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O야, 너 요즘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안하냐? 발제도 안하는 것 같고, 정보보고도 시원치 않고.. 회사 다니기 싫으니?”
B:“이 회사를 다니면서 제가 성장한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부장. 만날 기레기 소리 듣는 것도 자괴감 들구요.” “회사의 답정너 기사 쓰는 것도 이제는 힘드네요.”
A:“OO야, 너는 이 조직을 사랑하지 않니? 이 회사는 말이지, 내가 수많은 메이저 언론사에서 이직하라는 콜을 받았지만 가지 않고 청춘을 바친 회사란다.” “이 회사는 나를 장가도 보내줬고 집도 사게 해줬어. 데스크라는 간부자리에도 올려줬지.”
B:“그건 부장에게 해당하는 얘기지 저에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언론사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하고 기자라는 직종 자체가 어떤 식으로 변화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저희 때랑 부장이 원고지에 기사 쓰실 때랑은 상황이 완전 다른 것 아닌가요.”
“매일 계속되는 특집 협찬기사에 포럼 때마다 사람들 동원에 제가 기자인지 모객꾼인지 모르겠어요. 뭔가 지적인 만족을 느끼고 싶은데 회사는 디지털이다 지면이다 모두 다 열심히 하라고만 하고 전혀 보상도 없고 너무 답답하네요.” “기자를 관두고 싶은 생각이 점점 커지네요. 다른 언론사에 가면 좀 괜찮아질까요?”
A:“사실 나도 힘들다. 힘들어. 니네 월급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니? 결국 그런 행사랑 특집 기사에서 나오는 거 아니니. 너넨 젊지만 나는 이제 받아줄 회사도 없어.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너희들이 볼 때 악역 역할만 하는 거지. 나라고 니네 마음을 모르겠니?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단다.”
B:“......”
언론사 간부(데스크)와 기자의 가상대화이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기자는 청운의 꿈을 품고 언론사에 입사한다. 우리 사회의 아주 작은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과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하지만 입사 후 몇 개월이 지나게 되면 내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과 현실은 180도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팩트를 위해 선배와 대거리를 하고 부장과 고성을 내며 싸우는 멋진 기자의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나올 뿐이다.
매일 치이는 특집 기사와 협찬기사, 포럼 인력동원,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서 정작 지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취재를 하는 시간은 뒤로 밀리기 일쑤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기자들에게 모두 다 잘해야 한다고 푸시를 한다. “요즘 디지털 시대인 거 알지? 온라인 기사도 많이 쓰고, 특집 기사도 많이 쓰고, 포럼 동원도 많이 하고, 취재 발제하는 것도 잊지 마렴. 참 그리고 유튜브도 할 수 있으면 해봐. 요새다른 기자들도 많이 한다던데. 그리고 책도 많이 읽고 글로벌 시대인데 언어도 한두개씩은 할줄 알아야 기자 아니겠니.”
과장이 아니다. 회사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암묵적으로 왜 이런 기자가 되지 못하냐고 압박을 한다. 기자들은 외치고 싶다. ‘당신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있긴 있느냐고. 당신들은 그런 기자 생활을 과거에 했냐고.’
언론사에 있는 유일한 자원과 역량은 인적자원이다. 결국 기자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갖고 있는 자원이 우수해야 하며, 자원을 상향 평준화 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언론사에 입사한 초년병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전설처럼 흘러 내려오는 괴담이다. “너, 00선배와의 술자리는 반드시 피해야해. 알지?” 그러면서 00선배와의 술자리 피하는 법. 00선배의 눈 밖에 나지 않는 법을 비기처럼 체화한다. 상대적으로 좋은 학벌과 스펙을 겸비한 채 야심차게 언론사에 입사한 신입 기직원들은 견습이 끝나고 필드에 배치된지 얼마 안돼 ‘이건 내가 생각했던 기자의 삶이 아닌데’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언론사에 입사한 후 떠오른 의구심과 허망함이 회사를 다니는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