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앞동네에 살던 친구의 연주회를 다녀왔다.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니 참 놀라웠다.
저만큼 하기 위해서 수십년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으며, 지금도 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왠지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프로중의 프로의 무대를 보고 있노라니
음악에 조예가 없는 나도 감동을 느끼고, 경이로운 생각이 들었다.
건반위를 한치의 오차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손가락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혼을 담아서 연주하는 모습에서
내가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닌,
좀 더 고차원의 표현임이 단번에 느껴졌다.
전달 하고자 하는 바도 있었겠고
작곡가의 생애와 고뇌를 이입하기도 했었을거며
소위 '곡 해석'이라는 부분에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담아내는 과정이기도 했을거다.
음표에 따른 위치를 찾아서 건반을 누르면 음악이 만들어지는 거라는 수준의 나에게는
하나하나 손짓과 몸짓과 표정들이 환호의 대상이었다.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숨죽여 기침까지 참아내면서 연주자의 표정과 손짓을 주시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귀로 듣는 사람도 있었고,
눈을 부릅뜨고 건반위를 거니는 손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 감상을 했든지 간에 마음속에 남는 연주가 아니었을까 싶다.
각자의 마음에서는 어떤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하나하나의 음표들이 모여서
서로가 서로를 맞춰주고, 연주자의 손 끝에서 다시금 하나로 완성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결코 혼자서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완하고 도와주고 그리고 다시 엮어내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노력하고.
그 노력의 끝에 청중의 우레 같은 박수와 감동이 나오는게 아닐까.
연주를 마치고 연주자가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메세지를 딱히 정하지 않았는데, 준비를 하다보니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다고.
그건 '사라짐'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악장이 끝날때마다 끝은 천천히 소멸되는 음으로 마무리가 됐었다.
사라짐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사라지지 않는걸 이야기 했다.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우리 삶도 사라지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마음속에 어떤걸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마지막 인사말을 듣고 연주를 곱씹어 보니 연주의 여운이 더 길게 느껴졌다.
잠자리에 들며,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것.
그리고 패딩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피아노 소리만 가득했던 공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문득 이방인의 작가인 카뮈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들이 생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두고 심판 받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증명해 줄 것인가.
철학인가. 아니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줄 뿐이다." -알베르 카뮈-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새해 시작을 신중하고 강인하게 시작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