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익 May 04. 2018

알람

나에게 제 1의 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 없이 대답 할 수 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일도 무사하게 내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거짓부렁 하나 없이 제1의 내 소원은 이러하다. 부자도 좋고, 성공도 좋지만 정말로 무사히 온전한 내일을 맞이 할 수 있는게 가장 큰 행운이자 감사다. 


때되면 일어나고, 때되면 밥먹고, 때되면 하루를 마무리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선조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24시간 안에서 때되면 해야할 일을 응당 했다. 지구 공전에 맞추어 더위와 추위를 맞이하였고, 지구 자전에 맞추어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며 하루 일과를 꾸려나갔다. 그야말로 자연의 섭리가 삶의 흐름 그 자체였기에 시간의 강박을 받는 다는 느낌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전에는 휴대폰을 충천해야 한다. 내가 자는 사이에 휴대폰이 꺼져버리면 안된다. 휴대폰이 꺼지면 매일 아침 5시30분에 맞춰진 알람이 울리지 않을 것이다. 알람이 울리지 않으면 난 끔찍한 결과를 맞이 할 수 도있다. 관계도 복잡해지고, 지켜야 할 것들도 많아져서 약속도 덩달아 많아졌다. 한번에 두어가지 하기 힘들기 때문에, 일정관리를 하고 특히나 중요한 사항은 알람을 맞춰서 내 기억력 부족을 채운다. 그 중 가장 중요한건 아무래도 기상알람이 아닌가 싶다. 


늘어지게 잔다는건 나에겐 게으름이 아니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이불속에 웅크려 있는건 늘어지게 자는게 아니다. 늘어지게 잔다는건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잠이 와서 눈을 감고, 충분한 잠을 잤기 때문에 눈을 뜨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어떤 인위나 방해 없이 내 몸이 다시 작동하는 것과 동시에 아침을 맞이하는것. 그것이야말로 늘어지게 자는 것이다. 


늘어지게 자는건 아직 내겐 부담이다. 부담이며 죄악이다. 경험이 축척되지 않아, 늘어지게 맘편히 잤다가는 다음날 어떤 사태를 맞이할 지 모른다. 그렇기에 항상 잠들기 전에 의식적인 긴장을 하고, 알람소리에 촉각을 세우며 잠자리에 들곤한다. 내 몸이 쉬고 싶을때 쉬고, 충분할때 깨어나기 보다는 내 뇌가 그 역할을 먼저하는 꼴이다. 오년, 십년, 십오년, 이십오년이 지나면 나도 '한살 두살 먹어가니 아침잠이 없어졌어' 라고 말을 하겠지. 그렇게 생각으로 만들어온 생체리듬을 당연시 여기며 원래부터 그랬던 것마냥 지낼 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잠이 오지 않으면 잠자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일찍자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잠이오지 않아도 '자야한다'라는 강박이 없다. 하지만, 많은 어른들은 다르다. 잠이 오지 않아도 자야할 시간이기에 잠을 청한다. 본능적인 생리보다는 만들어가는 습관으로 몸을 변화시킨다. 신기하게도 그 변화는 실제로 몸에 체화된다. 정말로 몸이 바뀌는 것인지, 몸을 조정하는것인지는 알길이 없다. 어쨋든 그렇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패턴은 만들어 진다. 


알람은 각자 시간패턴에 따른 몸을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보조기구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알람을 통해서 삶을 통제한다. 알람이 있기에 그래도 조금은 부담과 긴장을 놓을 수 있는것일까? 알람이라는 마지노선이 있기때문에 알람 직전까지는 평온함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일까. 여간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알람이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쯤되면 내가 알람을 통제하는 것인지, 시계속 알람이 나를 이끌어 가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나의 가장 큰 소망은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일도 무사히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를 더 이야기 할 기회를 준다고 하면 이렇게 이야기 하겠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이 내일 그 어떤 방해도 없이 평온하고 자연스럽게 밝은 아침을 맞이하는 것' 이라고. 


작가의 이전글 삶의 무게를 눈꺼풀로 짓이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