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었더라면...
'미국 생활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지 않는 것들'의 마지막 시리즈로 이번에는 생활 관련한 이야기이다. 지난 1편에서 살인적인 월세와 세금 등을 주로 다루어서 미국 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미리 알려줬다면, 이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살만한' 요인들을 다루는 글이 될 것 같다.
앞서 2편에서 연말 정산을 각자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마도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전 글에서 알아챘겠지만, 미국에서 대부분의 일들은 DIY(Do It Yourself)이다. 홈디포(Home Depot)이라는 큰 창고형 매장이 미국의 DIY 문화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이다. 집의 인테리어, 익스테리어를 꾸미고 공사하는데 필요한 모든 도구와 정보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곳인데, 작게는 수도꼭지부터 크게는 지붕 수리를 위한 다양한 소재 및 도구 등 모든 게 구비되어 있지만- 단 하나 염두해둬야 할 것은 이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왠만한 배송 서비스도 무료(사실은 무료라기보다는 제품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형태)이고, 공사를 하는 것도 개인이 하기보다는 전문 업체를 통해서 시공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인건비가 비싸서인지 이렇게 DIY 해야 하는 영역이 많이 있다. 아무래도 한국보다 퇴근이 빠르고 주말에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주로 남자들이 이런저런 일들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수도요금, 전기요금을 납부하기 위한 계정 세팅, 인터넷 설치, 자동차 번호 신청 및 번호판 교체, 운전면허 취득을 위한 도로주행 시험 시 본인이 직접 시험볼 때 사용할 자동차를 가져가야 하는 등,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처음에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별생각 없이 깜빡하고 놓치는 것들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세세하게 번거로울 것 같지만 사실하다 보면 오히려 내 생활을 내가 주도적으로 꾸려나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물론 여러 진보된 IT 기술 덕분에 맘 편하게 이용하는 서비스들도 있지만, 사람 손을 직접 거치게 하고 그것에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문화는 겪어볼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안 그래도 나름 꼼꼼했던 성격이라 자부했었는데 더욱 세심하게 챙기고 잔소리가 느는 것 같다.
요즘은 환경오염이 워낙 심해서 먹거리 쇼핑을 할 때 특별히 질 좋은 물건들을 찾게 된다. 제품 포장지에 '오가닉'이라고 쓰여있고 관련한 공인 인증 마크가 있다면 안심하고 장바구니에 담았었는데 물건 가격을 보면 또 그리 안심할만하지는 않았던 게 한국에서의 경험이었다. 이곳에서는 천조국의 스케일답게 식재료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저렴하다. 오가닉 제품이라 해도 한국의 일반적인 식재료보다 저렴하다고 보면 된다.
오가닉 제품을 주로 다루는 마트들은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대표적으로 홀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과 트레이더 조(Trader Joe's)가 있다. 이 두 곳의 제품은 다른 마트(코스트코, 세이프웨이 등)에 비해서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한국보다는 훨씬 저렴), 물건의 질이 워낙 좋아서 손님들 중에는 매니아 층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내 경우에도 쥬스와 유제품 만큼은 꼭 트레이더조에서 구입을 하게 되고, 과일, 커피, 간식 및 샴푸, 로션 등은 홀푸드 마켓에서 구입을 한다. 나는 한번 구입했던 제품들이 좋아서 다시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워낙 좋은 제품들이 다양하게 있으니 가능하면 늘 새로운 물건을 경험해보는 것을 선호한다. 나중에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가장 그리울 곳이 다름 아닌 오가닉 제품들을 파는 마트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친환경적인 제품을 구입하고 싶어도 한국에서는 어느 회사의 제품이 좋은지 나쁜지 명확하게 정보를 소개해주는 곳이 없어서 개인 블로그나 제품 리뷰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여러 경로로 어느 제품이 친환경적인지 아닌지 관련한 정보를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내가 자주 방문하는 곳은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라는 비영리 단체인데, 유아용품, 화장품, 욕실용품, 식재료 등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친환경적인 제품으로 인증받게 되면 'EWG Verified'라는 명예로운 레이블을 받게 된다. 미국에는 제품에 관해 거짓 정보로 선전 및 홍보를 하다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제품이라고 하면 일단 어느 정도 이상은 신뢰를 할 수 있다. 한국에도 이렇게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가 생겼으면 한다.
미국에 살면서 초반에 가장 그리웠던 서비스 중에 하나가 밤늦게 시켜먹는 배달음식이었는데, 이제는 미국에서도 비슷한(혹은 더 월등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우버잇(UBER EATS)이나 아마존 레스토랑(Amazon Restaurant) 서비스는 이제 집 앞까지 음식을 배달해준다. 단순히 음식 배달뿐 아니라 음식의 진행 상황, 배달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이만하면 배달음식은 더 이상 한국만의 전유물은 아닌 셈이다. (물론 한국 배달 음식의 퀄리티는 또 다른 넘사벽이긴 하다) 한국의 배달 음식과는 조금 개념이 다른데- 한국은 음식을 판매하는 업자가 배달을 하는 시스템이라면, 이곳은 음식을 판매하는 업자가 UBER(혹은 다른 배송 업체)를 통해서 음식을 배달한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업자 측면에서는 배달을 위해 따로 많은 자본금을 투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소자본의 음식점에서도 배달이 가능하다. UBER같은 배달 업체의 입장에서는 손님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택시들을 놀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서로 윈윈(Win-Win)하는 전략이다.
음식을 배달시키는 서비스 이외에 신선한 식재료를 배달시키는 서비스도 도입되었다. 인스타 카트(Instacart)아마존 프레시(Amazon Fresh)를 통해서 위에 설명한 다양한 오가닉 제품들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이쯤 되면 아마존은 정말 세상을 지배할 셈인가 보다). '온라인 식재료를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것이 뭐 그리 큰 대수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 빠르고 정확한 배송이 이루어지게 된 것도 아마존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금방 상하기 쉬운 식재료까지 아마존을 통해서 구입을 할 수 있으니 큰 혁신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이마트(E-mart) 온라인 쇼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다른 스토어에 있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마트마다 입점해있는 상품이 대체로 비슷한 편인데, 이 곳에서는 마트마다 입점해있는 제품들이 다른 경우가 많다 보니 온라인 쇼핑 시에 다양한 제품을 한꺼번에 구매할 수 있는 것은 큰 매력이다.
이외에 아마존 대쉬(Amazon Dash)라는 간단한 쇼핑 디바이스가 있는데, 자주 구매하는 소비재에 한해서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재구매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새 제품이 집으로 배송되는 시스템이다. 온갖 물류를 장악한 아마존이니까 가능한 거만한 서비스인 듯한데 의외로 주변에 사용하는 친구들이 좀 있는데 꽤 편하다고 한다.
s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