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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Aug 15. 2015

Gale Family

Memory of Ms. Gale P.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환자이자, 지금도 현재형이고, 아마 앞으로도 나와 함께 오래오래 환자/의사와의 관계를 유지할 가족과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1999년 여름이었다.  인근 병원에서 일하는 한 베테랑 간호사가 우리 병원을 찾아왔다.  자기가 치아 치료가 필요한데 시작을 하기 전에 오피스를 한번 방문을 하고 싶다고 미리 연락을 해왔었다.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환자가 궁했던 내 처지였던지라 반갑기도 했고, 사전답사를 하러 온다기에 긴장도 되고 그랬다.  


30대 중반의 나와 연배가 비슷한 미국 아줌마가 찾아왔고, 나는 형식적인 오피스 투어를 시켜주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신참내기 의사 딱지를 벗지 못한지라 긴장도 많이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참 인자하고 착한 분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돌아갔는데, 정작 치료가 필요했던 본인의 치아 치료는 시작하지 않고, 그분의 아이들을 하나씩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큰 딸, 작은 딸, 또 작은 딸..  네 번째 아이를 데리고 올 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는데 다섯째, 여섯째..  맙소사 아이들이 일곱이 있는 것이다.  첫째부터 여섯째까지가 딸이고 일곱째가 아들이다...  아들을 기다렸나.. 생각했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허락하는 대로 많이 놓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  와.. 나에게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더 인자하게 생긴 남편까지 총 아홉 명.  온종일 이 가족들이 하루의 스케줄을 가득 채운 날도 있었다.


남편까지 다 돌아가며 필요한 치과치료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이 아줌마 치료를 시작하는데... 원래 엄마들은 늘 제일 나중에 보게 된다.. 엄마들의 희생정신!...  Gale이 심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가 중병에 걸렸다고 한다. 두통이 있어 일하는 병원에서 검사를 하니 이미 손 쓸 수 없는 말기 뇌종양이 걸렸다 한다.  아.. 이런..  이렇게 착한 분이 이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그동안 난 Gale (이 아줌마의 이름이다) 이랑 정이 흠뻑 들어 정말 가족같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Gale 은 자기 충치 몇 개 있는 것..  다 치료해 달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다가, 우선은 너 건강부터 챙기고 치아 치료는 급한 것이 아니니까 천천히 하쟈고.. 운을 때 보았지만, Gale 이 그동안 아이들 치료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나한테 치료를 꼭 받아보고 떠나고 싶다고 한다.  내 마음은 끝이 보이지 않게 무너졌다.  정말 눈물을 삼키면서 치료를 한 기억이 난다. 


...



Gale은 좋은 인상처럼 그녀의 주위엔 친구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이미 Gale의 컨디션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잠시 회복되는 듯한 시간이 있었다.  그즈음에 그녀의 친구들이 큰 일을 하나 했는데..  모두들 십시일반 돈을 모아 아홉이 되는 식구들 모두를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 월드로 비행기 태워 여행을 보내주었다.  그 비용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것보다 더 큰 Surprise는 그녀의 식구들이 플로리다로 여행을 간 동안 친구들이 모두 모여서 그녀의 집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삼교대를 만들어 하루 24시간 공사를 해서 완전히 멋진 집으로 개조를 해놓았고, 그녀가 돌아와서 달라진 집을 보고 식구들이랑 그 친구들이랑 많이 울었다고 한다.  난 그 이야기를 지역신문을 통해 읽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나도 찾아가서 망치질을 했을 텐데..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식구들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치과치료를 해 주는  것뿐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아쉽다.. 나도 한밤이라도 찾아가서 벽지라도 발랐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뜻밖의 소식도 있었는데, Gale이 임신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아이를 순산하기 위해 항암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그 아이는 태어났는데, 아.. 이런 다운증후군이라고 한다.  소식을 듣고 나도 어쩔 줄 모르고  힘들어했었다.  그때 마음으로 Gale에게 약속 하나를  했다... 내가 이제 막 태어난 그 마지막 여덞째 아이까지 치아건강 하나는 책임지고 끝까지 가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약속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곤 12년이 흘렀다.  그동안 아이들이 커 가면서 점점 엄마를 닮아가는 모습에 문득문득 놀라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하나씩 정기검진을 오면 자연스럽게 엄마 이야기를 해준다.  예전에 엄마가  너를 이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이렇게 했다..  예전에 네가 엄마한테 이렇게 심술부리곤 했다..  예전에 엄마가 너 꼭 이렇게 컸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 내가 하는 이야기가 이 아이 이야기였는지 아님 그 언니 이야기였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뭐 아무려면 어떠랴.  내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너무들 좋아한다.  자기들이 모르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많지는 않겠지..  얼마 전에 큰 딸이 아이를 밴 상태로 정기검진을 받으러 왔다.  그땐 Gale 생각이 얼마나 많이 나는지.  다운증후군이 있는 막내아들도 많이 커서 제 몫을 하기 시작한다.  



이 식구들의 인연은 내게는 참 크다.  그리고 고맙고.  언제나 하늘에서 Gale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생각하면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사회 초년병이었던 나에게  Gale이 보여준 그 표정을 늘 마음에 두고 오늘도 나에게 찾아오는 환자들이랑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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