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단상
‘공감', '좋아요', '라이킷'의 개수를 확인하며, 어떤 소속감과 함께 혼자가 아님에 전율하는 한심한 본성을 나도 갖고 있다.
블로그 이야기다.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다 보니 블로그 친구들이 3천 명에 육박했다. 참 많은 사람들이다. 고맙고 감사하다. 하지만 며칠 전에 분석한 내 블로그 통계자료를 봤을 때, 서로이웃과 이웃을 포함한 방문자 수가 전체 월간 방문자 대비 약 13% 정도인 400여 명에 못 미치는 이웃들이 다녀간 것을 알 수 있다. 하루로 환산하면 평균 약 13명 정도다. 다시 점유율로 환산하면 하루 1%도 안 되는 0.4%다. 이웃이나 서로이웃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검색엔진을 이용해 유입되는 블친들 외의 블로그 밖 불특정 다수가 90%가 넘는다는 말이다.
어쨌든 일단 이웃이 많으니 '공감'을 누르는 숫자도 많아졌다. 물론 브런치에서도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공감은 누르지만 읽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이른바 '조회수'가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글들이 많다. 기능을 다 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브런치에서는 그것을 확인할 수가 없다. 물론, 그것은 글의 특성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그것 또한 글을 재미있고 흡인력 있게 쓰지 못하는 블로그 주인이 감수해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특히 '예의상' 방문을 품앗이 개념으로 하다 보니 그 많은 글들을 읽을 여력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절대 시간이 부족함을 자인한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갈망한다. 그곳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고 함께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되고 자신감을 얻는다. 마음을 쏟아 글을 썼는데 별로 공감을 해주지 않으면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리고 자꾸 화살이 자신에게로 향한다. '아,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가 보구나, 난 원래 블로그 체질이 아니야, 난 소질이 없어, 오죽하면 그냥 눌러주는 공감도 사람들이 해주지 않을까. 내가 주제를 잘못 잡았나 봐' 등등 자책하기에 바쁘다. 그러다 보면 더 글을 쓰지 않게 되고 블로그와 멀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가끔 블로그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브런치를 그만둔 이웃 작가들의 푸념도 들린다.
그리고는 난 원래 바쁜 사람이고 이런 블로그에 한가하게 들어와 남의 글이나 읽어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과 더불어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때부터 점점 관심이 없어지고 서서히 물아래로 잠수하게 된다. 반대로, 내 글에 공감 숫자가 늘어나고 댓글이 무수히 달리면 그때부터는 동기부여가 되고 자신감이 솟는다. '그래, 내가 원래 글 소질이 있어, 내 글이 사람들에게 흡인력이 있으니 이렇게 따라붙지 않겠어?, 내가 주제 파악을 잘하거든? 나는 작가의 기질이 있나 보다.'라고 스스로 자신을 인정해 준다.
사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성이다. 나는 그것을 '한심한 본성'이라고 말한다. 이건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글을 써놓고 글의 의미나 속뜻 그리고 글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깊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공감'이나 ‘좋아요’ ‘라이킷’이 몇 개인지, 댓글이 얼마나 달렸는지부터 눈길이 간다. 물론 그 숫자에 따라 글이 인기 있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브런치는 거의 '라이킷’ 수가 현저히 적다. 블로그와 브런치는 조금 다른 차이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과연 우리는 내 글 말고 다른 사람의 글을 얼마나 꼼꼼하게 읽을까.
물론, 추구하는 바가 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면 아무리 이웃이나 서로이웃이라도 글을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그게 그냥 블친이기 때문에 '예의상' 본문을 클릭하지 않고 공감을 누르는, 다녀갔다는 인사를 한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공감 수가 많다고 해서 자랑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어떤 분들은 아예 공지사항에 '글을 읽지 않으려면 공감도 누르지 마세요'라고 대놓고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소위 실망스럽다는 말이다. 뭣 때문에 글을 보지도 않으면서 공감을 누르냐는 항변이다.
결국 소속감이다. 우리는 혼자가 되기를 싫어한다. 누군가와 함께 공통의 주제를 이야기하며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연결이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할까. 다들 말한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그런 줄 알면서 SNS를 하는 것이라고. 사실 우리 같은 범인들 뿐만이 아닌 고상한 학식과 함께 정의감을 주장하는 훌륭한 교수도, 법을 집행하거나 또는 세상을 법이라는 잣대로 논리 정연하게 글을 쓰는 법률가도, 화려한 단어의 조합으로 문학적 소양을 힘껏 뽐내는 유명 작가도, 글보다 말이 앞서는 여의도 정치인도, 그 누구도 '공감'과 '좋아요'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은 거의 본성이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알면서도 은근히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은 그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그것을 나는 '한심한 본성'으로 이름 붙인 것이다. 어렵고 잘 안 되는 일이지만, 비록 그 공감 수가 적고 피드백이 잘 안 되는 글이라도 글쓴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함께 공유하는 연습을 계속해 보는 일은 어떨까. 물론 이웃수가 많아 그 많은 글들을 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도저히 할 수 없다면, 그렇다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계속 숫자만 바라보아야 할까. 하기야 그것의 많음이 즐거움을 준다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글은 내용이 공감으로 흘러야 하는데 반대로 공감이 내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면 과연 그것을 좋은 글이라 자부할 수 있을까. 음, 잘 모르겠다.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쨌든 가장 어려운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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