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또랑이를 그리며

by 태산박


빈자리


낙엽이 벤치 한쪽을 덮는다

내가 앉지 않은 자리를

누군가 앉았던 자리를

바람이 쓸고 간 뒤에도

낙엽은 그곳만 비워둔다


저녁이 오는 시간

아파트 모퉁이를 도는 발소리

나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짧은 그림자가 지나가고

나뭇잎만 바스락거린다


바람이 무엇을 가져왔는지

나는 묻지 않는다

다만 팔꿈치에 닿던 온기를

함께 걷던 아픈 보폭을

천천히 떠올릴 뿐


시간은 낙엽을 쌓고

나는 벤치에 앉아

저물어 가는 하늘을 본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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