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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Jul 11. 2016

웃음은 나를 단련시킨다.

억지웃음도 약이 될 수 있다. 

가끔 매체나 강연을 보면 , 보통 우리의 삶을 80년 정도로 봤을때 웃는 시간은 약89일 이라는 이야기들을 한다. 그만큼 웃는 시간이 없고, 따라서 많이 웃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웃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이것으로 충분한가?


웃음은 골무와 같다. 찔리고 아프지만, 완벽한 마감을 위하여 필요한 존재다. 웃음은 한 사람이 만드는 표정일 뿐인데 존재라는 거창한 이유를 붙이는게 타당한가는 나중의 문제다. 살면서 수도없이 찔리고 다친다. 찔려서 움찔한다고 해서 골무를 벗어던지면 완벽한 마감을 하지 못한다. 최종 목적지를 위해서는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끝까지 골무를 부여잡고 한땀한땀 정성을 수 놓아야 한다. 


웃는다는것 표정을 짓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로 삶을 단단하게 해준다. 웃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웃음이 실제로 만연하는 순간에 온화함으로 바뀐다. 웃어버리면 그냥 웃음거리에 불과해 진다. 힘들고 어렵고 상황이 곤란하더라도 그냥 웃어버리면 , 그 상황을 지금 짓는 웃음의 소재거리가 된다. 그렇게 웃음은 우리의 삶을 작은 연극으로 만들어 준다. 멀리서 보게 만들어주고 , 지금 순간의 짜증을 날려준다. 


너무 이상적이고 강제적인 방법이라고 손사래 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면 때론 뒤에서부터 역으로 생활을 만들어 가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나서 가만히 있어도 죽고 , 싸우러 나가도 죽으면 차라리 싸우러 나가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조직생활에서 웃음은 나로하여금 평판을 재정립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없는 웃음과 , 스스로 중심을 잡고자 웃는 웃음은 보기에도 확연히 다르다. 실없는 웃음이 상대방에 대한 조롱으로 비춰 질 수 있는 반면, 화를 다스리고 자신은 맑게 하려는 웃음은 소위 말하는 '강한 멘탈'을 만들게 해 준다. 


웃을 일이 없는데 웃음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중요하지 않을 때가 분명히 온다. 웃을일이 없어도 웃을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되레 나를 성장시켜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은 나이가 들 수록 많아지고 , 많아지는 만큼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웃음을 통한 위기극복은 자연스러운 경쟁력이 된다. 


어차피 보여지는 모습을 보고 살아간다. 타인은 나의 모습을 보고, 나 또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스스로를 객체화 시켜서 자신을 돌아 볼 수 도 있어야 한다. 마냥 어둡고 미소가 사라진 모습이 과연 얼마나 득이 되는지 생각해보자. 매일아침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닦아내고 보여지는 내 얼굴은 남들이 보는 내 얼굴이고 ,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스스로 가지는 어두운 표정은 마음가짐을 나약하게 만들고 , 이는 끊임없는 악순환으로 삶의 활력을 앚아가게 한다. 


웃어야 될 일이 있어야만 웃는게 아니다. 웃어야 될 일만 생긴다면 어떻게 그게 인생이겠는가. 웃지 못하지만, 웃어야 강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강인한 사람을 그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는가에 구분된다. 난국을 타개할 방법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웃는것. 그 행위 하나로도 이미 웃는 스스로가 단단해 지는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울지말라는 말이 아니라, 웃음으로 자신을 단련해 보는 자세가 때론 성공을 이끌어 주는 키 가 될 수도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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