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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Jun 18. 2017

나는 상무다

내가 얻은것, 내가 잃은것, 내가 살아가야 하는 곳

  아침 6시30분이면 출근한다. 어제는 거래처 사람들과 11시까지 먹고 대리를 불러 집에가니 시계는 이미 1시를 지나고 있었다

. 대충 씻고 비타민 몇 알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아내는 내가 집에 왔는지 신경도 안쓴다. 갈증을 대비해서 컵에 물을채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이 극에 달해서 코를 골 것만 같았다. 눈을감자마자 알람소리가 들린다. 5시다. 기상해야 한다. 6시 30분까지 출근하려면 지금 일어나야지 계산이 선다. 배정된 기사도 없는터라 내가 직접 운전을 해야한다. 어제 먹은 술이 속을 갉아 먹는 것 같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6시30분이다. 아직 전무님이 오시지 않았다. 전무님은 정확하게 6시35분에 출근하신다. 사실내가 지금 출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아니 이유가 없지는 않다. 전무님이 6시35분에 출근하시기 때문에 난 6시30분에 출근해야 한다. 6시30분에 도착해서 휴게실로 들어간다. 직원들이 오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7시30분까지 휴게실에서 부족한 잠을 청하려 한다. 하는일이 없는데 왜 이렇게 일찍오냐고? 혹시 전무님이 나에게 시키실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항시 대기해야한다. 그래야지만 나도 다음에 전무가 될 수 있으니깐 말이다.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 대학교4년, 군대3년 그다음에 이 곳에 입사를 했다. 지금 내가 입사한 지 20년째니까 국민학교 졸업 후 총 33년 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내 아들이 아직 고등학생인걸 생각하면내 아들이 살아온 기간보다 더 많은 기간을 이 회사에 바친 셈이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은 급격한 매너리즘에 빠지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너무 숨가쁘게 달려온 세월 속에서 내가 이끄는 삶은 어떠한 모습이었나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46년이라는 세월의 스펙트럼 속에서 내 삶의 휴식기는 고작 군대3년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숨가쁘게달려왔던것 같다. (휴식이라고 생각되는 기간이 군대 라니.)


  일류기업의 임원이 된다는 게 마냥 좋아만 보였다. 그것이 또한 나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임원이 되고나니, 내 삶은 더 큰 무게감에 직면했다. 좀더 나은 연장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을 뿐, 훨씬 더 치열하고 고생스러운 길이 눈앞에 쏟아졌다. 부모님에게, 아내에게, 아들에게 나는 자랑이다.세계 초일류 기업의 임원은 분명히 성공이라면 성공이다. 나 또한 크나큰 성취감에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느끼리라 확신했었다. 내 의지가 부족해서인가, 아니면내 깜냥이 부족해서인가. 요즘 들어서 여러가지로 힘이든다.

 

  나도 이제는 좀 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휴가라지만, 늘 회사에 나왔고, 한시도 쉰 적이 없다. 인정받는 것과 별개로, 점점 나라는 존재는 육체적으로 피폐화되고 있었다. 바쁜 일상에 찌든 내 모습을 발견한 날 문득 모든걸 다 버리고 그 어떤 걱정도 없는 세상으로 나를 밀어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감, 성취감, 의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오롯이 나와 세상만이 존재하는 고요함에서 늘어지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때문에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전무님의 연락을 지나치는날이 많을수록 내가 전무가 될 확률은 줄어든다. 나도 별수 없이 아래 부장과 차장에게 메신저 방을 만들고 현안을 직달 할 수 있도록 해야했다. 그래야지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부장 또한 나의 이런 요구에 밤낮없이 성의를 다하는 것은, 지금내가 차지한 이 상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매월 통장에 찍히는 수천만원의 급여는 더 이상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내 목숨값 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가장의 역할로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는게 당연하긴 하지만, 나를 혹사한다는 느낌이 들때면 견딜 수 없는 슬픔에 홀로 빠지기도 한다. 하루에 먹는 비타민이 10종류 가까이 된다. 양복은 언제나 빈틈없이 깨끗해야 하고, 구두는 반짝반짝 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품위이고, 회사의 품위이며, 내가 모시는 사람들의 면인 셈이다.


  비서가 오늘 여명808을 또 한 박스 주문했다. 냉장고에 가득 채우고 나서, 퇴근전에 나에게 하나를 권한다. 일정을 체크하며 타 사업부 상무와 로펌 파트너 변호사와의 석식이 있기 때문에 가져다 주는 것이리라 짐작된다. 사실 우리가 모여 석식 자리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지금 닥친 계약건에 대한 해결 방안이 아닐 수도 있다. 당장 토요일 오전부터 각자위치를 보전하기 위해 하루종일 잡힌 골프약속에 대한 지랄맞음을 이야기 하고 싶을 수도 있다. 나만 그러냐고? 아니다. 옆부터 오상무도 그렇고,이따가 만날 최변도 그럴 것이다.


  여명808을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금회사문을 나선다. 지금보다 나은 삶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난 오늘 밤도 내 삶을 내 던지리라. 전무가 되면 대리기사가 아닌, 전용기사가 나의 지친몸을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호사를 누릴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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