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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 J Aug 01. 2022

마음 아프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선생의 기록 2 - 2019년의 JH

학생 중 정말로 예쁘게 말하는 남학생이 있다. 미사여구를 구사하는 게 아니라, 들으면 안심되는 언어가 진심에서 나오는 그런 학생. 동기든 선후배든,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누구와도 잘 지내는 것 같고, 젠틀하고 배려 깊은 어투와 제스추어가 누구 눈에도 예뻐, 어디에도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학생. 따뜻하게 말하기 대회가 있다면 수상이 확실시 된다.


뭐든 열심히 하는 이 학생이 오늘 레슨을 드물게 엉망으로 가져왔다. 연습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나, 네 사정에 조금도 상관없이 다가오는 연주는 어떡할 건지, 학생들 사이 ‘조근조근 팩폭스타일’이라 불린다는 나의 화법으로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구석구석 알려주었다.

연휴에 쉬지 않고 무조건 해내겠다며 나갔던 학생이 잠시 뒤 다시 들어온다. 마카롱 하나를 건네며 당충전 하시란다. ‘고맙지만 이건 받을 수 없..’ 이라고 말하려다 보니, 학생 얼굴이 젖어있다. 울었나? 세수한건가? 내가 그래도 이제까지 남학생 울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오늘인가.

왜 연습할 수 없었는지 이미 다 들은 얘기지만 디테일과 함께 한번 더 반복하기에 한번 더 들어주고 보냈다.


퇴근하는데 울리는 카톡.

“교수님. 심각한 상황이지만, 믿어주시고, 걱정마시고, 염려마세요. 실망하셨을 텐데 제가 최선을 다할 테니 힘내세요. 마음 아프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울기는 네가 울었는데 마음 아프게 해드려 죄송하다니. 실망하셨을 텐데 힘내라니. 그게 이 학생의 진심인 걸 너무 알아서 나는 또 한번 배운다. 선생인지라 해야 할 말을 했을 뿐,  나는 한번도 너에게 실망한 적 없고, 너의 연주는 당연히 아름다울 거라는 걸 이미 안다.


선생 14년차, 한해 한해 벌어지는 세대차를 감당할  없게 된지 오래. 본인에게는 크겠으나 세상에 나오면 작디 작은 재능이나 능력을 맹신하는 학생보다, 세상 잣대를 치우고 계산없이 마음을 다하는 학생들에게 선생으로서의 기대와 바람이 훨씬  커져간다.


지치고 길었던 오늘.

나이들수록 어려워져 가는, 순수하게 마음을 말하는 법을 또 한번 배운 것이 유일한 하루의 기쁨이었다.

나는 이 학생이 눈부시게 빛나게 성장하길 바란다.

학생에게 배운대로, 네가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고, 세상이 곧 너를 알아봐주면 좋겠다고, 다음 수업에 잊지 않고 말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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