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기록 3 - 2021년의 SJ
<알렉산더 대왕이 무도회를 열었다. 그 무도회에서 제시카와 제이미는 알렉산더 대왕을 차지하고자 서로 춤을 추며 유혹을 시도한다. 그러나 결국은 알렉산더 대왕이 왕이 되기 전에 사랑했던 크리스티나가 무도회장에 나타나 격정적인 춤을 추며 알렉산더 대왕을 차지한다>
뒷 이야기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이 스토리는, 내 학생이 일주일간 고민하여 창작해 온 어떤 곡의 스토리 메이킹 과제이다.
믿고 싶지 않더라도,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Mozart K.466 D minor concerto 1악장의 발전부였다.
아.. 너의 곡에 대한 이해가 안드로메다로 간 지 오래구나, 내가 제시부를 잘못 가르쳤나 보구나, 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발전부에 무도회가 웬 말이냐 라는 상념이 들 법도 하지만, 나는 꽤 노련하게 -후훗- 그런 상념들을 떨쳐내고 내가 과제를 낸 목적을 상기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 학생은 그 일주일 내내, 풀리지 않는 발전부에 대해 어떤 스토리를 대입해 볼 것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한 번에 핵심을 짚지 못했으나, 핵심으로 가기 위해 탐색 중인 건 맞다. 탐색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D minor로 돌아가기 위한 유랑, 그 의도된 방황을 언젠가는 이해할 것이다.
나는 항상 소나타 제시부보다 소나타 발전부를 가르칠 때가 훨씬 난감하다. 계속 조성을 바꾸어 한참을 동형진행인데 그 화성감을 어차피 딱 떨어지게 공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정답 없는 상황이 주는 자유보다, 정답이 없어 거쳐야 하는 치열한 사색의 과정이 제시부보다 훨씬 더 고단하다. 학생들에게 발전부가 제시부로 돌아가려고 풀어놓는 서사를 알게 하고자 하는 수고를 하고 나면 가끔 나의 언어와 체력이 바닥날 때가 있다. 나도 모르는 걸 미친 듯이 가르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질문이 뒤통수에 큰 물음표로 떠오르기도 한다.
연주가가 아닌 음악교사가 되기를 꿈꾸는 이 아이는, 이번 학기에 이 콘체르토를 마치고 나면, 졸업 후 다시는 모차르트 콘체르토를 손에 대보지 않은 채 40년 교직생활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 이 곡을 누군가에게 가르쳐볼 기회 또는 필요가 영영 없을 수 있다. 그럼 이 아이는 알렉산더 대왕과 뒤엉킨 이 고군분투를 왜 하는가?
음악은 의미 파악이다. 지금 매 학기 주어진 작품들을 통해 ‘음악이 너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이라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음악의 본질을 전하지 못하고 음악시간을 자율학습 시간에 기꺼이 내놓는 책임 없는 교사가 될 수도 있다. 나는 항상 그런 두려움이 있다.
전 국민이 12년 음악교육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명한 연주자의 화려한 연주가 아니면 찾지 않고, 그것조차 자기 과시를 위한 호사 정도로 여긴다. 음악은 계속 음악인들 사이에서만 소비되고, 있는 사람들의 고급문화 정도로 인식되는 현실을 끊임없이 마주한다. 이러한 결과에 일조하는 음악교사를 양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수업시간에 전투력으로 비축된다.
나는 그래서 그날도 무도회를 휘젓는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시간은 좀 걸리겠으나, 이 학생은 곧 알렉산더를 스스로 퇴장시키고 발전부를 이해한 후 전체 콘체르토를 멋지게 빚어낼 것이다. 그럴 거라고 처음부터 믿고 있던 학생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떠난 후에도 고군분투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안착할 것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 간단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다만 그 여정에 같이 뛰어들어 주는 것, 그것이 기꺼이 하고 있는 내 일, 내 제한된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