 오십 년의 세월이 1초도 안 걸려서 작은 방 뒤주로 달려갔다. 던져져 으깨어진 고구마가 갑자기 몸을 털털 털더니 벌떡 일어서서 입을 열어 말을 한다.


, 인마! 네가 뭐했다고  던지느냐? 네가  캐기라도 했단 말이냐? 너는  부모 마음이라도 한번 생각해 보았느냐? 쌀이 없어  같은 고구마라도 먹어야 했던  아픔을 너는 헤아리지도 못했단 말이냐?  캐는데 도와주기라도 했다면 고마워서 말도  하겠다. 네가 뭔데,  부모님이 한철 갈아 노심초사하면서 키워낸 난데  던져  xx! 너는 욕을 들어도 싸다. 나는 네가 던져 몸이 상했지만  몸보다  부모님  상한   맘이 아픈데 네가 뭔데  던져  xx! 입이  개라도  말이 없는 것이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던져.  말야,  부모를 던진 거야. 알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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