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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 J Feb 10. 2024

국화꽃으로 할 수 있는 실수

결혼식 하객일 때는 흰옷을 피하고 장례식 조문객일 때는 검은 옷을 입는 것처럼, 식이나 행사에는  어떤 규칙이 있다. 드레스코드 정도는 난이도가 쉬운 편이지만, 이런 식들에는 치러 보기 전에는 모르는 ‘세부사항’이 있기 마련이다.

결혼식을 좀 해보려는데, 막상 신부 입장을 하려니 내 위치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부터 모르겠다.

금이 뭔지도 모르는 아기들 잔치에도 백일에는 반 돈 금반지, 돌에는 한 돈 금반지, 그런 게 있다.

그냥 입으면 되는 줄 알았던 졸업식 가운은 학위마다 배색이 달랐다.

나에게는 이 세부사항이 가장 어려웠던 식이 장례식 아니었나 싶다.  


대학 3학년 때 다녀온 생애 첫 조문에서, 영정사진에 잠시 고개를 숙인 후 상주께는 인사도 없이 그대로 돌아 나오는 실수를 했다. 진심으로 상주의 슬픔을 위로드리고 싶어 늦은 밤 멀리까지 찾아간 거였는데, 내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봐 죄송하고 속상했던 기억이다.


두 번째로 참석한 장례식은 그로부터 10여 년 후, 지인의 시모상이었다.

한번 실수해 본 경력이 있으니 두 번째에는 별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래도 도착 후 황급히 다른 이들의 조문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람들 하는 것이 뭔가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꽃을 만지고, 어떤 사람은 향을 만진다. 또 누구는 절을 하고 누구는 영정사진에 인사 후 묵념을 한다.

나는 절과 묵념 중 묵념으로 결정하고 들어갔다.  꽃과 향 중에서도 하나를 고르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왜 그 결정을 미루고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다.


영정사진 앞에 서니 일단 세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제단 위  분향향로와 옆으로 누워있는 국화꽃 더미.

그리고 왼쪽 옆 바닥에 국화꽃 항아리.

한 번도 뵌 적 없는 고인을 위해 급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분향은 복잡해 보인다. 꽃으로 가자.

그런데 막상 움직이려니, 합해서 네 개 있는 팔 다리 중 어느 것이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아 멈칫했다. 그러더니 그것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옆에 있는 국화항아리에서 한송이를 뽑아 제단에 올려놓으면 되는 그 당연하고 간단한 것을, 제단에 있는 국화 더미 중 한송이를 골라 빽빽한 국화항아리 속에 힘겹게 꽂아 넣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지인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상심이 크시지요'


나오는데 등골이 서늘하게 찜찜하다. 내가 얼마나 어리숙한지 이미 알고 계신 분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설명을 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수없는 상상 이불킥을 날렸다. 행위예술 같은 국화꽃 항아리 복귀식 시전 후 침착했던 나의 대사, ‘상심이 크시지요’를 생각할수록 상심이 커져갔다.

상주에게, 내 뒤에 서있던 조문객에게, 국화꽃을 피우려고 봄부터 울었을 소쩍새에게마저 민망하다.


업무로 복귀한 상주를 다시 마주친 날,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제가 조문을 몇 번 해보지 않아  큰 실수 했습니다. 용서하세요’.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자세히 나의 실수를 복기해 줘야 하는지 조금 애매해졌다.

다행인가?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남들은 어떻게 이미 다 알고 있을까 항상 궁금해하며 산다.

나는 아직도 장례식에 갈 때마다 약간의 무대공포증 같은 것을 느낀다.

다만, 앞으로는 장례식 국화 옆에서 어떤 실수도 없을 것이다. 그걸로 할 수 있는 더 이상의 실수는 찾을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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