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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Sep 25. 2017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 무심코 지나온 그 자리에 앉아서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 내가 딱 그 꼴이다. 몸에 좋으라고 만들어 놓은 음이온 샤워기를 떨어뜨려 발등위에 닿는 순간 내 코가 깨졌다. 주말내내 발등을 부여잡고 , 월요일 출근길에 부리나케 병원으로 갔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5번 중곡골 골절 및 4번 크랙 이라고 하셨다. 새끼 발가락쪽이 댕강 부러지고, 그 옆에 금이 갔다. 수술을 해야 하나 너무 걱정이 앞섰다. 다행이 수술없이 깁스만 하자고 하신다.


깁스를 했다. 발이 부어서 통깁스를 하지 못해 반깁스를 했다.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샀다. 6주에서 8주 정도는 최소한 치료를 해야한다고 하셨다. 눈앞이 깜깜했다. 출퇴근은 어떻게 할 것이고, 그 만원 지하철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지하철역까지 거리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가을비가 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단 목발을 이용하거나 택시를 타기로 했다. 돈이 수십만원 들더라도 내뼈가 붙는게 우선이기에 일단 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비상금을 털었을때 속상함이야 이루 말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뼈가 벌어져서 더 큰 참사가 생기는건 원치 않았다.


첫날, 퇴근길 지하철까지 목발을 하고 갔다. 후배가 가방을 들어주고, 나는 꾸역꾸역 지하철 역까지 갔다. 역에 도착하니 선선한 퇴근길 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송글송글 맺히다 못해, 주르륵 흐르는 땀이 너무 민망할 정도였다. 마침 손수건도 없었기에 , 손으로 안경에 묻은 땀을 흠치고 있을때였다. 어디선가 불쑥 물티슈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총각 땀 너무 많이 흘린다 , 이걸로 좀 닦아'. 모임을 하고오시는 두분의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건넨 안쓰러움과 배려였다. '감사합니다' 라고 이야기 하며 땀을 닦는 찰나, 한 아주머니께서 이야기 하셨다. '선천적으로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 있.....아, 아니구나 다리가 저래서 그렇구나' 그 말씀을 하자마자 , 내 앞의 사람들이 두명이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목받는게 어색해서 자리를 옮기려던 찰나, 옆쪽 노약자석에 앉으신 할머니께서 나의 손을 잡으신다. '총각 나 이제 내려 여기 앉어' . 사양하는 내 등뒤에서 물수건 천사 아주머니와 친구분은 '그래그래 어여 앉어 총각'. 그 당시 내가 받은 느낌은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감사한 마음도 물론 들었지만, 이런 호의가 불특정 다수로 부터 전해졌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감동을 느끼고 내가 앉은곳은 지하철 연결 칸의 노약자석 이었다. 40년 뒤에나 한번쯤 앉아 봄을 상상했던 곳인데 , 90kg을 육박하는 거구의 총각이 떡하니 차지하고 앉았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대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을 뿐이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생각하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무관심이 관심으로 바뀌고, 나의 우선순위보다 배려라는 마음이 조금 커졌다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자의 시선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힘은 중요하다.


우리가 오랜기간 고등교육을 받고, 번듯한 직장에서 근무하더라도 생활이 반복되다 조면 다양성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 매일 보고 듣는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주위를 둘러보는 훈련을 소홀히 하게 된다. 그렇게 점차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내 사고방식이 몇년, 몇십년이 지나면 '나만의 철학' 이라는 무서운 탈을 쓰고 공감능력 제로의 인간으로 탈바꿈 하기도 한다.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고, 비교를 통해서 내가 상대적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또 누군가와 비교하고 비교를 통해서 내가 가진 행복이 나름 소중하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한다. 사실 모두다 허상이다. 우리가 비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건 안일해 지는 자아일 뿐이다.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를 구몬학습을 시작한 6살때부터 수없이 썼다 한들,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은 손에 꼽을만 하다. 그만큼 무관심했고, 사고의 길을 하나로만 정하고 달려왔던 것이다.


코스모스라는 거대한 집합체에서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존재의 가치는 아주 미미하지만, 그 중요성은 절대로 미미하지 않다. 각자의 개성이 살아숨쉬고, 모두가 각양각색의 상황에 처한다. 하나도 같은것이 없고, 모두가 다르지만,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조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위해서는 개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고, 편견을 없애는게 1차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계기는 '골절' 이라는 불행하고 아픈 방법을 통해서 였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의식적으로 세상의 다원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다시 다치는건 사양하겠다. 하지만, 몇달간의 불편함과 아픔으로 평소 간과했던 생활의 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긍적적인 요인이라 생각한다.

정상보행을 하게 될때, 조금더 세상보는 눈이 커져 있는 나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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