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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Jul 11. 2024

떨리는 운전 필기시험 후기

캘리포니아에 살기 위해 작은 산을 하나 넘었다 

7월 1일부터 출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캘리포니아 차량관리국(DMV)에 운전면허 시험 신청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청 페이지에서 내가 알 수 없는 에러가 계속되며 계속 로그인과 비밀번호 찾기가 계속됐고, 이 같은 일로 인해 하루 이틀의 시간이 소요됐다. 

가장 큰 난관은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예약(appointment)'을 하는 것에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은 집에서 가까운 할리우드에서 필기시험을 봤다는데, 내가 접속한 홈페이지에선 시험을 볼 수 있는 가까운 DMV는 집에서 35분 거리인 'Van Nus Boulevard'에 위치해 있었다. 계속 긴가민가 하면서 할리우드 DMV가 뜨길 기다렸다. 그렇게 지난주를 다 소비한 것 같다. 나는 결국 7월 10일인 오전 9시10분 'Van Nus Boulevard' 곳에서 필기시험을 보기로 예약했다. 우버를 타면 편도로만 38달러나 드는 엄청난 거리였다. 가장 큰 문제는 집안일로 바쁜 와이프를 대신해 내가 대신 와이프의 필기시험 일정을 잡았는데 7월 10일은 예약이 꽉 차버리고 7월 11일 09시로 밖에 예약이 잡히지 않았다. 아뿔싸. 부부가 왕복 약 20만원을 길에서 소비하게 됐다. 원래는 지인이 운전면허 시험장까지 태워주기로 했었지만, 이번달부터 아침에 우리 아이들을 서머 잉글리시 캠프로 태워다주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일요일부터 본격적인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교재는 캘리포니아로 이사오는 분들에게 바이블 영상이라는 https://www.youtube.com/watch?v=Ad_mwSevOJ0&t=7266s 이 영상을 봤다. 

하지만 영어를 한글로 직역해 표현이 애매한데다 용어와 수치 자체가 잘 외워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결론은 반복해서 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영상 분량이 2시간50분에 달했기 때문에, 속도를 1.75 배속으로 올리고 계속해서 봤다. 하루에 2번씩은 못 보고 하루에 한번씩 보는 것에 만족했던 것 같다. 전체 분량 중에서 겹치는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한 번만 보는 걸로 최대한 머리에 집어 넣으려고 노력했다. 시험을 보기 전날에는 라디오 코리아 홈페이지에 있는 캘리포니아 시험 예상문제를 풀면서 모르는 부분을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https://www.radiokorea.com/uslife/dmv_written_test.php   


드디어 결전의 날(7월 10일)이 밝았다. 긴장을 잔뜩한 나는 6시부터 계속 20분 단위로 깨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한번이라도 더 복습해야 하는 거 아냐?'와 '할만큼 했다. 이제는 운명에 맡기자'라는 생각이 부딪쳤다. 결국 나는 모든 결과를 운명에 맡기기로 하고 세수를 했다. 7시 40분에 집앞으로 우버를 불렀고, 우버는 프리웨이를 타고 한참이나 서북쪽으로 달렸다. LA로 이사온지 2주 밖에 안 된 나는 내가 모든 광경과 지리가 처음 보는 것이지만, 우버 안에서 바라본 광경은 너무 너무도 생소했다. 내린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Van Nus'에 위치한 DMV에 도착했다. 이미 DMV 건물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DMV 내 안전 및 질서를 관리하는 직원에게 예약자는 어디에 줄을 서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너 몇 시에 예약 잡았어?"라고 물었고, 나는 "9시10분."이라고 답했다. 당시 내가 도착한 시간은 8시30분 언저리였다. 그는 내게 "아직 예약시간 되려면 멀었어. 줄 서지 말고 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어."라고 말했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이곳 DMV의 직원 상당수가 LA다저스 저지를 입고 있었다. 

9시경이 됐다. 다른 사람들이 예약자 줄에 줄을 서자 나는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예약한 시간에 1분이라도 늦을 경우 이 모든 프로젝트가 한번에 무너지는 건 아닌지 노파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와서 하나만 삐긋하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체험을 하나 둘씩 하고 있어서 그런 위기감이 들었던 것 같다. 창구 직원은 내게 예약 번호를 물으며 "전산 화면에 F006이 뜨면 가서 서류 진행하세요"라고 말했다. 절차가 하나 둘씩 진행될수록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필기시험을 보기 위한 절차의 일환으로 서 있고 기다리기를 반복하면서 '제발 머릿속의 정보들이 날아가지 않았으면'하는 간절함도 생겼다. 몇 분을 기다렸을까. 'F006'은 00번 창구로 가라는 방송이 흘러 나왔고, 나는 직원에게 여권과 비자, 모기지 정보, 인터넷 결제 내역 등 내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서류를 제출했다. 그리고 필기시험 비용 45달러를 카드로 결제했다. 

그리곤 바로 옆옆 창구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후 31번 창구인 필기시험장으로 향했다. 떨림이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편도 38달러면 왕복이면 76달러다. 이미 45달러의 필기시험 비용도 치렀다. 지금 나는 무려 121달러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필기 시험을 오늘 3번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오(체면)가 있지 않은가. '만일 3번 다 떨어지면 진짜 어쩌지?' 별에 별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45달러를 결제한 서류를 직원에게 내밀었고, 직원은 00번으로 가서 서서 문제를 풀라고 말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칸막이마다 서서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나는 시험을 치기 위해 엄지 손가락 지문을 찍어야 했다. 언어 설정을 한국어로 설정하고 시험을 봤다. 시험은 내가 정답을 선택하면 곧바로 다음 문제로 넘어가고, 오답을 택하면 곧바로 답을 알려줬다. 그래서 틀린 답을 누를 때마다 긴장감은 고조됐다. 점점 오답 숫자가 늘어나면서 '아, 1차 시험을 떨어졌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참담한 심정으로 계속 문제를 풀어나갔는데 갑자기 맨 위에 굵은 글씨로 시험에 통과했다는 굵은 검은색 글씨가 떴다. 너무 기뻤다. 아마 한 문제만 더 틀렸으면 나는 불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표지판 시험이라는 추가 시험이 있었다. 사실 규정과 제한속도 등 복잡한 내용을 외워야 하는 필기시험이 어렵지, 표지판 고르기는 식은 죽 먹기(piece of cake)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단번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직원은 내게 서류를 내밀며 "동승자가 있을 경우에는 운전을 할 수 있다"며 "Congratulations!!"라고 말했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미국으로 온 후 내내 가슴 한 켠에 무거운 돌처럼 느껴졌던 절차가 바로 운전면허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운전을 24년 이나 했는데 운전면허 시험을 또 봐야 한다고?' 나는 미국에 오기 직전 경찰서에서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았다. 지난주 7월 4일 독립기념일에는 이 면허증을 이용해 렌트카를 빌리기도 했다. 물론 나라마다 운전법규가 다를 수밖에 없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국제운전면허증은 되는데 운전면허를 또 따야한다고? 그냥 돈을 더 내고 운전면허증에 대한 퍼미션만 주면 안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날 필기시험 통과로 캘리포니아에서 운전을 하기 위한 모든 절차가 끝난 것도 아니다. 운전면허증 취득이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몇 년간 미국에 살기 위해 온 사람으로서 작은 문턱 하나를 넘었다는 것에 기쁜 것도 사실이다. 운전면허 실기 비용이 그렇게 비싸다는데.. 하.. 초기 정착을 위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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