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살아지는 걸까. 뭐가 됐든 흘러가는게 삶이라는건 공통된 점이 아닌가 싶다. 시간과 세월앞에 점점 순응해 가는게 삶이라면 우리는 어쩌면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은 없지만 단 하나 확실한건 있다. 결코 삶은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력이 많든, 좋은 사람을 만나든 언제나 굴곡이 있기 마련이고 내 삶이지만 내 마음대로 마냥 되지가 않는다. 그래서 슬프고 아프고 그리고 다시 더할나위 없이 행복해지고를 반복하는 것 같다.
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삶이지만 순간의 선택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신중하다면 불행은 줄이고 행복은 늘릴 수 있다. 다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오롯이 나만의 선택으로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모님의 선택이 자녀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배우자의 선택에 내 삶이 변하기도 한다. 이토록 복잡한 삶을 행복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는건 어찌보면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것 같기도 하다
다시금 첫번째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삶은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살아지는 걸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김약국의 딸들을 보면서 느낀 인생이란 결국 생명력 그 자체이고 이는 살아짐이 아닌 살아감이라고 생각했다. 작중 인물들이 닥친 불행의 결말 또한 살아짐에 대항하고 내 삶을 살아가고자 하다보니 생겨버린 결과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못해서,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해서, 아니면 사랑하지 않는 서방님 일지라도 찾아나서서 죽음에 다다른 이야기까지. 결국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던 모습들이었다.
나는 김약국 집안의 몰락을 통해서 오히려 강한 삶의 기운을 느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고 분노에 차 오를때가 있었지만 결국 살아가려는 가족들의 모습이라는 점에 좀 더 집중했다. 다섯 딸을 누구못지 않게 사랑으로 키웠다고 생각한 한실댁의 모습은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장 잘 느끼게 해주었다. 자녀들의 불행한 모습을 보면서도 한걸음씩 걸어가는 한실댁을 보노라니 연민과 함께 응원의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위화의 '인생' 이라는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었다. 읽고 또 새김질 하고, 다시 자리에 누우면 새김질하고 그렇게 산다는건 정말 어떤 것일까로 전전긍긍 하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 그 때 했던 질문도 매 한가지였다. '살아지는 건가, 살아가는 건가' 그때도 나는 '살아가는 거다' 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던 것 같다.
내 뜻대로 안되는게 되는것 보다 많다는걸 점점 느낀다. 그럼에도 열심히 지내야지 하고 마음을 먹게되는건 별다른 포부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삶은 이렇게 살아가는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영차 이영차 한발 내 딛어 보는거다. 이 길의 끝에 뭐가 있을지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든간에 살아간다 는 건 변함없는 가치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을 테니깐.
좋은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여러명의 삶을 동시에 체험하는 기분이 들곤한다. 내가 미처 가지 못했던 길을 그 속에서 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각자 삶의 방식과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인생이란 큰 틀에서 걸어가는건 동일하지 않을까. 생활이 무료하거나 지치거나 다 포기하고 싶을정도로 힘들때 나는 김약국의 딸들을 한번씩 펼쳐본다. 마치 통영 앞바다에 일렁이는 파도가 내 앞에서 부서지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혼자 괜히 살아가는 것에 대한 조금의 용기를 얻는다. 또 한번 삶이 힘에 부칠때 난 또 김약국의 딸들을 찾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