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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Feb 23. 2018

그리움을 풍요롭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상념과 애잔함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르듯 삶을 이끌어가는 주된 감정의 철학도 다르다. 인생의 1/3을 지나가며 내 삶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주된 감정요인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실체는 없지만, 문득문득 심신을 지배하는것 같은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그때마다 , 어쩐 연유로 이런 느낌이 생기며 내 마음이 잠시 상념에 잠기는가 알고싶었다. 


명절은 언제나 행복하다. 아직 미혼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이가 들어도 명절은 어리광 부리며 편하게 쉬는날로만 생각하고 있다. 고향을 내려간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언제나 설레고 가슴뛴다. 부모님과 예전을 곱씹으며 함께 앨범을 들여다 보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손등을 꼭 잡고 함께 마트에 가는 소소한 일상들이 내게는 참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번 명절에는 헌책방에 갔다. 참고서 사기가 부담스러워, 매년 2월이면 엄마랑 함께 들렸던 동네 헌책방. 그런데 그곳에 헌책방이 없었다. 8종교과서라 통일되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형편에 맞게 나의 학습욕구를 향상시켜주던 그 헌책방이 다 사라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요즘같은 삶의 행태 속에서는 유지되는것이 더 신기할 따름이다. 


헌책방을 필두로 여러곳을 돌아다녔다. 예전 살던 동네도 가보고, 학교도 가보고 기억이 허락하는 한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몇시간을 돌아다니가다 문득 내 가슴이 찡해지는것을 느꼈다. 가만히 차를 세우고, 라디오도 끄고 이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애잔함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심적 상태가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정리하려고 집중했다. 

사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집착이 생길때마다, 나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꺼내어 본다. 

내가 때론 감정적으로 힘들어하고, 생각하는 시간의 많은부분을 과거에 할애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과 내가 느낀 감정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기억하는 버릇이 있었고, 이 습관으로 인하여 세월이 흘러갈수록 지난 기억이 새 기억으로 대체되지 않고 누적되었던 것이다. 나와 대화했던 상대방의 작은 눈짓이나 어투, 누군가와 혹은 혼자 거닐었던 거리의 풍경들, 환희와 실망감을 안고 지나갔던 거리 그리고 동네앞 작은 슈퍼마켓 까지도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너무 많은 기억과 풍경들이 내 그리움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쌓여가는 경험만큼, 그리움의 깊이와 폭도 커져가고 있었다. 


성격적인 결함 일수도 있고, 타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혹자는 소심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구나 라고 말 할 수도있고, 또 다른이는 한번 뿐인 인생을 낭비없이 살아가구나 라고 할 수도있다. 나 스스로의 가치판단은 쉽사리 하지 못하겠다. 어쩔때는 이런 감정의 소모들이 날 유약하게 만들어서 괴롭기도 하고, 또 어떨때는 내가 지나쳐온 감정의 편린들이 고스란히  마음속에 남아있어서 되레 즐기기도 하니깐 말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내가 가진 이와같은 특성을 장점으로 받아들여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를 깊이 생각한다고 무조건적으로 나쁜것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나 또한 개인적으로는 존재 그 자체이며, 존재는 끊임없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매 순간 느꼈던 감정들이 앞으로 한 단계 더 나은 물적,심적 진보를 이끌어 준다면 그 것 또한 나를 완성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쓸데 없는 궁상이 아니라 생각한다. 희로애락에 대한 깊이 있는 감정의 골을 헤짚고 갈 수 있기에 더 나은 공감능력을 발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날의 최소 1.5배는 더 살 예정이다. 그렇기에, 내 감정을 이끌어가는 실체의 뿌리를 이해하고 싶었고, 이를 정리하고 싶었다. 그냥 지나치던 느낌을 구체화 할 수 있을때 나는 더욱더 성장하리라 확신한다. 지나간 삶의 아주 작은 기억들이 훗날 풍요로운 인생을 위한 자양분이길 기도해 본다. 


"잘 살고 있니? 거긴 아직 있을까? 그분은 아직 계실까? 아직도 거긴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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