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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May 05. 2022

뭐가 나을까

아주 사소한 심사숙고

#.

어떤 종류의 집착이든 약간은 터무니 없다.

많이 우유부단한 사람도 알고보면 결단을 미루는 핑게로써의 어떤 미신 같은 것에 집착한다.

이를테면 중대한 결단의 순간엔 내면의 결정장애가 사라져  것이라고  믿는다든지 하는.


#.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으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말이 있듯,  대자연으로 향해 열린 지혜 속에서 나날을 소요할 수는 없는가 자문하는 저녁, 서녘 하늘에 초승달이 깨끗하다.


#.

동네 골목길을 밝히던 미용실 하나가 홀연 문을 닫았다.

어느새 정이 들었던지 말도 없이 문닫고 떠난 원장이 살짝 야속하지만, 생업상의 결단일 터이니

궁금하긴 하여도  안부 전화조차  생뚱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 한 장면이 떠오르는데, ㅡ 머리를 자르러 갔던 그날, 원장에게 머리를 내맡기고 하릴 없어진 나는 거울앞 탁자로 눈길이 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용실에서 쓰는 여러 가지  상품이며 도구들과 상관 없는 사물이 눈에 띄었다.

"물티슈가 많네요."

그런데 그날  원장은 바쁜 것도 아니고 내 말소리를 못 들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아무 대꾸를 안 하는 거였다.

위에 붙은 스티커로 보아 병원 같은 데에서 대신 뿌려달라고 나눠준  휴대용 물티슈 같은데.... 그렇다면 아예, 네에, 광고해달라고 놓고 갔네요.라든지 가실 때 하나 가져 가셔요.라든지,  예사롭게 한 마디  나올 법 한데 감감 무반응이었다. 난 속으로 괜히 아는 체 했나 싶어서 그냥 고개를 돌려 거울 위로 켜 있는 티비를 보았다.


그게 바로 한 달 전의 일인데, 문 닫힌 미용실 앞을 지나노라니  어쩜 그날 원장의 무반응이 영업 중단의 암시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고 보면 안녕이란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어.


#.

어떤 사람이 고맙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잘라버리거나, 미안하단 말을 생략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할 때. 뻔히 보이는 그 비어진 구석을 부러 못 본 척 하며 가슴이 쌔할 때.


설혹 스치는 옷깃이었을지라도 진심 소중한 인연이었던 그 사람과의 봄과 여름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와 전혀 무관한 또 다른 봄과 여름을 찾아 발걸음이 바빠진 것이다.


#.

사람의 일로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하지 않아 삶이 이토록 애틋한 것이다.

일부러 소박한 민낯이고자 했던 휴대폰 상의 이 지면에133편의 일기 같은 단문이 쌓였다.

아무 상징 숫자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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