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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Aug 15. 2015

미국에서 치과?

찐 진문과생의 대변신.

내가 미국에서 치과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정말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19살의 나이로 부모님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가난을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의 거의 마지막 세대였다.  큰 이민 가벙 6개를 끌고 어디로 갈지 헤메던 JFK 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한학기 다녔지만 미국에서 다시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컸었다.  어쩌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에서 한두 과목씩 수업을 듣기 시작하고, 파트타임이지만 지속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오전에는 학교, 그리고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밤일을 했다.   


난 철저한 문과생이었다.  언제나 등단을 염두에 두고 시를 썼고, 국어를 제일 잘했었다. 고등학교때 문과였기 때문에 과학과목 네가지중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제일 '과학스럽지 않던' 지구과학이 나의 선택이었다.  물리를 제일 싫어했었다.  생각해보면 무조껀 문제만 죽어라 풀어야 했던 환경에서 학문의 본질을 놓친 것 같다.  새로 시작한 아주 조그만 미국대학교, Penn State Unoversity, Oganz Campus 에서 기가 막힌 물리교수님을 한 분 만났다.  새롭게 물리에 대한 눈을 뜨고, 이제는 '물리'만이 나의 살길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MCAT (미의대학원 입학시험)을 치고, 제법 점수가 잘 나왔지만 물리에 대한 꿈은 포기 할 수 없었다. 학부 졸업하기 얼마전, 눈이 많이 내렸던 어느 겨울밤에 혼자 실험실에서 NMR (MRI)에 관련한 실험을 하다 허리를 크게 다쳤다. 며칠을 누워 있어야 했었는데.. 그러다 진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다시 의대를 생각하게 되었지만,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손재주가 잘 쓰일 것 같은 치대를 염두에 두고, 다시 DAT (미치대학원 입학시험)을 쳤다.  모든 결정이 무엇에 홀린듯이 빠른 시간에 결정을 했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치과의 둥지를 튼 곳은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근교에 있는 Sellersville 이라는 동네이다. 17세기 영국에서 종교박해를 피해 건너온 Quaker 교인들이 자리를 먼저 잡은 곳이다. 지금도 필라델피아 하면 미국 독립전쟁 때 처음 독립을 알린 작은 종이 유명한데 (Liberty Bell),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이 그 자유의 종을 파괴하기 위해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아무도 모르게 피난을 와 있었던 동네가 지금 내 오피스가 있는 동네이다.  또 한국전쟁 이후 한국 고아들을 돌보아 유명해진 여류작가 Pearl Bucks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는 곳이 또 바로 이곳이다. 내가 이곳에 터를 정한 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덛붙이면 한국에 온 초창기 선교사들 중에 아펜젤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 선교사가 이 동네 교회에서 후원을 받아 한국으로 떠났었다.  그러고보니 한국과 관련된 역사적 유서가 많은 곳이다.   


얼굴 노란 내가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땐, 동양사람인 나를 신기해 쳐다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동양인들이 꽤 동네에 자리를 잡았고, 몇 십년 미국분들을 대상으로 치과를 운영하다 보니 이젠 이 환자분이 미국분인지 한국분인지 헷갈릴 때도 생겼다.  급하면 한국말이 튀어나오고, 신기하게도 환자분들은 알아듣고 반응한다.  이젠 그런 것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진심을 가지고 대하면 반듯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의 결과라는 믿음은 오랜 세월 환자분들을 대하며 자연스레 생겼다.  미국분들중에서도 의외로 인상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다 비슷한 것 같다...) 외갓집을 빼닮아 그 덕에 '부처님'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은 들은 나로서는 푸짐한 인상이 미국분들에게도 좋은 어필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봐온 아이들이 커서, 그 애들이 낳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인연을 이어가니 3세대를 관통하고 있다.  은퇴할 때 쯤이면 아마도 이 동네 터주대감은 내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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