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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Apr 25. 2020

Mr. CK Parker & Re-Do

좀 늦은 오후에 출근을 하고 보니 책상에 메모지 한장이 놓여져 있다.  CK. Parker 이라는 분이다.  나랑 통화를 좀 해야겠다는 내용이다.  근데 뭔가 음 … 뒷골이 좀 땡긴다. 


이 환자분 거의 10년 넘게 소식이 뜸했다.  오랫동안 보지 않은 환자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분의 이름은 예외였다.  오피스를 개원한지 얼마되지 않아 찾아오신 중년의 신사분이었다.  Mr. Parker 에게 많은 치료를 했는데 어떤 것들이었는지 어제일처럼 기억을 한다.  그때는 내가 학교를 졸업하지 얼마되지 않아, 거의 돌파리같은 느낌이 사라지지 않은 초년생 의사였다.  


무슨 용기였는지 Surgical Procedure도 많이 했고 Implant 시술도 적지 않게 했다. (분명 그 당시 내가 너무 무식해서 용감했던 것 같다.)  실수도 많이 했었다. 시술 도중 손도 벌벌 떨면서 도구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시술시간이 길어져 마취가 풀리기도 하고, 막끝낸 치료가 다음날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지금 같이 성장한 간호사들도 그땐 다들 경험이 없었다. 이런 나를 믿고 계속 찾아오신 그 분이 너무 고마왔고, 처음 개원한 오피스에 경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그 분의 10년전 마지막 Panoramic X-Ray를 보니 implant 가 6개 있는데 제 각각 다른 회사 제품이다. (Nobel, Innova, 3i Biomet)  그 당시 경험이 많지 않아 여러 회사 제품들을 바꿔가며 경험을 쌓던 시기였고, 제일 만만했던 Mr. Parker가 알게 모르게 내 Guinea Pig 이 되어 주신 것이다. 그 엑스레이 하나에 내 과거가 온전히 들어있었다. 


그런 분이 10여년이 지나서 연락이 오니 한가지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 때 한 치료들이 분명히 문제가 생겼고 이건 분명 대형사고일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하니 … 그동안 너무 치과를 오지 않아서 다시 정기첵업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혹시 문제가 있으시냐 물으니, 다 좋고 너무 잘 먹어서 탈이라고 한다.  휴… 우.. 


한 자리에서 20년 넘게 병원을 하다보니 아주 오랫동안 내가 봐왔던 환자분들이 많다.  그 분들이 올 적마다 가끔 아주 옛날에 내가 치료한 치아들이 보인다.  자랑스럽게 여전히 튼튼한 것들도 보이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는 치료의 흔적들도 보인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내 자신이 용납하기 힘들 정도로 한심한 일들도 보인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회할 기회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인지 요즈음 예전에 내가 치료한 것들을 다시 재작업 하는 진료시간이 많아졌다.  오피스에는 이미 한 치료를 다시 하는 Re-Do에 관한 policy 가 있다. ‘ Resin은 어떤 경우라도 6개월 이내 이상이 생겼으면, 보철은 1년안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껀 무상교체 한다.’  하지만 요즘은 심심치 않게 10년이 넘어간 보철치료도 무상으로 다시 하곤 한다.  그럴적마다 메니저가 달려온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작 환자분들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메니저를 잡고 이야기한다.  난 꼭 이렇게 해야겠다고.  이 분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고, 너도 없다고.  그래서 이해해 달라고.  


떨리는 마음으로 Mr. Parker 의 치아상태를 보니 별로 손 볼것이 없다.  다만 #14 Implant Crown 에 Porcelain 이 많이 깨져있었다.  다음주로 예약을 잡고, 그 깨진 Crown 바꿔드리기로 했다.  나에게 점심 한번 쏘시는 것으로 퉁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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