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의 기록
31번 확진자로 인하여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던 바이러스. 그 덕에 지난 3, 4월 전국의 공연장들은 대부분 자체적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연주자에게 공연취소를 통보하거나, 공연 취소를 원하는 연주자에게 대관료 전액환불 조치를 취하였다. 공연계는 전례 없이 얼어붙었고, 연주자들은 한꺼번에 설 자리를 잃었다. 이렇게 될 거라는 마음의 준비도 없었거니와,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 불안함이 한없이 막연하여 음악계는 그야말로 어리둥절한 시기를 보냈고, 여전히 보내는 중이다.
마냥 어리둥절한 채로 있을 수만은 없었던 예술인들은 이 재난을 딛고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고자 조심스레 크고 작은 발걸음을 내딛어 보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지난 4월말 독일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DG)이 운영하는 ‘DG 프리미엄’을 통해 무관중 온라인 실시간 콘서트를 개최하여 전 세계 48000명의 실시간 관중을 불러 모았다. 광주시향은 오랜 재택근무 끝에 소규모 실내악 구성으로 실시간 온라인 공연 송출을 시작했다. 첫 공연은 끊김 현상이 심하여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아쉬움이 컸지만, 점차 기술적인 면을 보완하며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가는 중이다.
미래 음악인을 길러내는 전 세계의 모든 음악 관련 학과는 공연예술계보다도 어찌 보면 더한 고난을 격은 바 있다. 실기 수업 교수자들은 학생의 소리를 조금이라도 원음에 가깝게 들어보고자 Zoom, Skype, Facetime, Google Meet 등 여러 플랫폼을 방랑하고 최적의 마이크와 스피커 검색에 매달렸다. 페달이라도 한번 밟는 순간 굉음으로 변하여 전달되는 학생들의 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나면 ‘실시간 기계음 발’ 두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고 만다. 필자 또한 기기가 전하는 소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수업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투자하여 학생과 서로 녹화본을 주고 받으며 실기 수업을 이끌어 왔다. 더디지만 애써 성장하는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교육계도 이렇게 나름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이렇게 방법을 찾고는 있다.
처음 시도한 온라인 송출 공연에서 관객을 맞이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이제는 다음 공연 때는 정장 입고 접속해 달라는 농담을 한다. 두통약 한 알로 도저히 해결이 안 되던 온라인 실기수업은 각자 최선의 플랫폼을 찾고, 유튜브 녹화 영상과 악보 사진들을 빠르게 토스하며 한결 여유로워졌다.
적응을 강요받아 적응해 온 지난 3개월 동안, 원거리에서 접촉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풍성함을 누구나 깨달았고, 구축된 스마트 환경을 그야말로 스마트하게 이용한다면 결과는 상상 이상일 수 있다는 것도 이미 경험했다.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은 필드 또한 수없이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억지로 시작된 뉴노멀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앞서나갈 것인가는 많은 이들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겪은 후 오히려 침착하게 다가오는 것은 세상에는 스마트나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에 대한 또렷한 인지. 이 또한 억지로 깨달았으나 이보다 격하게 배울 수는 없었으니.
조성진의 관중 48000명은 공연을 지켜보는 내내 화면 속에 들어가고 싶었고, 무관중 공연을 하는 연주자들은 텅 빈 객석을 보며 하루 빨리 관객을 만나 연주가 완성될 날을 소망한다.
얼마 전부터 실기 대면 수업을 재개한 학생들을 하나하나 맞으며, 비닐막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하는 수업일지라도 그들이 내는 소리의 대체 불가함을 재차 확인하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예정되었던 공연이 이태원 사태로 결국 취소되었다는 공연 주최측의 회의 결과를 전해 받은 날, 다듬고 다듬어 나누고 싶었던 수많은 음들을 내려놓으면서도 담담히 견고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인 듯하다.
이 불안하고 지루한 시간의 대가가 미래시대 대비에 조급하게 치중되지 않도록, 본질에 등 돌리지 않도록, 대체불가 영역의 자각과 인정이라는 균형을 가지고 맞물려 주기를 지난한 인내심으로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