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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Lewis

by 복자의 썰 Aug 19. 2015

하나님은 치과의사?

C.S, Lewis의 통찰력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C.S. Lewis의 책에 푹 빠지게 된 것에는 나름 좀 특별한 이유가 있다. 


거의 모든 그의 책에 "치통"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유는 루이스가 '고통'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이 있었고, 그 고통에 가장 자주 비유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치통'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치과의사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내 '업'이 '업'이니만큼 치과의사 이야기가 나오면 내 관심은 급상승한다.  혹시나 또 나오지 않나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진다.  루이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Mere Christian'을 보면 치통, 치과의사 이야기가 20곳 정도 나오니 Dentist 라면 한 번씩 꼭 읽어봐야 하는 첵이 아닐까 추천하게 된다.  


의학적으로 보면 몸에서 고통을 전달하는 신경체계에서 치아로 가는 신경 (intradental A- and C-type nerve fibers)은 조금 남다르다.  훨씬 더 가늘고 섬세하나 아픔을 전달하는 강도는 다른 몸에 퍼져있는 신경과 비교해서 거의 세배에 이른다고 조사된 바 있다.  루이스가 어려서 치통을 앓아 그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책을 통해서 아픔을  이야기할 때 치통을 비유에 드는 것은 정말 적절한 표현이자 너무나 피부로 잘 느낄 수 있는 비유이다.   


 "Mere  Chrisianity"라는 책을 읽다 보면 단순 치통을 넘어서, 나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부분이 나온다.  너무 놀라 손이 벌벌 떨리면서 읽은 기억이 난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은 치과의사다..


잉?  이거 무슨 말이지?  천지의 창조가 치과에서 비롯된 새로운 가설인가?  내가 하는 일이 창조자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말인가?  내가 그런 창조자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었던 말인가?  혹시나 그런 것 아닌가 하고 자꾸 책을 읽게 되었고, 사실은 그런 것과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루이스의 insignt은 정말로 위대한 것이었다. 



책의 본문을 인용해 보자,


"너희도 온전하라"라는 말은.. '내가 유일하게 너희를 도울 일은 너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는 그 이하를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이하에 만족하지 않겠다'라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저는 종종 이를 앓곤 했는데 다음날이면 어머닌 어김없이 치과를 데려가십니다.  저는 원하는 것만 얻고 원치 않는 것은 피할 재간이 없습니다.  저는 당장 아픈 것만 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완전히 고칠 각오를 하지 않고는 아픔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치과의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의사들은 아직 아프지 않은 이들까지 모조리 찾아 손 볼 것입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사람들로서, 하나를 주면 열을 달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우리 주님은 바로 이런 치과의사 같은 분입니다. "


아니 루이스는 어떻게 이렇게 치과의사가 보는 perspective를 정확하게 알았지?  사실 우리가 치과 현장에서 늘 마주치는 일이다. 이가 아파 치과에 와서 이 '이빨'이 아프다고 손가락으로 연신 가르쳐 대지만, 사실 치과의사의 입장에서는 그 '이빨' 보다는 우선 그 주위와 반대쪽의 치아상태부터 먼저 보는 게 일반적이다.  우선 전체적 상황을 간파하고 난 다음에 문제가 있는 그 '이빨'에 시선을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치아가 아픈 이유를 꼭 그 치아에만 두지 않고 다른 곳에서 올 수 있는 원인을 먼저 찾아본다. 그리곤 환자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치료방법을 들고 제시한다.  


지금은 비용적 문제, 개인의 권리 문제, 보험처리 문제 등등으로 꼭 문제가 있는 치아를 집중적으로 치료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치료를 하기가 어렵다. 만약 그런 어떤 제약도 없다면.. 가령 예를 들어보자.  내가 예전에 브라질 아마존 강가에 사는 인디오 부족들을 찾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거주하며 문명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디오 사람들을 돌보는 한 선교사의 부탁으로 그곳을 몇 번 방문했었다.  처음 보는 치과의사의 방문이라 처음엔 서먹서먹했고 말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말썽 있는 치아들을 통증 없이 제거하는 것을 보자 내가 있는 곳으로 동네 사람들이 이룬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 명씩 내가 준비한 의자에 앉아서 그 입을 벌리면서 손가락으로 문제가 있는 치아들을 가르쳤다.  


통역이 있었지만 전혀 필요치 않았다. 그냥 딱 보면 한눈에 파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아픈 치아만 치료하지 않았다. 굳이 환자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아 물어볼 수도 없었다. ) 그 아픈 치아뿐 아니라 문제가 확실하고, 또 별 다른 치료방법이 없는 치아들은 모조리 발치해 버렸다.  처음에 그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금방 엄지손까락을 들어 올리는 그 엄마들의 미소를 보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자동이었다.  


그런 경험이 생각이 나 루이스가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사랑을 치과의사에 비유한 그 이야기가 백번 이해가 되고, 적절한 비유를 한 통찰력에 감탄을 할 뿐이었다. 매일의 치료 현장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조금 안타깝지만, 그래도 좀 더 큰 그림을 설명하고 환자분들에게 구강상태 전체를 이해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더 굳어져 간다. 







아마존 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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