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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Nov 22. 2021

집 밖에

책을 읽어드릴게요

#.

어릴 적 조선시대 유학자인 "율곡 이이"의 전기를 읽은 적 있다.

선조임금 때 관리로 중용되고, 임진왜란 전에 일본국의 공격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제안하기도 했다는 율곡 선생.  그런데, 내가 가장 감명받은 부분은, 율곡 선생은 혼자 있을 때에 스스로 삼갈(자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경문>을 지었다는 대목에서였다.


#.

혼자 있을 때 강한 마음으로!


이것은 내가 주위를 살펴보며 느낀 바이다.

60대를 전후해서 노쇠 과정을 앞두고 혹은 크고작은 몸의 병증에 불안한 심리를 갖게 된 여성들을 보며, 만약 이 모두에게 자경문을 지어준다면 제1 항목으로 넣고 싶은 말이 있다. 혼자 있을 때야말로 마음 강하게!


(*여기에 왜 굳이 여성이라고 썼느냐, 누가 묻는다면 사실 본인의 생활반경 탓이다.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극동지역의 여성인 내가 아무리 이웃에게 최대한 우호적이라 해도 남녀유별(男女有别)을 넘어서서 아는 척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게다가 가까이 아버지도 친척 남자어른도 안 계신 입장이라서 더욱 남자 어른의 심리에 이해가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


#.

A할머니가 잔뜩 틀어져 있어.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A할머니와 부쩍 친해진 B할머니의 말이었다.

하룻밤 새, A할머니가 심통이 난 사람처럼 뭐든 다 못 마땅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매일처럼 다녀가는 요양보호사도 이제 필요 없다고 주민센터에 전화했다는 것이다.


왜 저러는지 몰라....

B 할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전날 오후 공원에서 볼 때까지만 해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글쎄요, 밤 사이 혼자 슬픈 기억에 시달린 걸까요?


#.

내 보기에, B할머니는 몸이 약한 데 비해서 평상심을 잘 유지하는 편이다. 감정기복이 심한 A할머니는 비할 바가 아니다.  

대체로 자신의 생활 리듬에 극단적 기울임 없이 아프면 아픈대로 회복하면 회복한대로 자신의 리듬을 조절하신다. 일종의 원칙이랄지, 매일매일 가능하면 걷기를 실천하는데, 심하게 아픈 날 아니고는 반드시 문밖을 나와 공원이라도 가고, 어디 용한 병원이 있다면 먼 길이라도 혼자 지하철을 타고 나서실 정도의 자립심이 있다.


그 연세에 저리 활동하실 정도면...

나는, 연령으로 따지면 이모뻘이라할 B할머니가 내 친이모나 엄마보다 더 활동적이라는 사실만 가지고,  한동안  이분에 대해서 달리 걱정할 게 없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어느 날이던가. 

아마 두어 주쯤 전이었을 거다.  

둘이 앉아 이런저런 대화 끝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옛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날 나는  뜻밖의 할머니 모습을 보게 된다.

뭣 때문인지 할머니가 진저리를 치면서  말문을 딱 닫는 것이었다. 내가 미처 반응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할머니 혼자의 반사적인 닫힘이었다. 그것은 아마 말과 함께 꼭꼭 눌러놨던 과거 기억들이   딸려나올까 경계하는 그런  " 닫음"이라고ㅡ  나중에서야 나는 이렇게 정의 수 있었다.


내게 그날 나눈 화제가 뭐였는지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걸 보면, 그 직전에 별말을 나눈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그런 잡담의 진행에서 할머니 혼자 고통스런 옛일이 연상될 뻔하지 않았을까.

이해하자면 그렇다.


생각하기도 싫어. 징글징글혀.

그때의 할머니 표정은, 마치 잘못해서 손에 집힌 푸른 살구를 무심코 입에 넣고 깨물었는데 그만 너무 시어서,  그 시디신 맛을 다신 생각하기도 표현하기도 싫다는, 그래서 무조건 중지를 선언해야 할 듯한,  몹시도 찡그린 얼굴이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바싹 마른 체구의 이 할머니가 괴로운 기억과 싸우느라 매일매일  힘드셨던 게구나. 

나로선 할머니가 겪은 일 중 어느 것이 그토록  끔찍한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할머니의 그 표정, 몸짓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질긴 싸움인지 그제야 짐작이 되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고통으로 인해 서서히 침식되어가는 노구의 몸.


나는 문득  할머니가 견디고 있는 착잡하고 무거운 어둠 속으로 등불을 밝히고서 한 마디 외쳐주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이젠 아무것도 당신을 괴롭힐 건 없다고.


의도하지 않은 직면이 날 움직인 것일까.  그날 나는 할머니에게 뜬금없이 <(해바라기 소녀)폴리안나> 이야기를 해 드렸다. 그리고는 내게 그 책이 있으니 틈틈이 와서 읽어드리마 약속을  버렸다.


약속은 지키는 게 중요하다.

이미 지난 주에 두 차례, 저물 녘에 마주 앉아 할머니는 듣고 나는 책장을 넘겼다.

내 목소리를 따라서, 폴리안나는 난생 처음으로 이모집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고, 이모의 냉담함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하루 종일기쁨찾기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즐긴다고?

겨우 학교 들어갈 나이의 소녀에게 그것은 너무 어려운 게임이었던지도 모른다.

부유한 이모집, 그러나 제일 허름한 방에서 첫밤을 보낸 폴리안나였다. 바로 얼마 전에 고아가 되었고 처음으로 아빠와 살던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누구의 위로도 없이 잠을 잤다.

그러나 다시 아침이 오않았는가. 잠이 깨자 정원에 나와있는 이모에게 정겹게 매달리는 폴리안나.  이모가 내 친이모라서 기뻐요,라고 말할 땐, 간밤에 밀려오던 두려움, 슬픔 같은 걸,  어제일로 던지고 새아침의 명랑함에 활짝 마음의 문을 열 줄 아는 아이다움, 말하자면 폴리안나는 너무나도 밝고 깨끗한  생명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가슴얼어붙은 채 살아온 이모에겐 그러한 명랑함이 버겁다.  그래서 어린 조카에게, 너는  '의무'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의미로,  '의무' '의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건조하다 못해  싸늘한 이모. 마음이 맑은 폴리안나가 다정함과 냉정함의 차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한사코 그래도 생활에는 감사할 거리가 숨어있다고 여긴다. 이쯤에서 나는 정원 한쪽에서 화단을 돌보고 있던 정원사할아범이라도 된 듯, 할머니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

시간이 남아 도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어준다고 뭐를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노고를 자청했을까?


그것은 이웃이 되어 친해진 할머니가 괴로운 생각에 시달리는 걸 막고 싶어서이다. 

내가 그럴 때 누군가가 나처럼 도와주면 기쁠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쉬운 일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즐거운 일이 책을 읽는 일이니까.


어쩌면 조금만 거들면 될 일인지도 몰라,  

그래서 슬쩍 손을 내밀어 본 것이다.


의무상 이모는 폴리안나를 데리고 읍내 옷가게에 갔다. 딱딱한 이모, 그러나 어쨌든 폴리안나는 난생 처음 옷가게에서 자신의 새옷을 얻는 경험을 한다.


오늘 여기까지 읽어요.

책장을 덮고 나오며 나는 할머니 방에 묵언의 기도를 남겨드린다.


할머니,

미소 속에 잠이 들고,

부디 행복한 꿈을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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